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설교] 예수님 마지막 날, 마지막 말씀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본지 회장)

입력 Mar 22, 2021 08:19 AM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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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지유석 기자 )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 (본지 회장)

성경본문

창세기: 26-31; 요한계시록 21:1-4; 요한복음 13:34-35

대학교회 새 예배당 강단에 서는 영광과 감격

반갑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이 귀한 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1990년 대학교회 담임목사로 김옥길 총장님의 장례식을 주례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부른 찬송,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여"는 김옥길 총장님이 즐겨 부르시던 찬송입니다.

1996년 정년 퇴임하고, 미국과 홍콩 등에서 아시아 신학을 강의하고 아시아지역의 대학을 지원하는 재단의 일을 하다가 귀국해서, 지금, 은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옴짝 못하고 집콕 방콕하고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 장윤재 목사님의 초청으로 역사가 있는 우리 대학교회 새 예배당 강단에, 대학교회 담임목사 직에서 은퇴한지 30 여년 만에 다시 서게 된, 이 감격과 영광, 어떻게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4순절 마지막 주일

오늘은 올해 4순절 다섯 번째, 마지막 주일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유대나라 수도 예루살렘에 유월절, 저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의 노예로 400년 동안이나 인간 이하의 고된 노예 생활을 하다가 모세의 인도로 해방되어 exodus, 탈출하게 된 해방의 날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우리로 말하면 일제로부터 해방된 날, 광복절과 같은 날, 그날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들어가신 날입니다.

오늘 저는 요한복음을 중심으로 해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직전,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님이 극진히 사랑했던 자매 마르다와 마리아 그리고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사는 집을 방문하셨던 일부터 시작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데까지, 예수님이 하신 일,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요한 12:3 마리아의 향유

나사로의 집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아마 나사로의 부활을 축하하기 위한 잔치였을 겁니다. 동네 사람들은 물론 예수님의 제자들도 모두 초대 받은 대단한 잔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잔치 자리에 앉으시자 마자, 나사로의 여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립니다. 반갑고 고마운 인사를 하는 줄 알았는데, "지극히 비싼 향유 "나드"라고 하는 순진한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그 아름답고 긴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고 있었습니다. 온 방 안이 그 향유로 향내가 가득했다고 합니다. 그 "나드"라고 하는 유명한 향유 값은 요새 값어치로 하면 한달 월급 정도가 아니라 1년 연봉 정도라고 하니 적어도 5천에서 1억 원 정도는 된다고 합니다.

성서학자들은 요한복음을 한 편의 드라마로 본다고 했지만, 정말, 한 편의 드라마나 뮤지칼을 보는 것 같은 광경이었습니다. 사랑과 헌신의 드라마입니다.

그러니 제자들의 돈주머니를 맡고 있었던 가롯 유다가, "아니 그런 돈이면,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들을 충분히 먹일 수 있는데, 이런데 허비하느냐?" 소리를 질렀습니다. 가롯 유다가 언제부터 그렇게 간나한 사람들을 생각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 옥합에 든 향유는 마리아의 전부였습니다. 전 재산이었습니다. 유대 습관에는 젊은 여인이 간직한 향유는 신혼 첫날 사랑하는 남편의 머리에 붓고, 나머지는 남편의 장례식에 남편의 시신에 뿌리는 사랑의 상징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발에 그 비싼 향유를 발라 드린 것은, 유대 풍습에 귀한 손님이 집에 들어 올 때, 그 집의 종이 손님의 발을 씻어드리는 예법을 행한 것입니다. 그 집의 종들이 예수님의 발을 씻기 전에 집주인 마리아가 물이 아니라, 비싼 향유로 예수님의 발을 직접, 친히 씻어 드린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위의 장례를 위해서 말입니다.

