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너무나 신기한 일들

한문덕 목사(생명사랑교회 담임)

hanmoonduck
(Photo : ⓒ생명사랑교회 홈페이지(https://www.agapao-zoe.com))
▲생명사람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욥기 42장 1-6절, 시편 119편 65-72절, 누가복음서 21장 34-36절

[욥이 당한 고난과 논쟁들]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코로나 19의 상황이 길어지면서 우리의 삶도 더더욱 힘들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러 교인들께서 영상을 통해 저를 자주 보고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여러분들을 보지 못하고 카메라 렌즈만 보면서 말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하루하루 더 지쳐가는 느낌입니다.

새 예배 처소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서 신경 쓸 일들이 많아지고, 계속 되는 코로나 상황에서 2021년에는 어떤 목회를 해야 할지 고민이 많습니다. 지난 13일 방역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이날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200명에 육박했습니다. 전 세계는 이미 2차 3차 대유행에 접어들었고, 매우 잘 대처하는 우리나라도 언제 2차 3차 대유행이 올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래도 지난 8-9개월의 시간 동안 우리교회는 잘 견디고 버텨 왔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지혜롭게 목회해야 할 지 매우 난감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고난도 없고, 어려움도 없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이 세상에 한 번도 어려움을 겪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삶 자체가 고통이라는 불가(佛家)의 말도 있지만, 사람은 누구나 예기치 않는 일들을 당하게 되고, 그렇게 당한 불행이나 고통은 세월이 흘러도 그 마음속에 깊은 상처와 흔적을 남기기 마련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욥기의 말씀은 오랜 고통 가운데서 친구들과 또 후배와 논쟁한 후 욥이 하나님의 질문을 다 듣고 나서 했던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못하시는 일이 없으시다는 것을,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주님의 계획은 어김없이 이루어진다는 것도, 저는 깨달았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감히 주님의 뜻을 흐려 놓으려 한 자가 바로 저입니다. 깨닫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을 하였습니다. ~ 중략 ~ 그러므로 저는 제 주장을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잿더미 위에 앉아서 회개합니다."

언뜻 읽으면 욥이 자신의 기존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인정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 부분을 잘못 읽으면 욥과 친구들의 논쟁에서 친구들이 이긴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욥기는 결론 부분에서 분명 하나님의 입으로 욥이 옳았다고 말하고, 욥의 친구들이 틀렸다고 합니다(42장 7절). 원인을 알 수 없는 고통에 저항하는 자세가 바람직하다는 것이고, 따라서 오늘 욥의 고백은 더 세심하게 분석해 보아야 합니다.

욥에게 닥친 고난과 불행은 그야말로 참담한 것이었습니다. 자녀를 잃었고, 모든 재산이 사라지고, 그동안 얻었던 명예도 땅바닥에 떨어졌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흠이 없이 살았기 때문에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욥은 자신의 옳음을 일관되게 항변합니다. 자신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벌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주장합니다. 그러나 친구들은 뭔가 네가 잘못했기 때문에 이런 불행이 찾아 온 것이라고 일관되게 말합니다. 그래서 잘못을 회개하고 주님께 용서를 구하면 지금 형편은 미약하지만 나중에는 다시 창대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욥은 자기를 지키려고 하고,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 편을 들려고 합니다. 한편 엘리후는 욥이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 따지고 든 것이 매우 무례하게 느껴졌고, 그런 욥이 하나님의 의로움과 선하심을 훼손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변호하며 욥을 나무랍니다.

[하나님의 등장]

매우 긴 논쟁 끝에 하나님께서 직접 등장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욥의 탄식에 대해 대답을 하지 않으시고, 욥에게 계속 질문을 하십니다. 그 모든 질문은 대체로 창조주 하나님의 무한한 권능을 보여주는 질문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거기에 있기라도 하였느냐? 바닷물이 땅 속 모태에서 터져 나올 때에, 누가 문을 닫아 바다를 가두었느냐? 네가 아침에게 명령하여, 동이 트게 해 본 일이 있느냐?"

주님을 경외하며 흠 없이 정직하게 살아온 욥의 그 깊은 탄식과 질문에 하나님은 정확한 답변을 주시거나 위로하지 않습니다. 욥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욥이 알 수 없고 할 수도 없는 것들을 낱낱이 열거합니다. 과연 이때 욥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자신에게 발생한 모든 불행의 원인을 알 수 없어서 답답했던 욥에게 하나님의 그 질문 세례가 도움이 되었을까요? 답이 되었을까요? 제가 보기에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겪는 고통 때문에 너무 힘들고, 죄에 따른 징벌처럼 여기는 주변 사람들 말에 억울해서 죽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 나타나서 하시는 소리가 네가 무엇을 알겠느냐면서 당신의 권능만을 드러내시니, 하나님의 강압적인 모습에 욥의 마음은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을 것입니다.

