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설교] 사랑과 구제
장윤재 목사 (이화대학교회)

입력 Oct 26, 2020 09:44 AM KST

- 요엘 2:12-13, 로마서 16:1-7, 누가복음 6:32-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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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이화대학교회 담임)

마르틴 루터의 '교회개혁'(The Reformation) 503주년 기념 주일입니다. ('종교개혁'이라는 말보다는 '교회개혁'이 더 좋은 번역입니다.) 3년 전 교회개혁 500주년을 맞았을 때 많은 행사가 있었고 교회의 본질을 되찾으려는 선언적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무엇이 변했는지 궁금합니다. 오히려 지난 3년 동안 한국교회는 교회의 교회답지 않은 모습에 더 큰 실망을 준 것 같습니다. 여러 대표적인 교회들의 재정, 도덕, 세습 문제가 구설수에 오르면서 교회는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전에는 교회가 사회를 걱정했는데, 이제는 사회가 교회를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최근 코로나 상황 속에서 교회가 보여준 이기성과 폐쇄성으로 교회에 대한 실망은 더욱 커졌습니다. 10월의 마지막 주일인 오늘은 한국교회의 개혁과 우리 신앙의 회복을 다짐하는 날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어디서부터 교회개혁의 실마리를 찾아갈 수 있을까요? 저는 지금의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 속에서 로드니 스타크(Rodney Stark) 교수의 『기독교의 발흥』 (The Rise of Christianity [좋은 씨앗, 2016])에 대한 연구가 훌륭한 단서를 제공한다고 믿습니다. 스타크 교수는 미국 워싱턴대학교 사회학 및 비교종교학 교수로, 이 책에서 사회과학자의 시선으로 초기 기독교 성장의 요인을 탐색합니다. '초기 기독교'(Early Christianity)란 서기 1세기에서 5세기까지의 기독교를 말합니다. 이 책은 전염병과 기독교의 관계를 논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책 중 하나입니다. 로드니 교수는 먼저 초기 기독교 역사에 대한 많은 저서에서 '역병,' '전염병,' 그리고 '질병'과 같은 단어가 나타나지 않음을 발견하고 이는 사소한 누락이 아니라고 비판합니다. 왜냐하면, 초기 기독교의 지도자들이 기독교의 성장에 역병이 주요한 공헌을 했다고 말하고 있으며, 실제로 전염병과 같은 대재앙이 없었다면 기독교가 서구 사회의 지배적인 종교로 부상할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질문은 이것입니다. 어떻게 로마 제국의 한 변방에서 시작된, 미약하고 이름 없는 '예수 메시아 운동'이 로마 제국의 모든 다른 종교를 밀어내고 서구 문명의 지배적인 신앙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요? 흥미롭게도 초기 기독교의 역사에서 서기 250년과 300년 사이에 기독교 인구가 갑자기 수직으로 상승합니다. 즉 3세기 후반에 기독교가 급작스러운 대약진을 보여줍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서기 165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통치기에 가공할 역병이 로마 제국을 강타했습니다. 천연두였던 것 같습니다. 이 질병이 돌던 15년 동안 로마 제국 인구의 4분의 1에서 3분의 1이 사망했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마저도 서기 180년에 이 병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이후 서기 251년에 다시 똑같은 파괴력을 가진 역병이 제국 전역을 휩쓸었습니다. 이번에는 홍역이었던 것 같습니다. 천연두나 홍역은 사전 노출이 없던 지역에 발발하면 둘 다 대규모 치사율로 이어집니다. 사망자가 속출하여 이탈리아의 도시와 마을이 황폐화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고, 두 번째 역병이 한창일 때는 로마시 한 곳에서만 하루 5천 명이 죽었습니다. 하지만 로마 제국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의사로 존경받던 갈렌이라는 사람은 오히려 잽싸게 로마에서 빠져나와 소아시아 시골집에 은둔했습니다. 이는 지탄받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누구나 능력만 되면 그렇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예외가 있었습니다. 바로 '갈릴리인들'이라 불렸던 사람들입니다.