12:12 예루살렘 입성..."호산나" 그리고 성전 정화

마리아의 향유로 십자가의 죽음의 준비가 된 예수님은 수도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십니다. 호산나, 호산나, 종려나무 가지로 나귀 탄 예수님의 길을 장식하고, 흔들면서 만세를 부르짖는 군중의 환영을 받으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세상의 왕을 환영하는 승리와 영광의 길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의 길이고 가시 면류관의 치욕의 길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예수님이 하신 일은 먼저 유대교의 중심이며 이스라엘의 영혼인 성전으로 향하신 겁니다. 예수님은 혼자, 단독으로 요새 말로 "데모" 시위를 하신 것이고, 경찰의 입장에서는 난동을 부린 겁니다.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들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요한 2:14)"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시고, 양이나 소를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환전하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들기 파는 사람들에게 소리 질렀습니다.(요한 2:15,16)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 너희는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도다" (마태11:13; 마가11:15-19; 누가 19:45-48) 성전 "적폐청산"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성전 정화 행동은, 요새 우리나라 개신교 교회들, 기독교가 아니라, "개독교"라고 야단치고 "가나안 교회"라고 교회에 안나가, 안 나간다고 소리 지르는 안타까운 현실에, 분노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교회들아,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고 있구나,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어!!!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다."

예수님의 단독 혁명 행동이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친 로마 어용 종교 세력들은 어떻게 예수님을 잡아 죽일까 모의하기 시작했고 예수님의 제자가롯 유다와 내통하기 시작했습니다.

13:4 최후의 만찬: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하신 "최후의 만찬" 이야기는 우리가 성찬식을 할 때 마다 읽고 듣고 설교하는 이야기이고 또 그 유명한 만찬 그림으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가 1491년 2년 동안에 걸쳐 그렸다는 그림으로,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최후의 만찬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는 최후의 만찬 이야기에서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성찬 예식 하는 장면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성찬식 이야기는 빼고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특징인 것같습니다.

요한복음 13장을 보면, 1절부터 단도직입적으로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하고는, 4절에 가서는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8절을 보면, 예수님의 수제자란 베드로가 손사레를 치면서 "절대로, 내발은 안됩니다. 제 발만은 결코 씻지 못하십니다." 극구 사양하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는 이제 나와 아무 상관도 없게 된다." 예수님은 거의 협박 조로 베드로의 발을 내밀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교회에서 여러분이 다 보는 앞에서 목사님이 교인들의 발을 벗으라고 하고 발을 내 놓고 씻긴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는 꼭 한 번 있었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 여름 학교 강사로 갔을 때 일이었습니다. 개강예배에 참석했는데, 그 신학대학 교수들이 강대 앞에 줄을 서서 학생들과 외래 강사들의 발을 씻는 "세족식"이 있었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발을 벗고 교수님들 앞에 내 발을 내 놓을 자신이 없어서,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습니다. 미국 친구들끼리나 하라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결국 옆에 앉아 있던 미국 친구 교수가 내 팔을 꼭 붙들고, 강대 위 의자로 끌고 갔습니다. 내 앞에는 여자 교수 한 분이 대야 앞에 앉아서 내 발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내 머리에 떠오른 사람이 있었는데 예수님 앞의 베드로였습니다. 정말 그 순간, 베드로의 심정을 알 것 같았습니다. "내가 뭔데, 예수님이 내 발을 씻어 주셔야 해?" 그게 베드로의 심정이었다면, "내가 뭔데, 이 미국의 저명한 여자 교수가 내 발을 씻는담?" 내 발을 여자 교수 앞에 내미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내 존재 전체를 내놓는 것 같아 떨리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내 두 발을 대야 물 속에 넣고, 교수님이 내 발을 정성껏 씻는 동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그 눈물은 내 눈에서 나는 눈물이 아니라 베드로의 눈에서 나는 눈물 같았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사의 눈물, 예수님의 손길을 느끼면서 베드로가 흘렸던 눈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온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감격과 감동과 감사의 순간이었습니다.

요한복음으로 돌아가서 13장 12절을 읽으면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신 예수님은 식사하시던 자리에 돌아가셔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고 본을 보였노라."

나사로의 집에서 나사로의 누이동생 마리아가 값비싼 향유로 예수님의 발을 씻어 드린 것을, 예수님은 그 마리아의 사랑을 제자들에게 행하신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마리아가 나에게 한 것처럼, 나도 사랑으로 너희들의 발을 씻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에게서 받은 사랑의 빚을 제자들의 발을 씻음으로써 갚으신 것입니다.