욥기 42장 후반부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이전에 가졌던 재산보다 두 배나 더 주시고, 아들 일곱과 딸 셋을 주십니다. 겉으로 보기에 욥은 이전의 부유함을 회복합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이전보다 더 나아졌기 때문에 욥의 모든 형제와 자매들 그의 친구들이 와서 잔치를 베풀고 욥을 위로하였는데, 놀랍게도 욥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욥기 1-2장에 보면 욥은 자녀들을 위해서도 수시로 제사를 드렸고, 모든 일을 신중하게 처신하였습니다. 이전 욥 같으면 이렇게 모든 것이 회복되었을 때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친구들을 용서해 달라는 기도를 드린 것 외에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회복을 위해 어떤 행위도 하지 않습니다. 욥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던 서론이나 본론과는 달리 결론부의 욥은 무기력합니다. 욥은 불행과 고통을 당한 후 그 상처의 흔적을 간직한 채 말년을 보냈고, 자신의 수명을 그냥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났다고 매우 허무하게 끝납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욥기 설교를 하면서 고통을 당해도 하나님께 회개하면 결국 모든 것을 다시 원래대로 회복해 주신다는 맥락으로 말씀을 전하곤 하는데, 욥기를 세심히 읽어보면 욥기가 꼭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시작과 끝의 분위기는 전혀 다릅니다. 욥기의 마지막에서 하나님과 욥의 관계는 매우 냉랭합니다. 만약 욥기를 가지고 결국 하나님께서 보상해 주셨다고 설교한다면 그것은 욥기가 그렇게 거부하려고 했던 인과응보의 신학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욥기가 강력하게 우리에게 알려 주고 싶었던 깨달음은 바로 선한 이에게도 고통이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논리적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며, 세상을 살다보면 뜻밖의 일들이 생기고 그것이 엄청난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만큼 세상은 복잡하고, 복잡한 세상에서 한 개인이 자신도 모르게 당하는 고통의 상황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고 욥기는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등장은 욥의 상처 받은 마음에 위로를 주지 못합니다. 다시 돌아온 재산과 다시 얻은 아들 딸로도 욥의 고통은 회복되지 않습니다. 카인이 아벨을 죽였기 때문에, 첫 사람 아담과 하와는 자신의 작은 아이가 큰 아이에게 살해당하는 비극을 겪어야 했습니다. 둘째는 영영 사라졌고, 큰 아이도 품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벨 대신에 셋이라는 아이를 주셨지만, 아벨의 죽음으로 아담과 하와의 마음에 생긴 그 커다란 구멍을 과연 막을 수 있을까요?

욥기의 주제는 한 개인이 당하는 불행한 사태를 두고 함부로 동정하거나 위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쉽게 해결하려고 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고통이라는 것은 깊고 심각하다는 것을 오히려 깨우쳐 줍니다.

[욥의 깨달음]

그런데, 욥의 마음이 이미 다 닳아 없어질 만큼 누더기가 되었지만, 그의 울부짖음과 친구들과의 논쟁, 탄식과 물음, 고뇌 속에서 욥이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인간의 힘과 머리로는 도저히 깨달아 알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을 넘어서 발생하는 일들이 있고, 하나님은 그 어떤 것을 통해서도 당신의 뜻을 이루신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입으로는 그저 신기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오늘 욥은 깨닫습니다.

욥기가 말하려고 했던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인과응보를 뛰어 넘고, 불을 지피지 않은 굴뚝에서도 연기가 나는 일들이 세상에는 존재하고, 하나님은 바로 논리 너머에 계신 분이라는 사실을 욥은 엄청난 고통 속에서 문득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욥이 말합니다. "제가 알기에는, 너무나 신기한 일들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들어라, 내가 말하겠다. 내가 물을 터이니, 내게 대답하여라.' 하셨습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지금까지는 제가 귀로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제 눈으로 주님을 뵙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제 주장을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잿더미 위에 앉아서 회개합니다."

