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가자들은 '십자가의 길'에 앞서 기도로 마음을 모았다. |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예수님께서 공생활에 나서시며 처음으로 세상에 주신 메시지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교회는 복음을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닮지 않은 제자들의 무리인 교회는 복음적일 수 없습니다. 복음화는 누가 합니까? 복음은 교회의 높은 양반들이 외친다고 전해지는 것이 아니며 권위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복음은 고통 받는 이들의 하소연과 눈물을 보듬는 데서 시작됩니다.”
'이제 비로소 긴 겨울이 지났습니다.' 매서웠던 추위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지난 200여 일의 시간을 되짚으며 인사를 나누는 노사제의 음성이 떨렸다. 문정현 신부는 사순 시기를 맞아 새로운 기도 여정을 시작한다. 209일 동안 명동성당에서 기도생활을 이어 온 문 신부는 이번 ‘재의 수요일’부터 매일 십자가의 길과 말씀 나눔을 통해 생명과 평화, 교회 쇄신과 일치를 위한 기도를 시작한다. 3월 9일 오후 2시, 명동성당 성모동산에서는 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십자가의 길이 시작됐다.
문 신부는 기도에 앞서, “의도하지 않았던 일들이 자꾸 벌어진다. 매향리에 들어갈 때도, 대추리도 그렇게 오랜 시간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용산참사 때도 ‘어떻게 저럴 수 있나...’하는 생각을 하다가 11개월 동안 함께 하게 됐다. 명동성당도 참을 수 없는 상황들을 접하고 어쩔 수 없이 기도하러 온 것인데, 벌써 209일이 됐다”고 회고했다. 이어 "선배 사제들과 후배 사제들이 있는 명동성당에서 서로 외면해야 하는 상황이 힘들었지만, 이제는 편안한 마음으로 기도에 임한다”며 그동안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고 전했다.
문 신부는 이날 준비한 ‘재의 수요일’ 강론에서 “명동성당에서 보내는 사계절 동안 사제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 새로 나고 있다. 초기에는 분노가 많았지만, 기도를 할수록 그 분노의 창끝은 도리어 내 심장을 겨누었다. 이제 기나긴 기도의 끝을 맞이하는 오늘의 마음은 명동성당에 들어 올 때의 그 마음과 전혀 다르다”라고 고백했다.
또 문 신부는 “어느 누구도 권력화되고 상업주의에 빠진 교회를 이기지 못한다. 예수님도 바리사이 원로사제를 이기지 못했다. 성전은 높이 솟은 화려한 교회 건물이나 교회의 위계질서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고 그분을 마음에 품은 이들 속에 있다. 명동성당의 의미는 더 이상 형식적 권위와 과거의 역사 속에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예수님의 삶을 따르는 교회인지 아닌지를 통해서만 분별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문정현 신부와 함께 걷는 십자가의 길은 이번 사순절 동안 교회에 대하여, 신앙인의 삶에 대하여, 우리의 이웃에 대하여, 세상과 우리의 미래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며 재의 수요일부터 오는 4월 20일까지 월요일~금요일 매일 오후 2시부터 명동 천주교회에서 진행된다.
이날 재의 수요일에 참석한 이들은 문정현 신부와 성모동산에서 이야기를 나눈 뒤에 명동 천주교회 대성당에서 ‘생명 생태 십자가의 길’을 바쳤다.
2011년 3월 10일자 정현진 기자 regina@nahnews.net
(기사제휴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