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이 집단적으로 진료거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의사를 옛날에는 인술(仁術)의 실천자라고 했다. 사람들을 사랑하여 그들을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특별한 기술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현재 서울 대치동에서 열심히 과외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들의 부모들 증 70%가 자기 자녀들이 의과대학에 입학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한다. 바라건대 이런 학생들이나 이런 부모들이 장차 인류를 위하여 인술을 펴려는 숭고한 뜻을 품고 노력하는 중이었으면 한다.
그런데 이런 순진한 바람이 지금 한국 사회에서 통할 수 있을까? 지금 의사가 되기를 원하는 학생들이나 부모들이 진정으로 의사가 되어 사회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 진료를 거부하고 있는 의사들의 주관심이 무엇인가 보면 대답은 명약관화하다.
"의사"라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 중 하나가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다. 그는 음악가로서, 신학자로서, 철학자로서, 교수로서의 지위를 버리고 아프리카로 가서 인술을 펼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에 대해 잠깐 알아보자.
슈바이처가 어찌하여 아프리카로 가게 되었는가? 슈바이처가 아프리카로 가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슈바이처가 어릴 때부터 남의 아픔을 보고 참지 못하는 불인不忍의 마음, 남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여기는 자비慈悲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자서전에 의하면 그는 아주 어릴 때부터 "세상에서 발견되는 비참한 일들을 보고 괴로워했다"고 한다.
그러나 더욱 직접적인 이유는 1896년 봄 부활절 아침에 있다. 이날 아침 젊은 슈바이처는 창문을 통해 침대 머리로 들어오는 밝은 햇살과 동시에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무한한 평온과 행복감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기가 누리는 젊음과 건강, 예술적 재능과 지적 능력 등 여러 가지 특권을 자기 혼자만 당연한 것으로 누려도 되는가 자문하게 되었다. 그는 자기가 뭔가 빚을 지고 있으며 따라서 이 세상의 고통을 함께 나누어 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그는 앞으로 10년간은 자기가 원하는 학문과 예술에 바치지만, 30세가 되면 말이 아닌 '직접 손으로' 사람들과 고통을 함께하는 일을 해야 하겠다고 결심했다.
1905년 30세가 되는 생일날 그의 친척, 친구, 동료들에게 자기의 결심을 공표했다. 그들의 적극적인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 해 10월 의과대학 강의를 듣기 시작하고, 1911년 10월 의사 국가고시를 통과하고 이듬해 6월 유대인이지만 무신론자였던 역사학자 해리 브레슬라우의 딸로서 교사와 사회사업가가 되려다가 슈바이처와 함께 아프리카로 가기 위해 간호학을 공부한 헬레네 브레슬라우와 결혼했다.
1913년 2월 인턴 과정을 끝내면서 「예수에 대한 정신과적 연구」라는 논문으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1913년 3월 26일 부인과 함께 그 당시 콩고, 현재의 가봉 오고웨 강 연안의 랑바레네로 출발했다. 임지에 도착하여 우선 닭장으로 쓰이던 건물을 임시 병동으로 사용하며 첫해에만 각종 환자 2천명을 치료했다.
우리 나라에서도 슈바이처 박사처럼 훌륭한 의사들이 여럿 있었고 지금도 있으리라 본다. 돈벌이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그야말로 인술을 펴서 아파하는 동료 인간들을 도우려는 순수한 마음으로 의사 일을 하는 이들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아프리카 수단에서 의료 봉사를 하다가 젊은 나이에 숨진 고 이태석 신부(1962~2010)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삶을 조명한 다큐 '울지마, 톤즈'를 볼 수 있다.)
지금 의사들 중에 이런 숭고한 목표를 가지고 의료 사업에 임하는 분들이 얼마나 될까? 내 아들놈도 캐나다에서 의사 노릇하지만 아픔으로 고통 받는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자기의 첫째가는 임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들리는 말로는 요즘 미국이나 한국에서 일하는 상당 수 의사들의 주 관심은 환자들의 아픔보다 병원의 수익창출이라고 한다. 수술을 많이 해서 병원의 재정을 튼튼히 하는데 얼마나 기여했느냐에 따라 그 능력을 평가 받는다는 것이다.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현재 미국이나 한국에서 최상위 두뇌를 가진 학생들이 의과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보통이다. 나는 평소 이것이 국가나 인류 전체를 위해 큰 손실이라고 생각했다. 일종의 브레인 드레인(Brain Drain)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의료 기술을 향상시키고 위험에 처한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위해서는 가장 명석한 의사가 필요한 것은 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상당 수 의사들의 경우 환자를 보고 진통제를 처방하는 것이 주된 일이라고 한다. 이런 일을 하는데 최고의 두뇌가 필요할까? 아까운 머리를 가지고 이런 일을 하는 상당 수 의사들은 자기 일에 회의를 느끼고 우울증에 시달리기까지 한다고 한다. 이런 명석한 머리로 소설가, 예술가, 사상가, 정치지도자, 교사, 발명가가 되어 창의적인 능력을 최고로 발휘할 수 있다면 사회 전체를 보아 더욱 좋은 일이 아닐까?
이왕 의사가 된 사람들은 지금 자기의 최고 관심사가 무엇인가 스스로 자문하는데 그 우수한 머리를 쓸 수 으면 좋겠다. 쓰다가 보니 별 이야기가 다 나왔다. 틀린 정보가 있으면 시정해주기 바란다.
※ 이 글은 오강남 리자이나 대학 종교학 명예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본보는 앞서 필자의 동의를 얻어 신앙성찰에 도움이 되는 유의미한 글을 게재키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