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김영남]기독교와 이슬람 교리의 공통점

(한국복음주의협의회 10월 발제문)


기독교와 이슬람 교리의 공통점
김영남(아신대, 서울신대 강사)

 

I. 시작하는 말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급성장하고 있는 이슬람의 전 지구적인 선교(다와)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현대 이슬람의 급성장이나 일부 과격주의자들의 활동은 분명 기독교 세계에 뿐 아니라 전 세계에 큰 도전이다. 특히 무슬림 유입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야기 되는 문제는 유럽 뿐 만 아니라 지금 한국사회가 당면한 현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도전 앞에서 이웃으로 와 있는 무슬림에게 두려움이나 적대감을 가진다면, 그것은 복음전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무슬림이 와 있는 현실을 긍정적으로 인정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슬림들은 무엇을 믿는가를 이해하고 기독교와 공통점을 찾아 복음전달의 접촉점을 모색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슬람은 사실 기독교와 여러 면에서 기독교와 유사점을 지니고 있다. 발생지역적 배경 뿐 아니라 아브라함을 공통의 조상으로 하는 유일신교로서 오늘 날 양 종교의 명목상의 신자들은 서로의 교리적 혼동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7세기 아라비아에서 이슬람 출현에 영향을 미친 유대-기독교의 종교적 배경에서 생겨난 문제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의 언급은 양 종교를 비교종교학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복음 전달을 위한 통로로서 공통점을 발견하여 대화의 가능성을 모색해보자는 것이다. 물론 대화는 구원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종교다원주의적 것이 아니라 무슬림들의 소리를 듣고 그들의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유대-기독교적 유산이 흐르는 이슬람의 교리에는 기독교 교리와 공통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또한 두 종교의 갈등을 야기하는 차이점이 된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이것은 이슬람이 출현 이후 100년 이내에 그 넓은 기독교 지역을 차지하여 정착하게 된 사실을 설명해주기도 한다. 실제로 기독교와 이슬람의 대립 요인은 교리적인 것 이면에 있는 정치적인 것에 있다. 대립은 신학이나 신앙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신앙이 이데올로기화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무슬림들은 세계를 ‘다르 알 이슬람(신자의 집 혹은 평화의 집)’과 ‘다르 알 하릅(불신자의 집 혹은 전쟁의 집)’으로 구분하는데, 이슬람의 집의 터전은 교리인 六信(iman)이요 그 기둥은 실천 신앙 五行(五柱)이다. 즉 이슬람의 본질은 이 여섯 가지 믿음에 있고, 그 실체는 다섯 가지 실천사항을 통해서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슬람 사회는 이 六信五行을 핵으로 해서 운영된다. 이슬람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교리들은 이슬람이 발전하면서 신학자들이 정립해 놓은 것이다. 그 여섯 가지 교리들은 1. 유일신 2. 예언자 3. 경전4. 천사 5. 사후 6. 定命論이다. 이 교리들은 기독교의 신앙과 유사성을 띠고 있어 신앙적 깊이가 얕은 그리스도인에게는 혼란을 주는 심각한 도전이 되고 있다. 이교리들 안에는 창조, 인간이해, 죄, 구원, 그리고 심판과 같은 교리들이 다 들어 있는데, 얼핏 들으면 기독교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유사적 개념들은 무슬림들이 복음을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준비 자료가 될 수 있다.

 

II. 유일신 사상에 나타난 공통점


유일신 사상은 기독교나 이슬람에서 모두 신학의 가장 근본적 사상이 될 뿐 아니라, 직선적 시간 개념의 창조와 종말론, 그리고 하나님의 절대성과 주권이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유일신 사상은 두 종교의 공통점으로 보이나 역시 대립을 야기하는 주제이기도하다. 그러나 두 종교는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다를지라도 그분의 절대성과 주권, 그리고 자비를 분명히 말하고 있다는 사실에 초점을 둔다면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전달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슬람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유일신론이다. 이슬람의 신학, 철학, 그리고 종교생활은 "알라 외에는 다른 신은 없고 무함마드는 그의 사도이다"라는 고백에 다 포함되어 있다. 출생에서부터 임종시까지 귀에 들려지는 이슬람 메시지이다. 꾸란과 정통이슬람 신학에 나타난 신의 칭호 "Allah(al+ilah)"는 유일신을 나타내는 하나님이다. 아랍어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을 알라로 부른다. 기독교인이나 무슬림은 다 지존하신 창조자 하나님 한 분을 믿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언급할 때, 각자의 이해가 다르지만, 그들은 같은 분을 언급한다고 생각한다.

