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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주목하는 시선 '고백과 증언, 과거를 딛고 미래로 나아가자'
언론위, "NCCK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하자" 입장문 주목

입력 Jun 04, 2020 04:58 PM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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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출처 = 5.18기념재단 )
NCCK는 지난 달 7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국민의 고백과 증언으로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을 규명 합시다”고 호소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언론위원회(언론위, 위원장 권혁률)는 5월의 시선으로 ‘고백과 증언, 과거를 딛고 미래로 나아가자'를 꼽았다.

언론위는 NCCK가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제안을 받아들여, 지난 5월 7일 "국민의 고백과 증언으로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을 규명 합시다"라는 입장문을 발표하고, ‘고백과 증언 국민운동'을 전개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데 주목했다.

아래는 언론위가 밝힌 선정 취지다.

고백과 증언, 과거를 딛고 미래로 나아가자

너무도 달랐던 남아프리카와 한국의 진실・화해
고백도 반성도 사죄도 없이 용서와 화해는 가능한가?
고백이 어찌 가해자만의 일일까?
고백과 증언, 교회와 기독교인부터

NCCK언론위원회는 5월의 시선으로 ‘고백과 증언, 과거를 딛고 미래로 나아가자'를 꼽았다. 언론위원회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지난 5월 17일 "국민의 고백과 증언으로 5ㆍ18 민주화운동의 진상을 규명 합시다"라는 입장문을 발표하고, ‘고백과 증언 국민운동'을 전개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에 주목한다. NCCK는 "역사정의에 대한 사회적 지지를 기반으로 국민의 힘이 모일 때, 가해자들은 양심과 용기의 이름으로 ‘침묵'을 깨고 진실을 ‘발언'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이 운동을 "하나님께서 주신 시대적 선교과제"로까지 의미를 부여했다.

2020년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만 70년이 되는 해이고, 1980년 광주민중항쟁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격동의 한국사란 말답게 우리가 기억하고 기념해야할 일들이 너무나 많다. 포스트-코로나 시대, 우리는 이미 우리의 의지나 준비정도와는 상관없이 새로운 시대에 살게 되었다. 2016~2017년의 촛불과 탄핵으로 우리는 새로운 정치를 꿈꿨지만, 낡은 세력에 발목 잡혀 제대로 개혁의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2020년 4월의 21대 총선에서 수구세력의 몰락으로 이제 우리는 오래 기다려온 세상을 향한 첫 발을 내딛을 수 있게 되었다. 모든 문제를 정쟁으로 몰고 가 국민들의 정치혐오를 부추긴 20대 국회는 마침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법) 개정안을 30초 만에 통과시키고 문을 닫았다.

20대 국회에서는 2018년 3월 13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였지만,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는 자유한국당의 몽니로 구성되지 못하다가 특별법 시행 1년 3개월만인 올해 1월에야 정식으로 출범했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NCCK에 5·18민주화운동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고백과 증언 국민운동' 전개를 제안했고, NCCK가 이를 적극 수용한 것이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1980년 5월 광주학살의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은 이번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이르기까지 모두 9차례나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1980년대 대표적인 ‘오월가'의 노랫말인 "왜 찔렀지, 왜 쏘았지, 트럭에 싣고 어딜 갔지"에 대한 답을 얻지 못했던 것이다.

너무도 달랐던 남아프리카와 한국의 진실・화해

NCCK는 "가해자들의 양심적 고백과 증언을 간곡하게 호소"했지만, 과연 가해자들은 이 호소에 응답하여 고백과 증언을 위해 입을 열 것인가? 안타깝게도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 점은 민주화 이후 지난 20년 동안 시끌벅적하게 진행된 과거사 진상규명 작업의 성과와 한계를 보면 분명해진다. 한국에서는 그 동안 과거사 관련 법률이 20여 개나 제정되었고 수많은 위원회가 활동했지만, 단 한 명의 가해자도 처벌은커녕 법정에 세우지 못했다.

노무현 정권 시절인 2005년 12월 출범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명칭부터 남아프리카의 진실화해위원회에서 빌려 온 것이다. 참여정부 시절 과거사 실무를 총괄한 바 있던 문재인 대통령도 이미 절감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남아프리카의 진실·화해와 한국의 진실·화해는 말은 같지만 내용은 참으로 달랐다. 남아프리카에서 말하는 진실과 화해는 처벌이 전제된 것이었다. 과거 국가폭력을 저질러 처벌받은 범죄자가 자신이 직접 저지르거나 목격한 다른 범죄사실을 고백할 때 이왕에 받은 처벌을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경감해 주는 것이 진실과 화해였다. 그런데 한국에서 처벌은 보복이었고, 화해란 곳 처벌의 포기 또는 불처벌(impunity)를 의미했다.

고백도 반성도 사죄도 없이 용서와 화해는 가능한가?

