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갓난 아기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김종문의 필그림소나타 12

입력 Feb 23, 2010 05:34 PM KST

처음 연주를 하러 가게 된 중국. 전부터 우리 필그림앙상블을 초청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는 곳은 여러 곳 있었으나 번번히 무산되었다가 미국의 최집사님께서 다리를 놓으시고 여건을 만들어 주셔서 첫 중국 연주가 순조롭게 이어져 갔다.

청도,상해,북경으로 이어지는 연주여행은 중국을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연주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물론 좋았지만 청도에서 처음으로 발 맛사지를 받아 본 경험은 두고 두고  기억에 남을 것만 같다. 비용은 일인당 20위안이었는데 그렇게 저렴한 가격에 1시간 동안 발을 닦아 주고 주물러 주고 구석구석 시원하게 해 줄 줄은 기대하지 못했었다.
 
이렇게 한 번 발 맛사지에 맛을 들여 놓자 지금도 연주가 끝나고 다리가 아프고 피곤하면 제일 생각나는 것이 중국에서 연주 후에 받던 발 맛사지이다. 사실 연주란 것이 한 시간 반 동안 연주가 진행될 때만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필그림앙상블의 경우에는 만약 저녁 7시에 공연이 잡혔다면 연주시간 4시간 전쯤에 현장에 도착하여 음향셋업과 현장리허설을 하게 되는데 그럼 보통 3시부터 9시까지는 꼬박 서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지방의 경우라면 새벽부터 서둘러 움직일 때가 대부분이다. 연주가 끝나더라도 공연에 오셨던 분들과의 만남과 장비 철수에 걸리는 시간을 포함하면 이른 새벽부터 시작하여 자정을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몸이 정말로 피곤할 경우가 많다.

이럴 때마다 제일 생각 나는 것이 바로 중국에서 처음 맛본 그 발 맛사지이다. 따뜻한 물에 발을 닦고, 발의 구석 구석을 맛사지해 주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맛사지하는 분들이 하는 이야기가 맛사지하는 도중 발이 아픈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은 신체의 어디 어디가 안 좋다는 것들이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손짓 발짓을 통해 해나가는 것도 잠깐, 너무 시원하게 잘해주기에 몸이 피곤한 지 금새 잠이 들곤 했다.

맛사지 이야기가 나와서 생각나는 것이 또 있는데 맛사지로 유명한 곳은 태국이다. 그 곳에도 무수히 많은 맛사지 업소들이 있는데 처음에 태국을 방문했을 때에 나는 맛사지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어 그 곳 분들이 우리를 맛사지 업소로 데리고 가 주더라도 나 혼자만 맛사지를 받지 않고 버티다가 옆에서 누워 기다리는 중에 잠이 든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나의 이런 우려와는 달리 그 곳의 업소들은 상당히 건전한 분위기이고 모두 개방되어 있어서 내가 그 전에 가지고 있던 맛사지 업소들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감을 모두 털어 버릴 수 있었다. 태국에서는 계속 맛사지를 안 받고 혼자만 따로 놀다가 한 번은 마지 못해 나도 받게 되었는데 몸이 시원한 것도 물론 있었지만 다른 사람이 내 몸을 주무르는 것이 도무지 적응이 되질 않아서 한참을 낯설어 했다. 그리고 그 맛사지를 하시는 분들이 2시간 동안 정성을 다해 일하시는 것을 보니 참 힘드시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비용도 저렴해서 200바트이니 우리 돈으로 그 때 6000원쯤 이라고 보면 된다.

나와 우리 필그림앙상블은 이런 것도 경험할 기회가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했다. 일부러 관광을 가서 시덥지 않은 곳에서 많은 돈을 허비하고 오는 분들도 많을 텐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좋은 곳에 보내 주시고 좋은 분들을 만나게 하시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로써 많은 분들을 기쁘게 해 드리며 보너스로 이런 혜택까지 받으니 모든 것이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시 중국 이야기로 돌아 와서 중국의 청도는 하이얼이라는 중국의 대표적인 가전업체의 본사가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의 삼성이나 LG같은 큰 기업들 이라고 했다. 과연 시내 곳곳의 커다란 간판과 공장모습을 보니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또 그 청도라는 곳은 인천항에서 배가 왕복하는 곳이니만큼 항공과 선박 모두 우리와 교류가 활발한 도시이다. 지금은 너무도 많은 한국기업이 진출해 있고 한국사람들도 많아서 일반적인 이야기가 되었지만 청도에서 한국사람이 중국집에 전화해서 자장면을 시켜먹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던 적이 있다. 그 정도로 청도에는 많은 한국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한편, 청도는 또 19세기 말에 열강들이 중국으로 세력을 뻗칠 때에 독일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독일식 건축물들도 많이 있었고 우리의 6.25 전쟁 때 참전했던 전함도 바다에 띄워 놓고 전시 중이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중공은 우리의 적이었는데 세월이 지나다 보니 이제 그 것을 관광상품처럼 구경한다. 세월이 흐르면 이렇듯 모든 게 변하나 보다. 그러나 이렇게 모든 것이 변하여도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변치 않고 영원하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지 모르겠다.
 