우리는 억울할 때 따지려 듭니다. 소리 지르고 그 분함을 참지 못합니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때때로 그 모든 아픔과 억울함을 간직한 채 묵묵히 들어야 합니다. 신비에 파 묻혀 도저히 그 존재를 알 수 없는, 모름 한 가운데서 그저 티끌과 잿더미 위에 앉아 있는 것처럼 고요히 머물러야 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보통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만 매몰됩니다. 다른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자신이 모욕을 당했다고 느끼거나 무시를 당하는 일이 발생하면 다른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를 질러댑니다. 지난주에 전도사님들과 저녁 식사를 하러 식당에 갔는데, 거기에서 손님과 가게 주인 사이에 작은 소란이 있었습니다. 서로 의사소통에 문제가 발생하면서 서로 격하게 언성을 높이고, 결국 경찰까지 왔습니다. 저는 그 과정을 차분히 지켜보고, 중간에 나서서 중재도 해 보았으나, 그런 상황들이 되면 사람들은 보통 흥분해서 전혀 주변을 보지 않습니다. 그 때에는 오직 자기밖에 모릅니다.

욥에게 닥친 그 고난은 온전히 자신의 고통에만 집중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냉정한 물음은 욥이 눈을 들어 올려 우주를 보게 만듭니다. 끝없이 펼쳐지는 세상을 보게 만들었고, 넓고 넓은 세상에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욥은 왜 나에게 고통이 오는가를 집요하게 물었지만, 반대로 이제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고통이 왜 나만을 피해가야 하는가를 물을 수 있는 여지를 두게 됩니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많은 일들 중 어떤 것들은 분명하게 원인과 결과가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그것에 맞추어 살면 됩니다. 그러나 세상살이의 많은 부분은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어떤 경우는 뻔히 그리 될 줄 알면서도 막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상황에 내몰려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의 결과에 여러 가지 요인이 함께 작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문제는 원인 모를 일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충고]

오늘 예수님은 누구에게나 닥칠 재앙의 날을 대비해서 이렇게 우리에게 충고해 주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해서, 방탕과 술취함과 세상살이의 걱정으로 너희의 마음이 짓눌리지 않게 하고, 또한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닥치지 않게 하여라. 그 날은 온 땅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닥칠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또 인자 앞에 설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늘 깨어 있어라."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방탕하기 쉽습니다. 가진 것이 부족하면 세상살이가 걱정됩니다. 많이 가진 사람은 즐기려고 술에 취하고, 없는 사람은 괴로움을 잊으려고 술에 취합니다. 사람들은 닥칠 재앙을 피하려고 많이 가지려고 하는데, 그것은 방탕을 불러오고, 못 가지면 걱정하지만 그것은 마음을 짓누를 뿐입니다. 술로 잊어보려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예기치 못한 일들이 닥쳐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은 바로 평소에 기도하면서 늘 깨어 있는 것입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하나님과 함께 풀어가는 문제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혼자 씨름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님과 함께 풀어가야 합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무엇에 깨어 있는 것일까요? 바로 자신의 한계를 알고 그것을 넘어서는 일에 대해서는 주님께 맡길 줄 아는 것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가능하신 분이었지만,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허락하시고, 하나님도 인간이 그럴 줄은 미처 몰랐다고 하는 뜻밖의 일을 겪게 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인간과 다른 점은 뜻밖의 일을 겪으실 때, 그것을 자신의 뜻 안으로 품어 안을 줄 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발생하는 모든 경험을 인간에게 베풀 사랑의 가능성으로 바꾸어 보관하고 계십니다. 잘 간직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어 사람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바로 앞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존재입니다. 자신의 머리카락 하나도 셀 수 없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알량한 지식과 경험으로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하려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뜻밖의 일을 자신의 뜻 안에서 품으시는 하나님과 함께 의논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주님께서 결국 이루신다는 믿음 속에서 주님께 맡길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자세입니다.

그래서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은 오늘 시편의 저자처럼 고난을 통해서 주님의 율례를 배우고, 주님의 계명을 따라 통찰력과 지식을 얻습니다. 때로 잘못된 길을 걸어가서 실족할 때도 있지만 그것을 경험 삼아 지혜로 삼습니다.

[코로나 19로 보낸 지난 시절의 신기한 일들]

코로나 19가 전 세계에 몰아닥칠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코로나 19가 이렇게 장기화될 지도 몰랐습니다. 또 코로나 19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여전히 모릅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저의 올해 목회 계획은 완전히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전면 재수정해야 했고, 저는 지금까지도 매우 당황스러운 상태입니다.

그러나 뜻밖의 일들이 생겨났습니다. 우리 생명사랑교회는 코로나 19로 인해 교회 차량을 구입했고, 코로나 19로 인해 예배 처소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19가 아니었다면 더 기다렸을 지도 모를 일들을 지금 막 해내고 있습니다.

