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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지워야 할 기억, 지우지 말아야 할 기억
이근후·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입력 Feb 12, 2021 06:55 AM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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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pixabay)
▲지워야 할 기억, 지우지 말아야 할 기억. 메모리 저장장치들의 모습. 위 사진은 해당글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어디서 들었는데 망각이란 하나님이 주신 최대의 선물이라고 했다. 내가 치료한 환자 중한 분이자기는 기억하기 싫은 기억이지만 일상 속에서 자꾸 떠올라 괴롭다고 말을 하면서 기억을 지울 수 있는 지우개가 있다면 참 좋겠다고 했다. 하나님이 주신 최대의 선물인 망각을 이 환자는 선물 받지 못했나 보다. 똑같은 사실을 두고도 기억을 하는 것도 있고 하지 못하는 것도있다. 또 선택적으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다.

기억이란 참 묘하다. 우선 기억이란 자극이 있어야 하고, 자극을 뇌세포까지 전달할 수 있어야 하고, 뇌세포에 저장할 수 있어야 하고, 필요할 때 회상을 한다면 그것이 기억이다. 우리가 일생 경험을 하는 모든 작업은 뇌에 저장된다. 그러니 컴퓨터에 비교한다면 뇌의 용량이 엄청나게 큰 것이다. 즐거운 사실은 기억하고 또 기억하기 싫은 기억은 지우는 것이 우리 모두의 소망이다.

정신과 치료 가운데에 옛날에는 전기치료라는 요법이 있었다. 120V의 전류를 1초 동안 두정부에 통전을 시킴으로써 순간적인 의식 상실과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 치료방법이다. 원래는 우울증 치료를 위해서 개발이 되었던 요법이지만 기억도 지우는 작용이 있었다. 그래서 특히 망상을 가진 환자들의 치료에도 많이 활용했는데 안타까운 것은 망상과 연관된 기억만 지우는 것이 아니라 기억해야 할 기억조차도 모두 잊게 하니, 불편한 점이 많다.

심지어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되살아 나는데 환자들이 꼭 잊고 싶어 하는 기억부터 먼저 되살아나니, 전기치료의 효과도 믿을 수가 없다. 요즘은 사용되지 않는 요법이니 다행스럽다. 기억이란 자연스러운 것인데 사람에 따라서는 이 자연스러움을 왜곡해서 기억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물론 의식적으로 기억을 왜곡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의식적으로 기억이 왜곡되기도 하고 선택적으로 과장되기도 하고 그렇다.

나는 강압 때문에 인위적으로 기억을 지우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경험이 몇가지 있다. 첫째는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 4학년 때까지 받았던 일제 식민지 교육의 여파로 생긴 경험이다. 나는 조선말(당시에는그렇게 불렀다.)을 하면서 자랐는데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해방이 될 때까지 4년 동안은강압 때문에 조선말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조선말을 기억하지 못하도록 강압을 받았다는 뜻이다. 학교에 가서 조선말을 하면 우선벌을 서고 매를 맞기도 하고 벌금까지내어야 했다. 이러니 이런 고통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강압적으로 조선말을 잊어야 했다. 그런데 해방이 되자 다시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일본말을 지우라고한다. 4학년 때까지는 조선말을 하면 벌을 섰지만 해방이 되고는 일본말을 하면벌을 섰다. 그러니 강제된 방법에 따라서 조선말도 지우고 일본말도 지운 경험이 있다.

두 번째는 내가 정신과 의사로 환자를 보면서 스스로 강제하여 기억을 지운 경험이다. 우리 환자들은 자기가 다급했을때는 모든 사정을 나에게 일일이 말을 해주었으나 치료가 되고 나면 수치스럽거나 민망하게 생각하는 이야기들도 많이 있다. 그래서 환자들은 자기가 했던 이야기를 치료자가 기억하는 것을 굉장히 부담스럽게 생각을한다. 이해할만한 생각이다. 내가 치료를 받기 위해서 다급하게 이야기를 했던 속 이야기까지 치료자가 계속해서 기억하고 있다면 부담스러울 것이다.