청도에서의 에피소드 중 하나를 소개해 본다. 이미 중국은 기록적인 경제성장을 계속 구가하고 있어서 많은 해외 기업들이 중국에서 사활을 건 승부를 펼친다. 그 중에 일반 소비재를 판매하는 프랑스의 까르푸가 중국에서는 대표적인 대형마트로 자리를 잡았는데 한 번은 그 곳에 물건을 살 일이 있어서 가게 되었다. 승합차를 빌려서 모두 함께 가게 되었는데 주차장을 들어 가다 보니 높이 제한을 하기 위해 기다란 봉이 설치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의 승합차는 높이가 제법 높기 때문에 걸릴 것 같았지만 불안하면서도 다행스럽게 무사히 통과하여 주차장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장을 보고 다시 돌아가려고 차에 탄 뒤 차가 주차장에서 나오다가 그만 나오는 곳에 설치되어 있는 그 높이를 제한하는 봉에 걸리고 말았다. 우리 생각에 들어갈 때 통과하였으면 나올 때는 당연히 통과해야 되는데 어떻게 걸릴 수가 있는 지 의문이었다.
 
혹시 모두 차에서 내리면 차가 낮아져서 통과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차 밖으로 내렸는데 그 쇠로 된 봉이 보통은 줄로 매달려 있어서 차가 닿더라도 통과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건 철봉처럼 기둥이 있고 가로로 된 봉과 모두 하나로 튼튼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 차는 철봉 중간에 딱 끼인 상태가 되어 도무지 통과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타이어의 바람을 빼 보기도 하고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해 보았지만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우리는 그만 다른 차편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그 차가 어떻게 그 곳을 빠져 나갔을 지 모르겠지만 이런 황당한 일이 가능한 것인가? 아직도 나는 그 사건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 때 들었던 나름 재미있는 이야기가 또 하나 생각난다. 중국에는 인구가 많아서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인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도 안내원이 있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의 눈에는 낯설게 보이지만 그 곳의 현실이 그렇다.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 같은 것을 시키면 종업원이 가져다 주고 먹은 것도 치워준다. 그런 음식점에서는 모든 것이 셀프로 이루어 지는 우리의 생활과는 달라 많이 어색했다. 이런 환경의 중국에서 언젠가 새로 생기는 도로가 있었는데 아스팔트 포장을 한 뒤 가운데 중앙선등 줄을 그리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그런 작업은 보통 기계들을 사용해서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 분이 본 것은 많은 사람들이 도로 가운데 줄지어 앉아서 각자에게 할당된 길이 만큼 줄을 긋고 있었다고 한다. 예를 들면 1인당 하루에 3미터씩 이렇게 말이다. 그래야 많은 사람들에게 일할 기회를 줄 수 있기 때문일 거라는 것이다. 중국이기에 가능한 이야기가 아닐까?

이 이야기가 그렇게 황당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증거 같은 이야기가 또 하나 있다. 필그림앙상블은 중국의 55개 소수민족의 음악과 생활을 조사해 새로운 음악으로 재탄생 시키고 선교에 활용하려는 목적으로 혼자서 중국의 서쪽 지방 끝머리인 우루무치라는 도시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겨울의 끝자락이라 아직 쌀쌀할 때였다.

도시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우중충하고 이슬람권에 있는 곳이라 이슬람 사원들이 많이 눈에 띄었고 실업자들이 많아 거리에는 괜히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로 넘쳐 났으며 소매치기들도 많이 있다는 주의를 들었었다. 도로의 가로수들에는 쓰레기 봉지 같은 것이 바람에 날려 여기 저기 보기 싫게 걸려 있었다. 하도 지저분한 것 같아서 그 곳의 안내하시는 분에게 저것들을 어떻게 다 치울 수 있을까요? 하고 묻자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을 하는데 "하루 날 잡아서 사람들 다 나오게 해서 치우면 금방 없어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허무한 대답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긴 여긴 아직 사회주의국가이니 동원이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중국의 경제성장이 비약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자고 나면 모든 것이 새롭게 조성되어 신천 신지처럼 보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서도 이미 겪어 보았듯이 빠른 경제 성장만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발전시켜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 수가 있었다. 그러나 중국이 가진 장점들이 점점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하는데 부럽기도 하다가 기가 막혀 입이 딱 벌어질 때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청도는 비교적 깔끔하게 거리가 잘 정돈되어 있고 도시 뒤쪽의 랴오산은 바위산으로서 풍광이 기가 막혔다. 랴오산을 케이블카로 올라가서 전통차도 마셔 보고 산책도 하고 중국의 대표적인 산의 정취를 마음껏 누려 보았다. 산과 바다 도시가 어우러진 청도는 잘은 모르겠지만 사람살기에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랴오산에 내려 오다가 보면 옛날에 노자가 세운 도가의 본부가 있기에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 곳에 들르기로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느 절처럼 보였고 도가를 공부하는 도사차림의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였으며 그 도사들은 관광객들을 상대로 사진을 같이 찍어 주기도 했다. 그 모습들은 마치 영화 속의 사람들처럼 현실과는 동떨어진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밖으로 툭 튀어 나온 것처럼 느껴졌다. 마침 우리가 방문한 날은 무슨 기념일이라 제사를 지내며 의식을 거행하는 특별한 날이었다.