13:21-28 사랑하는 제자와 가롯 유다, 떡 한조각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식사 자리에 다시 앉으셨지만, 마음은 몹시 불편하셨습니다. 13장 21절에 보면, "심령이 몹시 괴로워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두들 둘러 보면서 누구지, 누가 예수님을 판단 말이야? 하며 수근대었습니다. 수제자 베드로가 예수님이 가장 사랑하는 제자, 예수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워 있는 제자에게 예수님을 팔 제자가 누군지 예수님에게 여쭈어보라고 했고, 그 예수님의 품에 의지하여 누운 제자가 예수님에게 "그게 누구지요"하고 질문했습니다.(13:23-25)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자다." 하시고는 시몬의 아들, 가롯 유다에게 그 떡을 건네 주었습니다. 뻔뻔스럽게 그 떡을 받아 먹은 가롯 유다는 "네가 할 일을 어서 속히 하여라." 예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습니다. (13:26-28)

13장-17장: 예수 어록: 아가페

가롯 유다가 자리를 박차고 나간 뒤, 예수님은 유언 같은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말씀을 계속해서 17장 까지 하십니다. 간단히 말씀의 제목 만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일 중요한 말씀은,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남기신 최후의 말씀, 유언은 이 한마디, "새로운 계명"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는 이어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5절)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10절) 그리고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2-13)였습니다.

제자들에게 마지막 말씀을 마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셨습니다. 긴 기도 끝에,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사람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하셨습니다."(27절)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 마지막 기도는 "사랑의 말씀," "사랑의 계명," "사랑의 기도"였습니다.

19: 25-27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피흘리며 고통을 받으시면서 하신 말씀이 많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서는 그 말씀들을 모두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복음 요한복음에서는 단 한 가지 말씀만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밑에 어머니 마리아와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이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여자여, 보소서, 아들입니다." (19:26) 그리고는 그 제자 요한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니라." (19:27) 이렇게 요한은 예수님 집안의 양자가 되었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어머니의 사랑을 잊지 않고, 끝까지 어머니의 사랑에 보답했습니다. 그리고 요한을 동생처럼 극진히 사랑했습니다. 자기 가족의 한사람으로 자기 어머니를 맡기셨습니다.

요한의 서신, 그리고 요한 계시록:

오늘 우리가 교독문으로 봉독한 요한 1서 4장의 말씀은 요한복음, 사랑의 복음을 요약한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 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11-12)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한 1서 3:17,18)"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 장이이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이 계명을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요한1서 4:20,21: 공동변역)

말로만 사랑, 사랑, 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실성을 보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회사의 직원들과 노동자들을 말로만, 가족처럼 사랑한다고 하면서, 임금을 제때에 주지 않고, 일하다가 사고라도 나면,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참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발에 향수를 뿌리고 닸아 드리지는 못하겠지만, 그리고 예수님처럼,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지는 못하지만, 우리 생활의 한가운데서, 우리 일터에서, 이웃을 생각하고 나누고 섬기고 돌보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사랑에는 정의가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정의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전설에 의하면, 요한은 제자들 중, 베드로 보다, 도마 보다, 사도 바울 보다 더 오래 장수했다고 합니다. 교회당에 나타나게 되면, 교인들이 요한의 축복을 원한다고 단위에 모시고, 요한의 축도를 원했다고 합니다. 너무 연로한 나머지 기력이 없어 두 팔을 혼자 들 수 없어서, 교회 장로님 두 분이 양쪽 팔을 들어 올려 드렸다고합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단 한 마디, 있는 힘을 다해서, "마라나타...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그리고 모두 큰 소리로 "아멘"--- 눈물을 흘리면서 주님 오시는 날을 기원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 세상에 온전히 이루어지는 날,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는, 다시는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기 때문이니라." 요한계시록: 21:1,3,4.)

2천 년 전, 연로한 요한의 비전이었고, 희망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코로나의 고통 속에 있는 우리 모두의 기도이고, 믿음과 사랑으로 붙들고 있는 희망입니다. 이 희망을 안고 예수님의 사랑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부활절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 본 설교문은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지난 21일 이화여대 대학교회 강단에서 전한 메시지입니다. 이화여대 대학교회의 동의를 얻어 전문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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