지난 8-9개월의 시간 동안 온라인 선교와 관련해서 생명사랑교회의 도전과 시도는 매우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11월 매주 목요일 저녁에는 총회 영성수련원이 진행하는 기도학교가 줌으로 열리고 있는데, 그 과정의 모든 송출과 진행을 우리 교회에서 하고 있습니다. 18명 넘는 분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함께 기도에 대해 배우고 이야기 나누고 공감하는 시간을 보냅니다. 저도 함께 참여하는데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생명사랑교회의 처소 이전 소식에 함께 지원해 주고 계십니다. 엊그제는 우리가 이사하는 공간 옆에 청마사지를 운영하시는 여사장님께서 인테리어 하시는 일꾼들 드시라고 부침개를 정성껏 요리해서 주셨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목회자 양성 후원에도 뜻 있는 많은 분들이 참여해 주시고 계십니다. 덕분에 올해 저는 정말 너무 신기한 일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지난 세월 저의 목회가 잘 미리 준비되고 기획된 것에 따라 진행되었다면, 올해 목회는 매우 불확실성이 높고, 그날그날 부딪히며 진행되었는데, 너무나 신기한 일들이 생겨납니다. 설교를 시작하며 말씀 드렸지만, 2021년에 어떻게 목회를 할 수 있을지, 이제 등기권리증까지 나와 우리만의 예배 처소가 생겼는데, 그 작은 공간에서 무슨 내용으로 목회를 할 수 있을지 지금 정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차분하게 꼼꼼히 살펴가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목회해야겠다는 정도의 다짐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넓고 하나님의 은총은 무한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계속 놀라운 기회들을 우리들에게 부여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늘 깨어 있다면, 주님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면서 주님의 일에 참여할 마음만 있다면, 어떤 형국에서도 우리는 주님을 눈으로 뵐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2021년이 기대가 됩니다. 제가 잘해서도 아니고, 미리 준비가 되어서도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 생명사랑교회를 사용하셔서 펼치실 일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기대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지금 우리 예배에 함께 참여하시고, 새로운 하나님 나라 운동에 동참하려는 전국의 성도 여러분!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마음이 필요합니다. 진짜 그리스도교 신앙이 필요합니다. 코로나 19는 누구에게나 닥치겠지만, 그 상황에서도 우리는 얼마든지 신기한 일들을 경험하면서 전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스스로 조심하고, 늘 기도하며 깨어 있으셔서 그 어떤 것도 여러분의 마음을 짓누르는 일이 없게 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그 길에서 우리는 날마다 신기한 일들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 우리의 헤아림으로 주님의 뜻을 알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나 자신의 문제에만 골몰합니다. 갑작스레 벌어지는 일들에 놀라고, 예기치 않는 불청객 때문에 당황스러워 합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에서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게 하시고, 구름 뒤에서 여전히 빛나는 태양을 기억하게 하여 주소서. 주님 앞에 나와 온전히 주님의 뜻을 묵상하게 하시고, 주님의 율례와 계명에 따라 새로운 일들을 감당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에게 새로운 예배 처소를 허락하시고, 그곳에서 선교의 사역을 감당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가 기대하고 맞이하는 2021년이 되게 하시고, 무엇보다 마음의 준비를 하게 하여 주소서. 언제나 사랑으로 우리를 이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감사기도

자비하신 하나님! 우리가 주님을 송축하고, 우리의 입술로 주님을 찬양합니다. 11월을 보내며 올 한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한없는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겪는 어려움들을 이겨내게 하시고, 우리가 때로 주님께 소홀할 때에도 여전히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새 시대에 적응하며 또 다른 내일을 다시 꿈꾸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예배 공간을 이전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새 공간을 허락해 주심에 감사하고, 그곳에도 하나님 나라 선교를 잘 감당하게 하여 주소서. 이 시간 주님께 예물과 함께 우리 자신을 드립니다. 받아 주소서. 오늘 예배를 통해 천국의 기쁨을 누리고 저 세상으로 나아가 주님께서 감당하라 명하신 소명을 이어나가겠습니다. 모든 것에 감사하며,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스스로 조심하십시오. 기도하면서 늘 깨어 있으십시오. 그리하여 주님께서 펼치시는 신기하고 놀라운 일들을 맛보십시오.

*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거룩한 친교가 주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능력으로 신기하고 놀라운 일들을 감당하는 생명사랑 교우들과 지금 이 시간 함께 예배하는 모든 성도들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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