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로제트 식물처럼
김기석 목사(청파감리교회)

입력 Aug 21, 2020 08:00 AM KST
kimkisuk
(Photo : ⓒ베리타스 DB)
▲청파감리교회 김기석 목사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주 안에서 형제 자매된 모든 이들의 삶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다들 무고하고 평안하신지요? 하루하루 살얼음판 위를 걸어가는 것처럼 위태로운 나날입니다. 길고 길었던 장마 끝에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어 참 좋았는데, 즉각 대규모 감염사태라는 먹구름이 몰려왔습니다. 조금씩 회복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고 기뻐하며 온 교우들이 한 자리에 모여 예배드릴 수 있는 날을 고대했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안타깝고 속상합니다.

특별히 교회가 감염의 매개라는 사회적 오명을 받고 있으니 참담하기까지 합니다. 새 살이 돋아나기도 전에 딱지부터 떼고 보려는 조급증이 문제였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교회를 향한 사회적 시선이 사뭇 가파랐는데, 이제는 노골적으로 혐오 집단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어느 식당에는 '교회 다니는 사람들 출입 금지' 팻말이 붙어 있다고 합니다. 직장에 다니는 이들은 월요일이 되면 작성해야 하는 문답표에 '교회에 다녀왔습니까?'라는 질문 때문에 마음이 무너진다고 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평생을 살아왔는데 지금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날까 전전긍긍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집니다. 일상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다시 영상예배로 돌아가고, 학교가 다시 문을 닫고 있습니다. 좁은 영업장에서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는 영세 상인들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중소상공인들의 한숨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더 딱한 이들은 감염병의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들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리라는 기대가 어려움을 이기게 만들지만, 상황이 더욱더 어려운 쪽으로 흘러가고 있으니 암담할 것입니다. 의료진들과 방역을 위해 수고하시는 분들을 위해 기도하기를 쉬지 말아야 할 까닭이 거기에 있습니다.

교우들 가운데도 사업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건강의 어려움을 겪는 이들도 있습니다. 결혼식 날이 다가오는데 하객 수를 제한해야 한다는 행정조치로 어찌할 바를 몰라 당혹스러워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사회적 관계의 대부분을 교회를 중심으로 맺어왔던 분들의 쓸쓸함 또한 적지 않습니다. 참 힘겨운 시절입니다. 그래도 견뎌야 합니다. 그냥 이를 악물고 견디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상상력을 가지고 이 시간을 살아내야 합니다. 그게 어떤 거냐고 물으시면 딱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암중모색해야 합니다. 그러나 길이 보이지 않아도 지향은 바로 해야 합니다.

교회가 지탄의 대상이 된 것은 지향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언제부터인지 교회는 그리스도라는 푯대를 잃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따르라' 하셨지만, 교회는 '예수를 믿으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십자가의 길을 걷기보다는 예수를 대상화하는 일에 열중했습니다.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얻는 것이라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까닭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하면 인본주의를 설파한다는 지적을 받기 일쑤였습니다. 교회는 점점 시민적 상식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꿩 잡는 게 매라고 대형교회 목사들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기 시작했고, 그들은 점점 자신의 종교 권력에 도취되었습니다.

권력에 도취되는 순간 종교는 타락하게 마련입니다. 신성한 것이 타락하면 마성적으로 변하는 법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말이 일으키는 사건에 도취되었습니다. 자기를 추종하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그들의 말은 더욱 거침없이 질주했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내뱉으면서 그것을 하나님과의 친밀함의 표현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 속에 증오심을 심어주고 혐오를 부추김으로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는 이들은 진리와 무관한 이들입니다. 사람들이 경험하고 있는 불안을 이용해 거짓과 현실의 차이를 흐려놓는 이들이 많습니다. 성도들의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토대를 뒤흔드는 낯선 존재로 다가오실 때가 많습니다. '나의 욕망' 혹은 '나의 이익'을 중심에 놓고 세상을 바라보는 일을 그만두라고 말씀하시니 말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나 좋을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이웃이 되는 것입니다. 이웃은 우리가 잘 아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생면부지의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환대의 공간을 넓히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받은 소명의 핵심입니다.