이슬람 이전의 아랍인들은 알라를 신들 중의 최고신으로 알고 인정했었다. 무함마드의 아버지 이름이 알라의 종 즉 압둘라였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해준다. 3백6십개 우상이 있는 카바 신전은 신들의 집이라고 불리지 않고 하나님의 집 즉 'Beit-Allah'로 불린 것은 이슬람 이전의 아랍인들조차도 최고신 알라의 통일성을 선언했다고 볼 수 있다.

알라의 유일성(타위드)은 이슬람에서 가장 근본적인 주제로서 꾸란112장에 언급되어 있다: "일러 가로되 하나님은 단한분이시고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성자와 성부도 두지 않으셨으며 그분과 대등한 것 세상에 없노라". 이슬람은 하나님의 통일성이라는 교리로 집약된다고 무슬림 학자들은 말한다.

무슬림학자 Falzur Rahman에 의하면, '알라의 존재는 철저히 기능적이다. 그는 창조자이며 우주와 인간의 지탱자이며, 인간에게 율법을 수여하고, 인간을 심판하며, 인간에게 공의를 요구하시는 분'이다. 무슬림 학자들은 "하나님은 존재의 본질이며, 그의 아랍어 이름은 '알라'이다. 그는 처음이요 나중이며, 그는 독특하며 그분과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는 홀로 한 분이시며 자존하시고,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으시며 모든 것이 그를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전능자이시며, 존재하는 것과 존재할 것을 존재케 하시는 분이시며, 어떤 것도 그의 뜻을 떠나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공의롭고, 지혜로우시며,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며, 영원하시고, 전능자이시며, 우주의 창조자이시고 주가 되신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다(2:255). 이슬람의 하나님의 속성은 알라의 가장 아름다운 이름들에 나타나 있다(59:22-24).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교리상 기독교와 이슬람의 가장 커다란 공통점은 유일신 사상인데, 이 유일신사상에 내포된 공유점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다.


1. 초월적 절대 타자로서 하나님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이슬람에서 하나님은 피조계의 어떤 존재와도 완전히 구분되는 존재이시다. 창조자 그분에게 비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꾸란42:11)는 진술은 세상이 그에게서 유출된 것이 아니라, 창조자와 그가 만드신 피조물과의 본질적인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증한다.

이슬람 교리에 다른 중요한 개념들이 많이 있지만 거의 이 교리에 포함되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교리는 유일신 개념인데, 이 개념에 나타난 신의 절대 초월성과 유일성은 아주 엄격하다. 전적 타자(Wholly Other)로서 인간의 경험 밖에 있다. "그분과 같은 이는 없다"(42:11)고 꾸란은 말한다.

하나님은 알려질 수 없으며,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라고 할 때 그것은 그에 관한 진리를 아는 것을 말한다고 무슬림들은 간주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고 단지 그의 뜻을 드러낼 뿐이라는 것이다. 이슬람에서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은 홀로 자존하시는 분이시고, 모든 간구를 들어주시는 분이시며, 왕이시고, 모든 완전한 속성들이 다만 그분께 속하며, 그분은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시며, 가장 위대하시고 가장 높으신 분이시다. 가장 자비로우신 분, 가장 은혜로우신 분, 주권자이시고 가장 강하신 분이시며, 구원과 계시를 주는 분이시고, 최후의 날 심판의 주재자이시다(112:1, 59:23-24, 16:3).

하나님은 절대자요 초월자로서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는 모든 것 이상의 존재자이시다. 인간은 항상 그분을 경외하고 그분을 찬양하며 그분의 유일하심을 믿어야 한다. 그분은 영원한 존재자이시다. 그분만이 유일한 실재자이시다. 하나님과 더불어 다른 신을 숭배해서는 안 된다. 심판자는 오직 그분뿐이시며 인간들 모두는 그분께로 돌아간다(28:83).

하나님은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시고 삶과 죽음의 주관자이시다. 만물을 유지하시며, 존재케 하시는 분이시다. 그는 모든 존재의 기초이며 가장 현명하신 분, 가장 공정하신 분, 가장 자비로우신 분, 어디에나 존재하시는 분, 전지전능하신 분, 죽음과 삶과 부활 같은 모든 것을 결정하시는 분이시다. 그의 유일성과 존재를 가르쳐주는 대표적인 구절은 꾸란 2:225 이다: "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고, 그는 살아계신 분 영원한 분이시다. … 하늘에 있는 것 땅에 있는 것 모든 것이 그분께 속하도다. … 그분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며 … 참으로 그분은 지고하시고 가장 위대하신 분이시다."

