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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이면 강산도: 생태학적 관심
오강남·리자이나 대학 종교학 명예교수

입력 Jul 27, 2020 08:25 PM KST
kangnam
(Photo : ⓒ오강남 교수 페이스북)
▲오강남 교수

중국과 일본이 홍수로 야단입니다. 한국에도 호우로 남부에 수해가 있다고 합니다. 지구환경론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이것이 지구 온난화와 바다의 온도 변화를 비롯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구 생태계와 관계해서 쓴 글 하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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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놀던 옛 동산에 오늘 와 찾아보니 강산은 의구란 말 옛 시인의 허사로고"

옛 시인은 '강산은 의구'라 했는지 모르지만 속담에서는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하니 긴긴 세월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뜻이겠다. 그리스 철인 헤라클레이토스(Heracleitos)의 말로 하면 '일체 유전(판타레이, panta rei)'이고, 불교적 용어를 쓰면 '일체 무상(無常, anitya)'인 셈이다.

강산의 변화 기간이 옛날에는 평균 10년 쯤 되었는지 몰라도, 요즘은 하루아침에도 온통 딴 세상이 되는 것을 본다. 특히 고국을 다녀오는 사람들도 고국의 변하는 산천의 모습에 놀랐다고 이구동성이다.

성서에는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했는데, 요즘엔 그런 믿음도 없이, 그리고 겁도 없이, 하루에도 산을 몇 개씩 옮기고 강의 줄기들을 바꾸어 놓는다. 그리고는 인간의 힘이 드디어 자연을 '정복'했다고 큰 소리를 친다. 일부에서는 성서 창세기에 보면 하느님이 자연을 다스리라고 했으니 다스린다고 한다.

그러나 과연 인간이 자연을 다스리고 정복했는가? 최근에 와서는 인간이 자연을 다스리고 정복했다고 믿었던 우리들의 생각이 얼마나 아둔했던가 하는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공해를 염려하는 '생태학적 관심(ecological concern)'이 바로 그것이다. 원자력을 이용하여 못할 것이 없을 것으로 믿었는데, 바로 그 원자력이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 가장 뚜렷한 예다. 그 외에도 공장에서 나오는 매연으로 생기는 산성비 때문에 호수들이 죽어가고, 값진 조각품들이나 건축물들이 부식하고, 농약 때문에, 공장의 폐수 때문에 강과 바다가 죽어가고 있다는 보고는 매일 아침 접하는 이야기들이다.

이 쯤 되니까 서양 사상가들 중에는 자연에 대한 종래까지의 서양적 사고방식에 회의를 품고, 동양적 사유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 특히 도가(道家) 사상에서 보이듯이 결국 인간이 자연의 법칙을 순응하는데서 행복을 찾겠다는 태도가 먼 안목으로 볼 때 인류의 장래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 보게 된 셈이다.

노자의 『도덕경』 제29장에 보면, "세상을 휘어잡고 그것을 위해 뭔가 해보겠다고 나서는 사람들, 내가 보건대 필경 성공하지 못하고 맙니다. 세상은 신령한 기물. 거기다 함부로 뭘 하겠다 할 수 없습니다. 거기다 함부로 뭘 하겠다 하는 사람 그것을 망치고, 그것을 휘어잡으려는 사람 그것을 잃고 맙니다."고 하는 말이 있다. 지금 4대강 사업이 이를 말하고 있지 않은가.

서양 사람들은 에베레스트 산에 올랐을 경우 그것을 '정복'했다고 하고, 남이 가보지 않은 곳에 발을 디뎠을 때는 처녀지나 처녀림을 차지했다고 한다. 전통적인 동양적 사고방식으로는 상상하기 곤란한 발상이다.

        내 버디 몃치나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

        동산(東山)의 오르니 긔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 박긔 또 더야 머엇하리.

라고 한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처럼 자연은 벗할 대상이지 정복하거나 침범하거나 겁탈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 같이 강산이 빨리 변하는 세상에 살자니 강산을 대할 때 외우(畏友)를 대하듯 우정과 경외심으로 대하는 태도가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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