바울 사도는 성도들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향기', '그리스도의 편지'라 말했습니다. '생명에 이르게 하는 향기'라는 은유는 기독교인의 삶이 어떠해야 할지를 잘 보여줍니다. 욕망의 악취가 진동하는 세상에서 우리를 불러주신 것은 청신한 삶의 기운을 불어넣으라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시절이 어려울수록 이 소명을 더욱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얼마 전에 읽은 레베카 솔닛의 <이 폐허를 응시하라>(정해영 옮김, 2009년)에 나오는 한 대목이 제 마음에 크게 남아 있습니다. 레베카는 역사 속에서 대규모 재해 현장에서 벌어진 일들을 살피다가, 재난이 사람들을 낯선 이들에 대한 경계심을 강화하기는커녕 사람들을 더욱 깊이 결속시키기도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 책을 썼습니다. 1906년 4월 18일에 샌프란시스코에 대지진이 발생했습니다. 매립지와 늪지대에 세워진 건물들이 쓰러졌고, 수도와 가스관이 파괴되었습니다. 전차 궤도가 엿가락처럼 휘어졌고, 공동묘지의 묘석까지 쓰러졌습니다. 화재까지 겹쳐 도시는 아비규환으로 변했습니다. 미용사 겸 마사지사로 일하던 아멜리아 홀스 하우저는 새크라멘토 가에 있는 자기 집에서 지진을 만났습니다. 아멜리아는 침착하게 화장을 하고 장신구를 달고 머리 매무새를 고친 뒤 공원으로 대피했습니다. 대피한 지 사흘째 되는 날 아멜리아는 담요 여러 장과 카펫 그리고 시트를 이어 붙여서 사람들을 수용하는 대형 천막을 만들어 어린아이들의 쉼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작은 무료 급식소를 열었습니다. 어리둥절했던 사람들도 아멜리아의 선한 뜻에 동참하면서 그 급식소는 유쾌한 소란으로 가득 찼습니다. 재난 상황이었지만 사람들은 그곳에서 새로운 사회적 유대를 경험했던 것입니다.

아멜리아는 급식소에 '궁전 호텔'이라는 역설적인 간판을 달고 있었습니다. 함께 즐겁게 그 상황을 이기자는 뜻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급식소 옆에 자리 잡고 있던 네바다주 출신의 구호팀은 '궁전 호텔'이라는 이름이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다면서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 이름은 '미스바 카페'입니다. 간판 위에 네바다 구호팀은 "자연이 한번 손을 대면 전 세계가 친구가 된다."는 문장을 적어놓았습니다.

레베카 솔닛은 백과사전이 정의하는 '미스바(mizpah)'는 히브리어로 "(물리적으로나 죽음에 의해) 분리된 사람들 사이의 정서적 유대"를 뜻한다고 말합니다(33쪽). 안식처, 희망에 찬 기대의 장소를 상징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아무래도 국가적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사람들이 만나곤 했던 망루라는 뜻일 겁니다(삼상7장). 저는 '미스바 카페'라는 그 이름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아멜리아는 나중에 그때의 기억을 회고록으로 남겼습니다. 그런데 그 회고록 속에는 두려움, 적, 혼란, 갈등, 낙담, 정신적 외상 같은 것들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낯선 사람이 친구가 되고 협력자가 되었던 놀라운 사건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아멜리아 홀스 하우저는 인간의 존엄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이 어려운 팬더믹 시대에 교회가 '미스바 카페'가 될 수 있을까요? 이게 우리 앞에 주어진 질문인 동시에 도전입니다. 청파교회는 바로 이런 교회를 지향해야 합니다. 교우 여러분의 협력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초조해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몸으로는 떨어져 있지만, 영적으로 깊이 연결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우리를 통해서 하시려는 일이 무엇인지 자꾸 물어야 합니다. 로제트 식물(rosette plant)은 민들레처럼 지면에 붙어서 뿌리에서 발생한 잎을 장미 모양으로 펼치고 월동하는 식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교회에 불어닥친 이 칼바람 속에서 우리는 로제트 식물의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허장성세를 버리고 본질을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지혜와 제안이 필요합니다. 마음을 열고 경청하겠습니다. 언제라도 좋은 제안을 해주십시오. 무더위가 남아 있다곤 하지만 그래도 가을이 다가오는 조짐이 보입니다. 내내 건강하게 지내시고, 유머와 유쾌함으로 주변에 가득 찬 우울한 기운을 몰아내십시오. 어려운 일이 있으면 꼭 알려주십시오.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굳게 붙들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 이 글은 청파김리교회 홈페이지의 칼럼란에 게재된 2020년 8월 21일자 목회서신 글임을 알려 드립니다.         

오피니언

기고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

"우리가 겪고 있는 퍼펙트 스톰은 교회나 사회나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방식, 다시 말해 우리의 교회에 대한 이해, 사회에 대한 이해, 인간에 대한 이해, 이웃과 타..

많이 본 기사

벌거벗은 세습교회

3년 전 MS교회가 세습하면서 한국 장로교회와 개신교회는 세상에 웃음거리가 되었다. 벌거벗은 채 3년을 살다가 코로나사태를 맞이했다. 그래도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