이슬람에서 하나님의 초월성 개념은 하나님의 창조물로부터 부재하거나 인류로부터 멀리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꾸란은 ‘하나님은 그의 생명의 혈관보다 그에게 더 가까이 있느니라“(50:16)고 단언한다. 하나님은 초월적인 분이시지만 ‘예배하는 자들에게 가까이 있어 그들의 소원에 응답하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분(2:186)’이다. 초월적 무한자가 유한적인 역사의 세계로 들어오셔서 구주가 되시고 성령으로 믿는 자에게 끝 날까지 함께하시는 기독교의 하나님을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무슬림들은 예배를 통해서 초월적 하나님을 만난다고 주장한다. 무슬림들의 예배가 종교적 행위로서 요구되어 율법 환원주의가 될 수 있지만, 두 종교의 예배자들 모두 신령과 진정한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 가운데 초월자 하나님을 만나기를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2. 만물을 창조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


1) 창조

성경과 마찬가지로 꾸란에서도 창조자로서 하나님은 아주 중요하게 언급된다. 우주에 존재하는 만물은 그의 유일성과 영광을 선포하기위해 창조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슬람 학자는 '창조의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하여 '모든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외함으로 그를 섬기도록 지음 받았다'고 주장한다.

꾸란은, 하늘과 땅의 만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찬양하며(17:44), 또 하나님은 육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좌에서 만물을 주관하신다(10:3)고 말한다. 하나님은 하늘과 대지에 있는 모든 신비를 알고 계시는 분(25:6)이고, 인간을 창조하시고 태양과 달의 궤도를 정하시고 하늘의 균형을 두신 분(55:3-7)이시다. 또 그분은 인간을 위해 삼라만상을 창조하시고 일곱 개의 하늘을 만드신 분(2:29)이시다. 꾸란은 만물의 창조와 더불어 만사를 주관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준다(32:5). 만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그를 찬양하도록 지음 받았지만, 피조물 가운데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역시 인간이다. 즉 인간의 기원과 본질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그들의 역할을 이해하는 데 핵심이 된다. 인간창조의 과정 묘사나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는 기독교와 다르지만 흙으로부터 창조된 인간 존재의 기원(15:26)이나 창조의 목적은 동일하다.

그러면 이슬람은 인간 존재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인간은 무엇이며, 그 목적은 무엇인가? 그는 어떻게 최고의 덕목을 실현하는가? 이슬람은 인간이라는 존재는 유한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지상에서 하나님의 대리자이자 종의 영광을 받은 존재이다. 비록 기독교에서처럼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라는 것을 거부하지만, 잘못된 길로 가게 되는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한다(14:34,37; 33:72; 4:28,32; 11:9, 12-10,13; 16:4; 96:6).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는 지상에서 다른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칼리파(대리자)라는 권위를 부여받았다(2:30-31). 아담이 지음 받을 때 형상은 누구의 형상인지 꾸란에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이슬람 영성학자들은 기독교와 같은 관점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인간이 칼리파(대리자)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았다는 사실은 피조물 가운데서 인간의 높은 위상과 창조의 절정을 나타내주며, 칼리파로서 인간의 역할은 주권자 하나님과의 어떤 유사성을 암시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창조주와 피조물의 구별이 전혀 흐려지는 것은 아니다.

꾸란의 관점에서 인간 존재의 목적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51:56). 정통 이슬람에 따르면, 인간의 목적은 하나님을 아는 것 보다 그의 뜻을 이해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기독교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슬람에서 창조론은 천지와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창조주와 피조물의 구분이 분명하게 나타나는 유일신 신앙의 중요한 부분이다.


2) 종말

유대-기독교 전통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슬람에서도 이 세상의 삶이 끝이 아니고, 이생은 내세로 이어진다. 이런 맥락에서 믿음의 행위는 중요한 것이다. 꾸란 자체가 인간이란 죽게 되어있는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꾸란3:185에서 모든 영혼은 죽음을 맛보게 되어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죽음에는 심판이 따르고, 그것은 부활 사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23:15-16). 심판의 기준과 부활의 근거가 다르기는 하지만, 종국에 인간이 죽게 되고 심판받게 되며 부활한다는 사상은 창조론과 마찬가지로 유일신 교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기독교와 이슬람의 공통적 교리를 발견할 수 있다.


3. 자애로우신 하나님


이슬람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이름은 하나님의 이름은 ‘가장 자비로우신 분’과 ‘언제나 자비로우신 분’이다. 기독교에서 하나님의 본질적 속성이 되는 ‘사랑’은 꾸란의 중심 메시지는 아니지만, 꾸란도 하나님의 사랑을 말한다(3:31; 5:54). 그러나 그 사랑은 무조건적이 아니라 복종여부에 달려있는 조건적 사랑이다. 꾸란5:54절은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사랑보다 먼저 온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사랑하므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실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을 사랑하시되, 그들이 복종할 때 보상 주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이 사랑은 복종에 대한 반응으로서 주인과 종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상과 벌 개념이 함의된 자비로 표현된 것이라고 보겠다.