"모든 종교는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발생한다"(앤토니 F.C. 윌리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루에 수천 명이 '떼죽음'을 당하는 위기 속에서 로마의 철학과 종교는 답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인은 신앙의 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카르타고의 기독교 주교 키프리안이 251년에 쓴 글입니다. "우리에게는 이것이 죽음이 아니라 힘겨운 훈련입니다. 기독교인에게는 이 훈련이 죽음을 멸시함으로써 면류관을 예비하고 앞으로 전진하는 영광이 됩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세상에서 먼저 놓임을 받은 우리의 형제[자매]들은 애곡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들은 잃어버린 게 아니라 먼저 부름을 받은, 우리보다 앞장서 길을 떠난 자들입니다." 다른 모든 종교가 의구심의 대상이 되었을 때 기독교는 위기에 대한 설명과 위안을 선사했습니다. 죽음 앞에서 인생의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기독교의 이런 '교리'는 단지 위로만 선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천국에 대한 비전과 마음의 평화는 영웅적인 간호와 기적과도 같은 높은 생존율로 나타났습니다. 이교도들은 역병이 돌자 제일 먼저 아픈 자를 내쫓았고 병자가 죽기도 전에 거리에 내다 버렸으며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달랐습니다. 서기 260년에 디오니시우스 기독교 주교가 보낸 부활절 서신을 읽어봅니다. "우리 기독교인 형제[자매]들은 대부분... 위험을 무릅쓰고 아픈 자를 도맡아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필요를 공급하고 섬겼습니다. 그리고 병자들과 함께 평안과 기쁨 속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들의 죽음은 어느 모로 보나 순교와 다를 바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단지 기독교인들이 남긴 자료에서만 확인되는 게 아닙니다. 약 1세기 후 로마의 율리아누스 황제는 기독교 인구의 급속한 증가에 깊은 우려를 표하면서 이교도의 사제들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우리] 사제들이 가난한 자를 외면하고 방치할 때 불경한 갈릴리인들은 이 점을 주목하고 구제하는 데 주력했다... 불경한 갈릴리인들은 그들의 가난한 자만 돕는 게 아니라 우리의 가난한 자까지 돕는다!"

그랬습니다. 초기 기독교는 '사랑과 구제'를 신앙의 중심적 의무로 강조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기독교인들은 매일의 삶 속에서 그것을 실천했습니다. 실로 성서를 보면 사랑과 구제에 대한 계명이 많습니다. 예수께서는 겉과 속이 다른 바리새인들을 꾸짖으시며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누가 11:41) 말씀하셨고, 구제할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외손이 모르게... 은밀하게 하라"(마가 6:3-4) 명하셨습니다. 사도행전에는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10:2)한 고넬료에 대한 칭찬이 나옵니다(10:4, 10:31). 바울도 "나그네를 대접하며... 성도들의 발을 씻으며...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디모데전서 5:10)하라고 하면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로마서 12:8) 하고,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에베소서 4:28)고 권면합니다. 이와 동시에 바울은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린도전서 3:3)고 말하면서 구제는 시혜(施惠)나 동정(同情)이 아니라 사랑에 기초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사랑의 계명에 기초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실로 주님은 사랑의 계명을 주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 13:34). 새 계명은 단지 "서로 사랑하라"가 아니었습니다. 이 계명의 새로운 점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에 있습니다. 오늘의 교독문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려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것과 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한1서 4:7-11)는 겁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새로운 사랑의 계명의 구조입니다. 스타크 교수는 이 계명이 로마 사회에 얼마나 낯설고 놀라운 것이었는지를 알려줍니다. 로마인들이 구제에 무지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구제는 신을 섬기는 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로마의 신들도 사람에게 예배와 희생제를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저 아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일에는 무관심했습니다. 