공자, 맹자, 노자 등 중국의 유명한 사상가들의 이야기는 많이 들어 보았지만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느껴보니 왠지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 필그림앙상블은 연주하는 음악가들이니 당연히 악기에 관심이 가서 제를 지낼 때에 사용하는 중국악기들을 유심히 살펴 보며 어떤 소리가 나는가를 관찰했다. 그리고 음악의 형태도 자세히 들어 가며 악보에 기록도 하는 등 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 필그림앙상블의 단원들이 진정한 음악가들로서 살아가기를 원한다. 그래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우리의 팀 활동을 통해서 그런 경험의 기회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보며 감사하게 된다.

중국의 어느 곳을 가 보았다고 해서… 또는 어떤 특정한 악기를 보고 배워서 음악 속에 잘 써 먹어서 좋은 음악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과정 속에서 느낀 모든 것들이 몸 속에 녹아 들어 언젠가 음악으로 표현하려고 할 때에 좋은 양분이 되어 훌륭한 음악으로 나오리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 앞에 펼쳐지는 모두가 소중하고 귀한 체험이 될 수 밖에 없다.  

도가의 본부 안을 이 곳 저 곳 구경해 보는데 오래된 나무들이 많이 있었다. 수령을 물어 보니 보통 천 년은 기본인 것 같다. 중국의 역사가 깊음을 나무가 대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어떤 젊은 도사가 우리와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우리가 중국어를 모르니 의사소통이 엉망진창이었다. 그런데 그 도사가 이런 질문을 하는 것 같았다. 너희들은 어디에서 왔느냐? 그리고 올 때는 무엇을 타고 왔느냐? 돈은 얼마나 들었느냐? 뭐 대충 이런 것들이었다.

그래서 우린 한국에서 왔고 비행기로 왔으면 한 사람당 중국 돈으로 약 2,000위안 정도 들었다고 이야기하자 입을 쩍 벌리며 크게 놀랐다. 어떻게 이런 곳에 구경 오는데 그렇게 큰 돈을 쓸 수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자세히 설명해 주고 전도하고 싶었지만 중국어를 할 수가 없어서 포기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가 우리를 보기에 적잖이 놀라웠나 보다. 그 젊은 도사친구는 눈빛이 초롱초롱 한 것이 밖의 세상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아 보였다. 그가 아직도 수행을 잘 하고 있을 지 아니면 궁금한 밖의 세상으로 뛰쳐나왔는지 궁금해 진다.

우리는 청도의 대표적인 한인교회에서 공연을 펼쳤는데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담임목사님께서 우리 필그림앙상블을 전에 보신 적이 없었으므로 일반적인 정통 클래식 연주 팀으로 생각하시고 광고를 하실 때에 중학생 이하의 어린 친구들은 우리 연주회에 방해가 될 지 모르니 데리고 오지 말라고 하셨다고 했다. 우리가 펄쩍 뛰며 목사님께 다시 말씀드렸다.
 
"저희 팀의 연주는 어떤 특정한 계층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갓난 아기로부터 노인 분들까지… 또 한국 사람뿐만 아니라 어떤 나라 어떤 민족이든지 관계 없이 한 자리에 모여도 괜찮으니 아이들도 오라고 다시 말씀해 주세요"라고 부탁을 드렸다. 우리의 연주회 때에 보면 어린이들을 등에 업은 엄마들도 많이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우리가 목격한 놀라운 광경은 이제 막 돌도 안된 아이들과 백일을 갓 지난 아기가 우리의 연주를 들으며 엄마무릎에서 벌떡벌떡 일어나며 춤추듯 박수를 치는 모습이었다. 아기들도 음악을 듣고 찬양을 들으며 저렇게 기뻐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그 때부터 하게 되었고,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기뻐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의 연주에는 아기들도 대환영이고 노인 분들도 대환영이다. 연주 곡목에 그 분들을 배려하는 곡이 포함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다시 광고를 한 효과로 어린아이를 업고 온 엄마들과 학생들도 함께 참석하는 좋은 공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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