한국에서 불처벌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우리가 과거사의 가해자들이 처벌받지 않았다고 피부로 느끼는 이유는 반전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맨 위의 대통령은 쫓겨나거나 감옥에 갔을지언정, 구세력 자체는 약간의 흠집만 난 채 이 땅에 온전히 버티고 서 있다. 문재인 정권 3년은 ‘적폐청산'이란 이름 아래 주로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 9년 동안의 국정농단과 비리를 주로 정리해 왔다면, 이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활동 개시와 과거사법 개정안의 통과로 그 동안 중단되고 미뤄졌던 과거의 국가폭력에 대한 진상조사와 처리가 현안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NCCK에 ‘고백과 증언 국민운동' 전개를 제안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송선태 위원장은 진상규명 작업의 목적이 "처벌보다는 화해와 진실, 이를 통한 회복적 정의의 수립"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한국의 국가폭력 가해자들은 과거의 국가폭력을 인정하지도 고백하지도 반성하지도 사죄하지도 않고 있다. 화해는 아름다운 말이지만,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들에게 화해를 강요한다면, 그건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고백이 어찌 가해자만의 일일까?

고백이 어찌 가해자들만의 일일까? 우리는 국가폭력 관련 과거사를 볼 때 피해자-가해자의 단순한 이분법에 빠져서는 안 된다. 우리(또는 우리의 부모나 조부모)는 최소한 피해자들의 고통을 몰랐거나 모르는 척 외면했고, 내가 당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여겼고, 때로는 겁먹은 구경꾼이 되었고, 심지어 잔혹한 가해자의 하수인, 동조자 역할을 하거나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우리는 촛불항쟁 같은 때는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풀이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 바람보다 먼저 눕는 풀이었다. 수십만이 학살당한 사회에서 그들의 죽음을 입 밖에 내서도 안 되고, 기억해서도 안 되고, 추모해서도 안 되고, 애도해서도 안 되는 그런 세월이 수십 년간 지속되었다. 우리 사회는 죽음마저도 죽여 버린 그런 지독한 역사를 살아왔던 것이다.

과거사 진실규명과 그에 따른 후속조치는 현재는 피해자들만의 일로 축소된 듯한 취급을 받고 있지만, 공동체 전체가 나서야 할 일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과거사 진실규명작업은 국가적 차원에서 많은 예산과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화해와 통합이라는 원래의 목표와는 정반대로 오히려 새로운 갈등과 대립을 낳았을 뿐이다. 그러나 2020년 4월 21대 총선으로 변화는 불가피해졌다. 과거사를 부정하고, 특히 5·18과 관련하여 막말을 일삼던 자들은 거의 전원 낙선했다, 미래통합당에서도 막말을 사과하고, 항쟁 40주년 기념식에도 전향적으로 참석했으며, 극우 유튜버들과도 일정한 선 긋기에 나섰다. 미래통합당이 문제의 엄중함을 깨닫고 합리적 보수세력으로 거듭나려는 자성이라 하기에는 충분해 보이지는 않으나 지난 10년간의 행태에 견주어보면 나쁘지 않은 징조라 할 수 있다.

반면 과거사를 대하는 보수언론의 태도는 여전히 실망스럽다. 과거사법 통과에 대한 보도에 인색했던 수구언론은 여권 일각에서 KAL 858기사건 재조사나 한명숙 전 총리사건 재조사 등의 문제가 제기되고, 또 아직 살아있는 백선엽의 사망 시 국립묘지 안장문제 등이 거론되자 살수대첩도 재조사할 것이냐며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KAL폭파 재조사', ‘친일파 묘 파내야' 끝없는 여당의 뒤집기"([중앙일보] 5월26일),
"노무현 정부 때 결론 낸 칼기 재조사도 못믿겠다는 여"([조선일보] 5월 26일)
"177석 가진 여, 입만 열면 과거사 재조사"([조선일보] 5월 26일)
"급기야 여당서 파묘 주장까지, 현대판 사화 부추기나"([문화일보] 5월 26일)
"과거만 보는 민주당, 살수대첩까지 재조사할 텐가?"([국민일보] 5월 27일)
"친일파 묘 파헤치면서 미래로 나아갈 수 있겠나"([세계일보] 5월 27일)
"지금이 조선시대인가, 과거사 집착하는 집권 여당"([중앙일보] 5월 27일)
"이번엔 유신청산 특별법, 여 과거사 이슈 또 제기"([매일경제] 5월 29일)
"여 과거사 뒤집기는 보수의 정당성 뿌리 뽑기"([문화일보] 6월 2일)
"여권 과거사 조준 왜, 역사적 정당성 무기로 권력 다지기"([중앙일보] 6월 2일)

이밖에도 많은 기사나 사설이 나왔지만, 과거사 정리가 오늘 왜 중요하게 앞으로 미래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를 모색하는 글은 찾기 어려웠다. 보수적 입장에서는 그나마 [중앙일보] 5월 26일자 남정호의 "남아공식 5ㆍ18재조사의 함정"이 남아공과 다른 한국의 현실을 짚으며 고백 촉구의 실효성 문제를 지적했고, 진보적 입장에서는 [서울신문] 5월 27일자 사설 "민주당, ‘과거사 올인'말고 노동현장 살피라"가 여당에 현안해결과 과거사 진실규명의 균형을 촉구한 것으로 눈에 띈다.