그 신들은 인간에게 윤리적 요구를 한 적이 없었고 그랬기에 윤리적 범죄를 벌하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인간들이 신에게 무관심하거나 의례 기준을 어겼을 때 심기가 불편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한 3:16)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게 당연하다 가르쳤습니다. 이는 당시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신이라는 존재는 사랑을 받아도 사랑을 느낄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귀에는 신이 세상을 사랑하며 또 인간이 서로 사랑하며 사는지에 관심을 가진다는 기독교의 발상은 어불성설로 들렸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리스-로마의 철학자들은 자비심을 병리학적 감정으로 비난했습니다. 자비란 '노력하지 않은' 자에게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므로 정의와 상반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자비라는 충동을 절제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믿기지 않지만, 플라톤은 그의 이상 국가에서 걸인 문제의 해결은 걸인들을 국경 바깥에 내다 버림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기독교는 사랑과 자비의 신이 인간에게도 사랑과 자비를 요구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는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였습니다. 게다가 주님은 이 사랑과 자비의 대상마저 넓혀놓으셨습니다. 오늘의 복음서 말씀입니다.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자녀가]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누가 6:32-36). 하나님께서 심지어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까지도 자비로우시므로 우리도 그렇게 경계를 넘어 자비로운 자가 되어야 한다는 구절은 가히 혁명적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의 차이가 현실에서도 실제 차이를 만들어냈을까요? 설령 초기 기독교인들이 역병 속에서 병든 자를 돌보라는 가르침을 따랐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과연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을까요? 놀랍게도 역사학자들은 기독교인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엄청난 인명을 살릴 수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한 학자(William H. McNeill)의 평가입니다. "모든 통상적인 서비스가 중단되었을 때는 상당히 기초적인 간호만으로도 사망률을 현저히 낮출 수 있다. 가령 물과 음식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일시적으로 쇠약해진 사람들이 비참하게 소멸하는 대신 스스로 건강을 찾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현대 의학 전문가들도 '약물을 전혀 쓰지 않고' 성실한 간호만으로 사망률을 3분의 2 또는 그 이하로 낮출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역병이 창궐하던 위기의 시기에 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사랑의 계명을 실천했다면 기독교인 이웃을 둔 덕분에 목숨을 건진 이교도 생존자들이 속출했을 거라고 학자들은 봅니다. 게다가 기독교인의 생존율은 훨씬 높았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면역'이 생긴 사람의 비율이 기독교인 중에 훨씬 높았을 것이고, 이 면역 보유자들은 환자들 사이를 마치 전신갑주를 입은 듯 돌아다녔을 것입니다. 사실 병자 간호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기독교인은 아주 초기의 발병자였다가 보살핌을 받고 살아남은 사람일 개연성이 큽니다. 이런 식으로 죽어가는 자를 치유하는 기적이 일어났을 겁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에 의해 간호와 치료를 경험한 수많은 이교도가 기독교로 귀의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초기 기독교의 사랑과 구제의 실천에 여성이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동안 기독교는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이라는 비판 때문에 우리는 초기 기독교가 여성들에게 독보적인 매력을 가진 종교였다는 사실을 종종 놓치곤 합니다. 하지만 초기 기독교에서 여성이 누리던 지위는 그리스-로마 사회에서 여성이 누리던 그것보다 월등하게 높았습니다. 그리스-로마 사회는 남성이 여성보다 훨씬 수가 많았습니다. 로마 인구는 남성 135명당 여성 100명의 비율로 극심한 남초(男超)현상을 보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렇게 극단적인 성비는 오직 '인간 생명에 어떤 조작'이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실제로 조작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영아 살해'였습니다. 