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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민중신학, 삶의 자리 변화 직시해야"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심원 안병무 선생 탄신 100주년 폐회예배서 강연

입력 Oct 18, 2022 06:19 AM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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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혜암신학연구소 제공)
▲한신대 김경재 명예교수(본지 자문위원)

한신대 김경재 명예교수(본지 자문위원)가 1970-80년대 융성했다가 격변의 현실 속에서 시들어진 민중신학이 다시금 꽃을 피우려면 '삶의 자리'가 크게 변했음을 직시하고 대승적 신학 담론을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17일 심원 안병무 선생 탄신 100주년 및 민중신학 창립 30주년 기념 학술대회의 폐회예배 주강사로 나서 '영과 진리 안에서: 21세기 대승적 민중신학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하며 이 같이 전했다.

김 교수는 민중신학에 제기된 두 가지 문제 즉, △기독교신학으로서의 자기정체성 위기 △민중신학의 청중의 상실 등을 지적하며 안병무 선생의 말을 인용, 당시 시대상에서는 상황신학을 도모했던 민중신학이 드러난 현상, 즉 나무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필연적인 담론 형식이었다"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민중신학이 태동하고 창조적으로 전개되던 1970-80년 이후 반세기 50년이 지난 작금의 현실 속에서 살아있는 신학담론으로 제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라도 땅 위에 드러나지 않은 나무의 "뿌리와 생태학적 환경"에 해당하는 것인지 무엇인지를 종합적으로 고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현대사회의 변화속도를 감안할 때 민중신학 초창기 1970년대 중반기와 금년 2022년 사이 50년 기간은 그 변화의 질량적 무게와 의미는 엄청난 것이다"라며 종교계 혹은 신학계 밖 시공간 역사현실에 변환 4가지에 대해 논했다.

김 교수는 첫째로 정치경제 이념논쟁의 상대화와 민중의 깨어남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1991년 고라바쵸프의 러시아소비에트연방 해체붕괴와 1992년 중국 등소평의 사회주의적 시장개방정책은 사회주의 vs. 자유주의 정치경제적 선악 이념논쟁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며 "정치경제사회제도는 인간공동체가 살아가는 하나의 방편이고 방법일 뿐 선악 선택적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류는 체험했다"고 밝혔다.

둘째로 기술공학문명발전으로 대중적 정보화가 실현된 것을 꼽았다. 김 교수는 "오늘날 한국사회는 모든 사람이 모바일 핸드폰을 사용해 순식간에 정보를 교환하고 소통하며 부당한 권력을 감시 고발하는 정보화사회가 실현되고 있다"며 "동시에 기술공학문명의 발전은 알게모르게 대중의 행동을 감시, 조종, 선동, 의식의 마취를 가능케하여 민중현실은 보이지 않게 되고 단세포적 개인주의와 비판적 의식이 마비된 맹목적 '군중' 시대의 도래를 현실화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생태계 파괴, 기후붕괴, 바이러스 펜데믹으로 문명종말의 위기상황을 맞은 점도 들었다. 김 교수는 이러한 문제들은 "피부에 닿는 현실문제로서 인류문명의 지구종말 위기를 맞고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신봉자들에 의해 국가권력을 휘두르는 사이비 정치적 광기의 정상배들과 금융산업의 불로소득자들의 경제권력은 더욱더 강화되어 가고 있는 현실이다"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기존의 종교권위가 상실되고 신휴머니즘(neo-humanism)이 대두되고 있는 점을 꼽았다. 김 교수는 "계몽주의 이후로 당연시 되던 세속화 과정이 절정에 도달해 전통적 기존 종교들의 권위체계가 붕괴되었고 기계론적 생물학적 인간 이해가 득세하지만 인간심성의 내면에서 자기초월적 의식 곧 영성체험과 삼경사상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에 김 교수는 특히 "이것은 민중신학의 동반자였던 씨알사상, 동학사상, 대승불교사상, 인간의 초심리학 등에 더 많이 귀를 기울이고 대화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으며 "민중신학을 단순한 정치경제학적 해방신학 관점에서 보아오던 좁은 시각과 인식지평을 극복해야 한다"고 전했다.