고백과 증언, 교회와 기독교인부터

NCCK가 5ㆍ18 진상규명과 관련하여 고백과 증언 운동을 "하나님께서 주신 시대적 선교과제"로 제시한 것은 참으로 뜻 깊은 일이다. 필자는 이 운동이 두 방향으로 심화되고 확산되었으면 한다.

먼저 이 운동은 가해자의 고백을 넘어 공동체 전체로 확산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 전체가 과거의 국가폭력과 관련된 가해자, 피해자, 방관자, 목격자, 동조자 등의 관계를 정리하고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과연 공동체 내에서 국가라는 압도적 행위자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봐왔는가에 대한 성찰과 고백은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설 자리를 우리 공동체내에 만들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작업이다. 배상과 보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국가폭력의 상처로부터 회복되어야 한다. 회복적 정의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회복과 새로운 관계 맺기를 요구한다.

다음으로 한국교회와 기독교인 자신이 과거의 국가폭력과 관련하여 지난 날 자신들의 행적을 고통스럽지만 돌아보고 고백과 사죄를 해야 한다. 1980년 광주학살 당시 교회나 기독교인이 직접적인 가해자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른바 국가와 대통령을 위한 조찬기도회를 통해 학살정권을 옹호하지 않았던가? 북한군 개입설 등 5·18을 둘러싼 온갖 망언이 보수교회를 통해 생산, 전파되어 오지 않았는가? 5·18을 넘어 분단국가 형성기나 한국전쟁 기간 중 교회나 기독교인들의 행적으로 시야를 돌린다면 상황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다. 한국전쟁 당시 기독교인들은 그들이 악마와 싸운다는 심경으로 아무런 죄책감 없이 민간인학살의 주역이 되었다. 그 상황은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극한의 고통 속에서 남긴 마지막 말씀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로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작년 NCCK는 산내 골령골 학살사건의 69주년을 맞아 그곳에서 스러져간 수많은 사람들의 아픔과 눈물을 기억하기 위해 기념식수를 하며 "우리는 지난 70여 년 전 한반도를 휩쓸었던 전쟁과 광기의 역사 속에서 평화를 이루지 못한 교회의 과오와 부족함을 고백합니다. 이제 우리가 하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함께하겠습니다. 이 나무를 심으며 새로운 시대를 향한 희망도 함께 심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우리는 처형장면에 환호했던 예루살렘의 백성들과 다름없지 않을까? 과연 우리는 단순히 알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알려 하지 않았던 것일까?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포와 그에 대한 자구책으로서의 불감증이 오늘날 극단적인 기복신앙의 뿌리가 된 것은 아닐까?

미래를 향한 고백과 증언

그 죽음의 땅에서 싹이 돋았다. 두 세대가 흘러 우리는 촛불을 들었고,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위기상황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성취는 세계와 우리 자신을 놀라게 하고 있다. 공권력이 마비되고 총기가 수천 정이 풀렸던 1980년 오월 광주에서는 단 한 군데의 은행이나 금은방도 털린 곳이 없었다. 이 사실은 현재 미국에서 진행되는 불행한 인종갈등에 대한 저항으로 발생한 폭동이 약탈로 얼룩진 것과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물자반입이 차단된 소비도시 광주에서 사재기도 매점매석도 없이 주먹밥과 뜨거운 마음을 나누는 나눔의 공동체를 이룬 것이야말로 현대판 오병이어의 기적이 아니겠는가?

민주화운동이란 분단상황에 편승하고 분단을 고착화 시키며 외세에 의존하여 국가기구를 장악하고 국가폭력을 통해 권력을 유지해 온 친일파와 그 정치적 후예들에 대해 저항해 온 과정이었다. 이 투쟁을 통해 민중들은 저항의 주체로서 우뚝 섰고, 서로를 보듬고 위로하며 상처받은 치유자로 거듭났다. 21세기에 들어와 한국이 K-POP을 낳고, BTS를 낳고, 봉준호의 [기생충]으로 대표되는 K-Film을 낳고 또 촛불항쟁을 통해 민주주의의 한류를 낳고, 코로나19사태에서 K-방역을 낳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70년대나 80년대의 민중신학이 민중의 고난과 고통을 연구했다면, 이제 21세기의 민중신학은 민중들이 그 고난에 굴하고 고통에 함몰되지 않고 어떻게 일어섰는가, 고통스러웠지만 상처를 나의 힘으로 만들어 온 민중들의 회복탄력성에 대한 신학적 탐색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고백과 증언은 꼭 가해자나 목격자만이 하는 것은 아니다. 미래를 향한 고백과 증언은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인식이 5월의 시선으로 ‘고백과 증언, 과거를 딛고 미래로 나아가자'를 선정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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