그리스-로마 사회에서 그것은 사실 '여아(女兒)살해'였으며 그것은 합법적이었을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용인되었고 실제 사회 전반에 걸쳐 빈번하게 행해졌습니다. 기원전 1년에 힐라리온이라는 로마 사람이 멀리 출장을 갔다가 임신한 자신의 아내 알리스에게 보낸 편지는 유명합니다. 그는 자신이 집에 돌아가기 전에 "아이를 낳는다면, 남자 아기면 키우고 여자 아기면 강에다 버리시오"라고 썼습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둘 다 영아(여아) 살해를 합당한 국가 시책으로 천거하기도 했습니다. 근래 발굴된 로마의 한 항구 도시(아쉬켈론)에서는 목욕탕 아래로 이어지는 한 하수구에 기원후 6세기 어느 시점에 버린 엄청난 폐기물을 발견됐는데, 조사해보니 그것은 100구에 가까운 아기들의 뼈였습니다. 대부분 출생 하루밖에 안 된 여자 아기들의 뼈였습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모든 형태의 영아 살해를 금지했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였습니다. 또 기독교는 근친상간과 외도 그리고 일부다처제를 죄악시했습니다. 남성에게 성적 방종을 허용하던 이교도의 이중 잣대도 거부했습니다. 남편의 정절 파기를 아내의 불륜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로 간주했습니다. 기독교인 여성은 과부가 되어도 보호를 받았습니다. 생계지원을 받았고 재혼할지 말지를 본인이 결정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결과 기독교인 여성은 이교도 여성보다 훨씬 안정되고 평등한 결혼생활을 누렸습니다. 게다가 소녀가 만 12세가 되면 결혼시키던 로마인들과 달리 기독교인들은 만 18세가 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로마의 신부들은 어린아이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로마와 각 지방에서 각계각층의 여성이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일화가 고대 문헌에 차고도 넘칩니다. 기독교가 로마의 상류층으로 뚫고 들어간 것도 아내들을 통해서였습니다. 그 결과 기독교는 여초(女超) 현상이 지배적인 종교였습니다. 그 증거 중 하나가 로마서인데, 바울은 로마에 있는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모두 15명의 여성과 18명의 남성에게 문안을 전합니다. 이 '15:18'의 상징적 성비는 로마 교회에 이미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읽은 신약서신(로마서 16:1-7)에서 바울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소개하며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다고 칭찬합니다. 우리말 성경에 뵈뵈는 '일꾼'으로 번역되어 있으나 원문은 '여집사'(deaconess)입니다. 집사(執事)는 초기 교회에서 상당히 중요한 직분이었습니다. 예배의 의전을 보조하고 교회의 구제 활동을 책임지고 집행했습니다. 그런데 초기 교회에서 여성이 집사로 섬긴 일이 많았다는 사실을 교회가 오랫동안 숨겼습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 킹제임스(KJV) 역본의 역자들은 일부러 뵈뵈를 집사가 아닌 단순한 교회의 '일꾼'(servant)으로 지칭합니다. 디모데전서에서 바울이 여집사로 부른 사람들도 킹제임스 역본은 남자 집사들의 '아내들'인 것처럼 번역했습니다(디모데전서 3:11). 이는 성서에 대한 날조로 단지 17세기 교회의 성차별적 관행만 드러낼 뿐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분명히 여성이 집사 직분을 가지고 구제에 책임적인 활동을 했다고 말합니다. 나아가 바울은 초기 교회에 여성 '사도'(apostle)가 있었음을 이야기합니다. 로마서 16:7에는 바울은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라고 말합니다. 이어서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라고 소개하는데, 이 말은 "그들은 사도 중의 사도로서"라는 뜻입니다. 여성인 '유니아'를 사도 중의 사도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발명이 있기 전 손으로 성서를 써서 보급하던 시기에 이 '유니아'(Junia)라는 이름이 '유니아스'(Junias)로 둔갑한 적이 있었습니다. 유니아는 여성 이름이고 유니아스는 남성 이름입니다. 누군가 여성은 교회의 사도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이 성서의 필사 과정에서 '유니아'를 '유니아스'로 바꿔치기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초대 교회에서 여성은 집사로, 그리고 사도로 주님이 주신 사랑의 계명에 순명(順命)하여 역병으로 죽어가던 로마 사회에서 사랑과 구제의 삶을 살았습니다.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로마 제국의 한 변방에서 시작한, 미약하고 이름 없는 예수 메시아 운동이 어떻게 자신을 박해하던 거대한 로마 제국을 삼키고 승리했을까요?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콘스탄티누스 황제 한 사람의 회심 때문이 아닙니다. 서기 313년에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에 호의를 보이며 박해 중지를 선언한 진짜 이유는 서기 300년대에 이르면 이미 당국의 박해가 성공하기엔 기독교가 로마 사회에 깊고 넓게 퍼져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발흥'(The Rise of Christianity)의 궁극적 요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사랑의 새 계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원리, 즉 초월적 신의 사랑과 고도의 사회적 윤리를 결합한 새로운 원리입니다. 