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교회 희망, 낮은 곳에 내려가 바닥 칠 때 생길 것”

[생전 인터뷰] 오재식 전 월드비전 회장

다사다난했던 무자년(戊子年)의 한 해를 뒤로하고 기축년(己丑年) 새해를 맞았다. 지난 한해 동안 한국교회는 개교회주의 온상을 타파하고 서로 협력하며 연대의 틀을 구축, 다양한 봉사활동을 통해 사회내 약자들을 위해 헌신했다. 태안 앞 바다에서의 봉사, 거리의 노숙자들에 대한 봉사 그리고 굶주린 북한 동포들에 대한 지속적 지원 등 사회 구석구석 도움이 필요한 곳에 적시에 손을 뻗쳤다.

특히 진보 교계는 종교편향 논란 등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종교간의 화합과 평화를 선도했으며, 불교계 사태가 완만하게 처리되는 데 일정 부분 기여를 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경제 위기 속 어려움을 겪는 소수자들에게 지속적인 도움을 주는 한편, 소수자 인권을 배려하지 않은 정부의 일부 정책에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 여전히 한국교회가 우리 사회 내 중요한 위치에 있음을 보여줬다. 

그럼에도 불구, 얼마 전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교회를 향한 사회 구성원들의 신뢰도가 바닥 수준을 드러내 새해를 맞아 한국교회가 풀어가야 할 숙제들도 많음을 나타냈다.

▲ 오재식 박사 ⓒ김진한 기자

새해를 며칠 앞두고, NCCK 선교훈련원 초대원장이자 현재 아시아기독교연구원 원장 오재식 박사(75)를 만나 한국교회의 갈 길을 물었다. 한국전쟁 당시 ‘새 시대의 건설자’란 구호로 학생 운동을 펼친 고 강원용 목사의 직계 제자인 오 박사는 한국기독학생총연맹(KSCF)의 초대 총무로 에큐메니컬 운동의 최전선에서 민주화 운동, 민족 통일 운동에 한평생을 바쳤다. 

- 박사님의 신앙적 멘토는 누구였습니까?

“한국전쟁 당시 전 형을 따라 월남을 했습니다. 부산에서 생활을 하다가 우연히 고 강원용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그 때 젊은 학생들에게 ‘새 시대의 건설자’란 비전을 제시했고, 많은 학생들이 그 분의 생각에 동조하고 그 분의 활동에 동참했어요”

- 박사님은 고 강원용 목사님의 어떤 점에 이끌려 따르게 되었습니까?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진정성이 있었고, 그 진정성이 감동을 주었습니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요즘 한국교회는 이 진정성이 없어요. 그래서 감동이 없습니다. 당면한 시대적 과제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아파하고 또 이를 넘어 비전을 제시하는..그런 감동을 주는 교회가, 단체가 없으면 한국교회에 희망은 기대하기 힘들 것입니다”

- 그 감동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요즘 연합이니 뭐니 하지만 제가 볼 때 한국교회는 여전히 개교회주의적이에요. 자신의 교회가 최우선이고, 다른 교회, 다른 교단은 일은 뒷전으로 밀려나죠. 뻔한 연합, 뻔한 평화는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한국교회가 희망을 가지려면 이제는 위가 아닌 아래를 내려다 볼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현장으로 찾아가는 목회. 한국교회가 말구유에 태어나 민중 속에 뿌리 내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계승해 사회 내 최하층민이 살고 있는 밑바닥 구석진 곳까지 내려갈 때, 그리고 그 자리에서 소외받는 자들을 향해 따뜻한 사랑의 손길을 내밀 때 그 안에 진정성이 보이는 것이고, 감동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 박사님도 그 바닥을 찾아가신 적이 있습니까?

“1968년 학생사회개발단 간사로 봉사하면서 학생들과 함께 채석노동자, 공장노동자, 용품 판매원 등으로 위장 취업을 해 소외 계층의 사람들과 만나고 그들과 연대 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엔 그들과 함께 울고 웃으면서 그들에게 동화되어 가는 것이 선교라고 생각했어요. 바로 도시빈민 선교였습니다. 당시 노동자들의 비참한 노동 현실을 목격하고 체험한 학생들은 현장보고 시간을 이용해 서로의 사정을 공유했습니다.

일례로 어떤 학생이 일터에서 일을 마치고 노동자들이 투숙하고 있는 쪽방을 찾아 갔습니다. 가서 보니 노동자들이 저마다 큼지막한 짐보따리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는데, 풀지않고 그대로 보관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잠자리는 커녕 사주가 나가라고 하면 그날 당장이라도 나가야 하는 비참한 환경에 처해 있었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이들 노동자들에겐 정처없이 떠도는 것이 일상이었던 것입니다.