그러나 사랑의 의미와 질적 차이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릇된 길로 가는 인간에게 자비와 사랑의 주도권을 가지고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두 종교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슬람은 인간이 알라를 사랑하는 종교라면, 기독교는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종교"라고 볼 수 있다는 어느 무슬림학자의 언급에 우리는 공감하며, 그 결과는 하나님의 종보다 그분의 자녀임을 강조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 행사되는 방식은 다르지만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점, 역시 두 종교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III. 맺는말


기독교와 이슬람의 확연한 차이는 이 죄에 대한 이해와 구원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문제에 있다. 그러나 한분 하나님에 의해 세상이 창조되고, 피조물 가운데 인간이 중심이 되며,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며 종말에 심판과 부활을 맞게 된다는 것, 그리고 인간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있다는 교리들은 양 종교의 바탕이 된다.

비록 인간이 타락한 존재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려는 시도가 제 종교의 형태로 나타난 것임을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은가?(행17:27). 그러나 아무리 종교적 탐구가 심오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왜곡될 수밖에 없음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롬1:18-23). 앞에서 언급된 이슬람의 기본 교리들은 기독교 전통과 아랍 종교 전통을 유산으로 하고 있지만, 근본원리는 유일 신론이다. 이런 면에서 이슬람은 성경적 종교도, 성경의 전통에서 완전히 독립적인 종교도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을 온전히 알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무슬림들이 신실하게 하나님을 경배하고 복종하는 경건한 삶은 오늘 그리스도인들에게 도전이 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무슬림들은 복음에 반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고넬료의 경우에서 보듯이, 구원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반응함으로써 임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무슬림들과의 대화에서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며 양 종교가 공유하고 있는 유산을 통해 복은전달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엄격히 단일 유일 신론을 주장하는 무슬림들에게 삼위일체 유일신론이 하나님의 속성 그 어느 부분도 손상시키지 않고 성육신을 통해 드러난 유일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임을 증거 해야 할 것이다.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한국교회 성장 이끌었던 번영신학, 이제 힘을 잃었다"

이원규 감신대 은퇴교수가 '기독교사상' 1월호에 기고한 '빨간불이 켜진 한국교회'란 제목의 글에서 한국교회의 미래가 어둡다고 전망하며 그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학문적 통찰이 없는 신념은 맹신이 될 수 있지만..."

장공 김재준의 예레미야 해석을 중심으로 예언자의 시심(詩心) 발현과 명징(明徵)한 현실 인식에 대한 연구한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김윤식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영적 현존, '경계의 신학'을 '경계 너머의 신학'으로 끌어올려"

폴 틸리히의 성령론에 대한 연구논문이 발표됐습니다. 한국조직신학논총 제73집(2023년 12월)에 발표된 '폴 틸리히의 성령론: 경계의 신학에서의 "영적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길희성은 예수쟁이...그의 학문적 정체성은 종교신학"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가 고 길희성 박사를 추모하는 글을 '기독교사상' 최신호에 기고했습니다. '길희성 종교신학의 공헌과 과제'라는 제목의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솔로몬 왕은 약자들이나 쓰는 속임수를 왜 썼을까?"

아이의 진짜 어머니와 가짜 어머니를 가려낸 솔로몬의 재판은 그의 지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발간된 ... ...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지구라는 개념이 인간에 의해 왜곡되고 짓밟혀왔다"

한신대 전철 교수가 「신학사상」 203집(2023 겨울호)에 '지구의 신학과 자연의 신학'이란 제목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에서 전 교수는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이주 노동자 환대의 윤리적 전략 "데리다의 환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이 12일 오후 안암로 소재 기윤실 2층에서 '이주노동자의 삶과 교회의 역할'이란 주제로 '좋은사회포럼'을 ...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알쓸신학 7] 중세교회 대중들의 신앙생활

중세의 신학은 기본적으로 스콜라주의이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의 삶과는 거리가 있었다. 스콜라주의 문헌들은 라틴어로 쓰여졌는데, 이것을 읽거나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알쓸신학 6] 중세 신학의 대략적 지도: 서방의 '스콜라 신학'과 동방의 '비잔틴 신학'

'중세 신학'이라는 용어는 통상 이 시기의 서방 신학을 가리킨다. 지리적으로는 유럽 지역이다. 초대교회 신학은 북아프리카와 소아시아에서 시작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