기독교의 이 핵심적인 사상을 잘 요약한 것이 바로 오늘의 공동기도문(성 프란치스코, <제가 천당에 들여보내 달라고 기도하면>)입니다. 어찌나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았는지 '제2의 그리스도'라 불린 중세의 이 성인(聖人)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여, 제가 천당에 들여보내 달라고 기도하면 당신의 반월도를 든 천사들을 보내셔서 천국의 문들을 제 앞에서 모두 닫아버리십시오. / 제가 만일 지옥이 무서워 당신을 사랑한다면 그 영원한 천길 불길 속에 저를 던져버리십시오. / 그러나 주여, 제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오직 당신 때문이라고 한다면 당신의 팔을 벌려 저를 맞아주십시오." 천국에 대한 욕망이 아니었습니다. 지옥에 대한 공포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아무 조건 없이,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에 대한 사랑, 그것을 성 프란치스코는 원했습니다. 이 순전한 사랑이 바로 '기독교 발흥'의 원인이고 오늘의 교회를 다시 세울 힘입니다.

난바라 시게루가 이야기하듯이(『국가와 종교: 유럽 정신사 연구』 [소명출판, 2020]) 유럽의 정신사에서 기독교가 탄생하기 이전에 사람들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한 것은 에피쿠로스주의와 스토아주의였습니다. 하지만 이 철학사상은 소수의 교육 받은 사람들만이 다가갈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신 자신이 이 땅으로 내려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인간의 죄를 대신 씻었다'라는 가르침을 통해 차별 없는 구원의 길을 열었습니다. 종래의 철학이 '정신의 귀족주의'였다면 기독교의 가르침은 '복음의 평민주의'였습니다. 이런 기독교에서 모든 기존의 가치는 전복(顚覆)됐습니다. '이제까지 스스로 현명하다고 했던 자가 현명하지 못한 자가 되고, 가치 없는 자가 가치 있는 자가 되는 세계'가 열린 것입니다. 그렇게 기독교는 무력하고 소외된 자들이 모인 '사랑과 구제의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이 공동체는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이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된 후 교회는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제도 교회'로 굳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시절에 기독교는 이 제도 교회가 이 땅에서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나라'이며 국가는 '땅의 나라'로서 교회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 세계관을 정립한 사람이 아우구스티누스이고 아퀴나스입니다. 하지만 이런 신학은 초기 기독교의 정신과 신앙에 위배 되는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503년 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이렇게 제도가 된 교회에 대항해 다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이상을 일으켜 세운 운동입니다. 하지만 이 개혁을 거쳐 탄생한 프로테스탄티즘도 머잖아 중세의 가톨릭과 유사한 길을 걸었습니다.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은 '교회개혁' 503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주일입니다. 우리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Ad Fontes!) 전쟁과 역병과 기근 속에서 폭력과 배제와 차별이 난무하던 시대에 초기 기독교는 오직 사랑의 계명에 의지하여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품는 '보편적 인간애'를 실천했습니다. 서기 1세기에서 5세기까지의 초기 기독교는 로마 제국을 강타한 역병들 속에서 사랑과 구제를 실천함으로써, 여성을 존중함으로써, 그래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갈라디아서 3:28)인 새로운 사랑의 공동체, 즉 교회(ecclesia, 民會)를 만듦으로써 서구 문명의 중심 신앙으로 깊이 뿌리 내렸습니다. 우리는 이 교회의 역사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요엘 2:12)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요엘 2:13)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으니, 여러분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목숨 걸고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 사랑의 힘으로 이 엄혹한 코로나 시대를 헤쳐 우리 모두 승리의 기쁜 노래를 부르게 되기를 바랍니다. (2020.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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