21세기 대승적 민중신학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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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혜암신학연구소 제공)
▲한신대 김경재 명예교수(본지 자문위원)

21세기 대승적 민중신학에 던져진 과제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김 교수는 민중신학이 한국민중전통과 합류해 지평융합을 이루는 일에 천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나무의 뿌리의 차원에서 씨알사상과 민중신학의 지평융합을 강조한 그는 혹자가 오해하듯이 씨알사상에 씨알은 "단순히 인간의 존재론적 관념적 심성론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씨알은)역사주체의식을 갖고 자신의 성장과 성숙과 활동을 방해하는 모든 악과 싸우는 정치경제 사회적 존재다"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안병무의 민중신학 이해에 있어서 민중이라는 나무의 '뿌리'라는 것도 보이지 않지만 나무 곧 민중 생명체를 떠받치고 있는 '존재론적 지반과 능력'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다"며 "한국 민중사에서 근대한국의 주체적 민중운동 곧 동학혁명을 가능케 했던 수운의 '시천주' 사상이나 해월의 '사인여천' 그리고 손병희의 '인내천' 사상과 더 깊은 대화와 교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21세기 민중신학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 '자력적 민중구원론'의 본 뜻을 바로잡고 "생명이란 그 자체가 고난의 존재, 대속적 존재, 연대적-유기적 '한 몸'인 것을 더욱 밝혀가야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김 교수는 "민중신학은 민중을 죄성이 없는 깨끗한 존재라고 주장하거나 결코 미화하지 않는다"며 "다만 민중의 인간성이 지닌 본래적 선성(善性)과 자아실현의 가능성을 격려하고 기대하는 것이다. 교권과 정통적 교리신학이 원죄론이라는 도그마를 가지고 꽁꽁 묶어둔 인간성을 그 죄책감, 무력감, 자아실현 포기, 역사에 대한 책임성의 상실 등을 바로잡기 위해 민중구원론이나 민중메시야론을 말한 것이다"라고 했다.

민중신학이 속죄론을 가볍게 여긴 것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김 교수는 "민중신학이 전통적 속죄론이 범해 온 부정적 역기능을 극복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성급하게 기독교 정체성의 가중 중요한 부분인 '예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의 대속적 의미'를 가볍게 처리함으로 인해 민중신학이 현실교회를 구성하는 '민중교인'들의 영성을 외면한 것은 잘못"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그동안 민중신학은 예수의 '대리적 고난'은 인정했으나 '대속적인 속죄론 교의'는 부정적으로 보았는데 정통적 속죄론이 설명하는 논리 구조가 현대인들에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법적 보상논리 프레임이었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깊이 보면 전태일은 단지 구조악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엄밀히 말하면 크리스천을 포함한 당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죽인 것이고 전태일은 우리가 짊어져야 할 죗 값을 죽음으로서 대신 치룬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래의 민중신학은 정통적 속죄론 신학을 중세기 안셀름의 속죄이론 해석의 틀을 넘어서서 생명의 연대성, 대속성, 공동책임성, 자기희생적 사랑의 치유 능력 등등의 시각에서 다시 새롭게 정립하고 정통교회와 화해해야 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또 21세기 민중신학은 부활의 원초적 증언자들의 증언을 진지하게 새겨 들어 그 초월적 차원의 진리를 수용해야 한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특히 민중신학이 "계몽주의 이후 인간의 '실천이성'이나 '역사이성'의 한계 안에서만 부활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과감히 넘어서야 한다"며 "그래야 민중신학은 레디칼 하지만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신학으로 복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미래 민중신학이 투쟁해야 할 대상을 명확히 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21세기 민중신학이 싸워야 할 최대의 적은 이미 유사종교(quasi-religion) 수준으로 몸집을 불리고 막강한 권위를 지닌 두 종류 현대판 우상 곧 국가주의 폭력성과 신자본주의 텐트로 몸을 위장한 금융자본가들의 무자비한 양육강식의 탐욕성"이라고 전했다.

김 교수는 끝으로 "민중신학은 그 사명이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새로운 시작을 해야할 때"라며 "민중신학 선구자들의 정직했고 정의롭고 용감했고 탁월했던 유산은 계승하여 이어가되 '오늘날 민중의 삶의 자리'가 변화된 것을 직시하고 우리들의 생각의 지평을 보다 넓고 깊게하며 신발끈을 다시 동여매고 서로 격려해가며 나아가야 한다"고 밝히며 강연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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