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아현감리교회에서 감리교농촌선교훈련원이 주최하는 제3회 영성세미나가 열렸다. ⓒ김진한 기자 |
감리교농촌선교훈련원이 주최하는 제3회 영성세미나가 지난 29일 아현감리교회에서 ‘토머스 머튼에게 듣는다’란 주제로 열렸다. 강사는 평소 토마스 머튼의 생애와 사상에 깊은 관심을 갖고 탐구한 김기석 목사(청파교회)가 초청됐다.
토마스 머튼의 관상과 활동을 연대기별로 짚어 본 김 목사는 토마스 머튼의 삶 자체가 ‘완벽한 역설 투성이’라는 전제를 깔고 이야기 보따리를 하나 둘씩 풀어나갔다.
그의 말대로 토마스 머튼은 알려진대로 △수도원에 들어갔으나 은수자로서의 삶을 추구했고, △침묵을 서약했으나 수많은 책과 글을 남겼으며 △가난을 서약했으나 그의 책은 많은 돈을 안겨주었다. 또 △정절을 서약했으나 그는 총각이 아니었으며 △정주(定住)를 서약했으나 세계 이곳저곳을 방문했고 △기독교에 귀의했으나 선(Zen)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야 말로 역설 투성이의 삶이었다.
토머스 머튼의 생애 전반을 다룬 김 목사는 특히 머튼의 타종교에 대한 이해 그리고 사회 정의에 대한 갈망에 주목했다. 수련 수사 학장(1955-1965)으로 지내던 시기 머튼은 신(神)은 문화·종교·신앙에 구애 받지 않는 어떤 것이라는 인식을 하게 됐다.
김 목사는 "올더스 헉슬리의 책을 읽은 후 그는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도교, 수피교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각 종교의 교리나 제도가 아니라 인간 경험의 깊이를 어떻게 말하는지에 관심을 가졌다"며 "그가 아쉬워 한 것은 기독교가 신비 전통을 상실했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토마스 머튼이 남다르게 사회 정의를 부르짖는 것에도 찬사를 보냈다. 김 목사는 "인종 갈등과 베트남 전쟁, 사회적 불평등 상황 속에서 비폭력적인 사회 정의를 말하기 시작했다"며 "(이는)이데올로기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비폭력에 깊이 뿌리를 내린 정치적 급진주를 지향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 목사는 "아우구스티누스는 지상의 삶에서 정당한 전쟁은 불가피한 필요악이라고 생각했으나 토마스 머튼은 십자군 전쟁과 같은 종교 전쟁에 이런 전제가 얼마든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무조건적인 전쟁 반대의 필요성을 주장했다"설명했다.
“'공포의 균형'과 같은 개념은 부도덕하고 비인도적이며 부조리한 것이다. 그것은 모든 민족과 모든 문화의 자살, 즉 인류 공동체 그 자체의 파멸로 우리를 이끌 뿐”(『머튼의 평화론』, 41쪽)
“도덕적 진리를 방기하고, 수억명의 인류가 무참히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을 더 이상 진지하게 도덕적인 문제로 다루지 않으면서 그것을 현실적 권력관계로만 보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은 스스로를 도덕적, 인간적 가치와 수호자로 생각해야 하며 자신의 명확한 기준 설정과 논리 개발에 최우선을 두어야 한다.”(『머튼의 평화론』, 237쪽)
실제로 토마스 머튼은 1962년 핵무기 경쟁에서 미국이 맡은 역할을 비판하는 글을 잇달아 발표했으며 냉전·인종문제·아메리카 인디언 정책 따위에 관련된 글을 줄지어 발표했다.
그러다 수도원이 문을 두드린지 꼭 27년만인 1968년 12월 10일 아시아 베네딕도회와 시토 수도회의 모임에서 연설했던 방콕에서 전기 감전으로 사망하고 만다. 이에 대해 혹자에 따르면 머튼의 이 죽음에 미국 정보당국이 연루되어 있다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김 목사는 강연을 정리하며 끝으로 머튼에 대해 "깊은 침묵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았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세속을 향해 발언하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수도자로서 머튼이 그의 말대로 인간의 근본적 경험을 심오하게 하고자 일부러 사회 가장자리로 물러난 사람이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