좀 우스운이야기이지만 내가 치료했던 환자한 분은 정신과 의사가 언제 제일 많이 한자리에 모이느냐고 물었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정신과의사들이 모인 장소에 가서 폭탄을 터트려서 몰살을 시켜야겠다고 했다. 정신과 의사들에게 무슨 원한이 있느냐고 물으니 정신과의사가 있어서 환자가 생긴다고 했다. 이런 비논리적인 생각을 하는 환자인데, 자기 이야기를 정신과 의사들이 기억하고 있어서 없애야 한다고했다.

비논리적이긴 하지만 그 환자에게는 기억이라는 게중요하다. 그래서 정신과 교과서를 보면 정신치료를 마친 환자는 일생 만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제일 좋다고 했다. 내가 환자들의 절실한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서 내 나름으로 환자들의 사연을 잊으려고나 스스로 강압적으로 기억을 지우기 시작을 했다. 환자를 기억하지 않는 강압적인 자가 훈련이다. 어느 정도 그런 강압적이긴 하지만 지우개로 지우듯이 훈련을 했더니 환자의 이름은 물론 환자가 했던 이야기들도 모두 잊을 수가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불편한 것은 환자의 이름이나 사연을 기억하지 못하게 된 것은 다행이지만 내가 꼭 기억해야 할 사람이라든지 또 챙겨야 할 기념일 등등의 이런 기억도 함께 없어져 버린다는 것이다.

이런 경험을 가진 나로서는 참 혼란스럽고 민망할 때가 많다. 나와 사회적으로 접촉하여 서로를 기억해야할 사람들 조차도 기억할 수가 없을 때가 있으니 민망하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오해하기 시작을 하면 내가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꼭 기억해야 할 이름은 기억하고 기억하지 않아도 될 이름은 기억하지 않아야 바람직할텐데 살아가다 보면 딱히 그렇게 맞추어 설명하기가 어렵다.

난감했던 또 하나의 기억상실은 내가 존경하는 선배 교수님인 김재은 교수님의 동생분의 이름을 어느 날 갑자기 잊었던 것이다. 온종일 기억하려고 씨름을 했으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김재은 교수님의 동생도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고 나와도 학술적인 집회에서 자주 만났던 처지였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제자들에게 하면 제자들은 우리 나이에도 그런데....하면서 나를 위로해준다.

그런 말에도 결코 위로를 받지못한다. 정신과에서 기억을 되찾기 위해서자유 연상 기법이 있다. 내가 나를 환자 삼아 자유 연상으로 그분의 이름을 기억해 내었다. 우습게 들릴는지는 모르지만, 그분의 이름을 기억하기위해서는 이름과 발음이 비슷한 여러가지를 연상하면 된다. 그 교수님의 이름은 김경동 교수인데 나는 어떻게 어떻게 자유 연상으로 찾아 들어가다가 경동시장을 생각해 내었다. 서울에 있는 경동 시장은 한약재를 주로 판매하는 시장이다. 나도 의사이기 때문에 약이라는 것을 연상하면 경동 시장은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 연상 덕분에 나는 그 이후에는 김 교수의이름을 잊어본 적은 없다.

정말 요즘은 나이 탓인지 이름들이 가출하는 경우들이 많다. 나는 그럴 때마다 포기하지 않고 여러 가지 연상을 통해 기어이 찾아내고 만다. 내가 애쓴 보람일까, 가출했던 친지들의 이름들이 아직까지는 되돌아오고있으니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지우개가 있더라도 같은 값이면, 기억하기 싫은 기억을 지우는 기능과 함께 꼭 되살리고 싶은 기억을 되살리는 기능을 함께 가진 지우개가 있으면 좋겠다는, 환자 같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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