이 같은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목격한 학사단 학생들은 더욱 현장중심을 강조했고, 이는 기독학생운동이 도시빈민들과 긴밀한 연대를 갖는데 큰 기여를 하게됩니다. 향후 기독학생들은 못 배운 그들의 입이 되어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등 노동 현실 개선에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게 됩니다”

- 도시빈민선교를 말씀하셨는데, 고 전태일씨가 떠오릅니다. 그의 장례식에 참석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오재식 박사 ⓒ김진한 기자

“새문안교회에서 서남동·현영학 선생과 함께 학사단(학생사회개발단) 현장보고를 하려던 참이었지요. 의자에 앉아 대기 중인 저에게 한 학생이 쪽지를 갖다 준 것입니다. 당시 평화시장에도 위장 취업을 한 학생들이 고 전태일씨의 분신자살을 보고, 급히 저에게 전보를 보낸 것입니다. 당시 저는 최종길, 현영학, 서남동 선생님과 함께 성모 병원을 찾아 전태일 열사와 그의 어머니를 만났어요.


기독인이었던 전태일 열사의 장례를 지내기 위해 근처 교회를 찾았지만 그 교회 목사는 “자살한 사람은 교회에서 장례를 지낼 수 없다”며 차갑게 거절하시더군요. 저희는 다시 성모 병원 영한실에 와서 울며 기도했습니다. 그 와중에 경찰이 조사를 한답시고 시신을 빼앗아가기도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시신을 도로 찾은 저희들은 고 전태일 열사의 고향에서 소박하게 장례식을 치뤘습니다.

그러나 자살한 사람은 장례를 치를 수 없다는 목사의 말에 충격 아니 분노를 느낀 저는 장례식을 치른 뒤 얼마 후 <기독교사상>에 ‘어떤 예수의 죽음’이란 수필을 썼지요. 교회에서 자살한 사람은 장례를 치루지 않는다고 했는데 예수도 어찌보면 자살아닌가. 죽을 줄 알면서도 자신을 죽음으로 내 몬 자살아닌가 라는 주장을 폈지요. 그랬더니 보수교회는 물론이고, 진보교회로부터도 전태일과 예수를 비교했다며 재정적인 탄압을 받기도 했습니다”

- 지난 한해 한국교회는 거리의 노숙자들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찾아가 용기를 주는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국교회는 전체적으로 목이 곧고, 뻣뻣합니다. 그리고 근거없는 강한 자부심에 불타있습니다. 개교회주의 온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성전 안에만 하나님을 가두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들에게 성전 밖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때문에 내 등 뒤엔 하나님이 계시지만 바로 옆 사람에겐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합니다. 하나님을 항상 자기 편으로 만들고 자기 편에만 서 있는 줄로 압니다.

때문에 타 종교 사람들과는 대화도 하지 않으려 하고 귀부터 막습니다. 그들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목소리에 귀를 닫는 것입니다. 다문화 사회의 흐름을 역행하는 이 같은 한국교회의 배타성은 다문화 사회 속에서 한국교회를 고립시킬 것이며 한국교회의 쇠퇴를 불러 올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소중한 만큼 타인의 하나님도 소중합니다. 이것을 잊을 때 배려와 존중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배타와 멸시만 있을 뿐입니다”

- 한국교회의 희망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한국교회가 저 밑으로 내려가 바닥을 칠 때 희망이 생길 것입니다.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현장에 있는 사람들과 울고 웃으며 희노애락을 함께 할 때 교회의 진정성이 회복되고, 교회는 사회에 감동을 주는 고마운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입니다”

비서의 말에 따르면, 아시아기독교연구원 원장인 오재식 박사는 연말 동남아시아 순회 강연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과거도 현재도 현장 중심을 강조한 그는 앞으로도 육신이 허락하는 한 사회 구석진 곳, 밑바닥을 찾아가 가난하고 궁핍한 소수자들을 어루만지며 희망을 전해 주는 일을 할 계획이다. 말구유에 나신 예수. 현장을 찾아 떠나는 오재식 박사는 가장 낮고 천한 곳에서 참 예수를 만나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 오재식 박사

전 주한미국 레이니 대사와도 친분이 깊은 오재식 박사는 1933년 평양에서 태어나 47년에 월남했고, 한국전쟁 때 고 강원용 목사를 만나 기독학생운동에 첫 발을 들여 놓았다. 군 복무를 마친 60년도에 동양 시멘트 공장에 취직하려 했으나 주위의 만류로 KCC간사가 됐고, 이후 KSCM, YMCA, YWCA 등이 통합한 KSCF의 초대 총무를 역임하게 된다. 이때 국내 기독학생운동에 관심을 갖고 오재식 박사와 함께 활동했던 이가 레이니 선교사였다. 6년 반을 함께 사역했던 그들은 예일대학으로 유학을 가 레이니는 박사학위 과정을 오재식 박사는 석사학위 과정을 밟았다.

2년만에 국내로 돌아온 오재식 박사는 NCCK 선교훈련원의 초대원장으로 민족 통일 운동의 최전선에 뛰어 들며 민주화 운동에 이어 통일운동에도 두각을 나타냈다. 현재는 아시아기독교연구원의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도시빈민 선교 등으로 눈코뜰새 없을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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