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박태식] 독설가 예수 3- 거침없는 분

역사적 예수(19)

▲박태식 박사.
예수는 자기 형제를 가리켜 “바보라고 욕하면 중앙법정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부르면 지옥에 떨어지리라”고 가르친다(마태 5,22). 여기에 나오는 ‘바보’(히브리어로 ‘라카’)와 ‘멍청이’(헬라어로 ‘모레’)는 당시에 흔한 욕설들로, 상당히 점잖은 축에 속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수의 말처럼, 욕설 같지도 않은 욕설인 ‘바보’나 ‘멍청이’라는 한마디로도 지옥에 떨어져야 한다면 과연 그리스도인들 중에 구원받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런가 하면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나가는 게 더 쉬울 것이다”(누가 18,25)라는 말씀도 있는데, 이를 그대로 따른다면 부자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리 성당 건축 헌금을 많이 했더라도 모두 헛수고에 머무르게 된다. 따라서 우리 약한 인간들로서는 도리 없이, 예수의 말씀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결국 이를 ‘수사학적인 과장’으로 돌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이제 한 걸음 나아가, 제반 상황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해 보도록 하자. 어느 날 바리사이 한 사람이 예수를 자기 집에 초대했다. 틀림없이 그분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서 이루어진 초대였을 테니 여러 사람들이 함께 초대를 받았을 것이다. 아니면 갈릴리 호수가 어디쯤 높은 곳에 예수가 있었다고 가정해도 좋다. 그리고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들으러 둘러앉아 있었다.
   
대부분은 초라한 행색의 청중들이었으나, 몇몇은 희멀건 얼굴로 네 모퉁이에 긴 술이 달린 옷을 잘 차려 입고 군데군데 떼를 지어 앉아 있었다. 주변 이들과 비교하여 눈에 잘 띄는 모습이었다. 예수는 바로 그들의 콧등에 대고 저주의 말씀을 내린다. “너희는 회당에서 높은 자리를 즐겨 찾고 장터에서 인사 받기를 좋아한다. 너희는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다. 사람들은 무덤인 줄도 모르고 그 위를 밟고 지나다닌다.”(누가 11,43-44) 그 꾸지람이 얼마나 호되고 그 순간이 얼마나 민망스러웠던지 어떤 율사의 입에서 그만 볼 멘 소리가 터져 나오고 말았다. “선생님, 그런 말씀은 저희에게 모욕이 됩니다.”(누가 11,45)
  
하지만 주변의 다른 사람들은 일면 십 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통쾌함을 느끼면서, 다른 한 면으로는 큰 걱정을 했을 것이다. “저렇게 바른 소리만 하다가는 크게 다치실 텐데, 제도권 종교인들이 무서운 힘을 가진 자들이라는 사실을 모르시나?”  과연 그들이 걱정한 대로 율사와 바리사이들은 예수를 처단할 음모를 꾸몄고(마가 3,6) 마침내 실행에 옮기고야 말았다(마가 14-16장).
   
예수가 저주를 퍼부은 상대들은 대부분 율사나 바리사이 등 유다교의 종교 지도자들이었으며, 모두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들에 불과했다. 하느님의 율법을 핑계로 자신들의 특권을 마음껏 누리고, 겉으로는 점잖은 척 하지만 뒤로는 이리저리 추잡한 욕심을 채우기에 급급한 자들이었으니 말이다. 예수의 독설을 통해 그들의 위선이 남김없이 밝은 해 아래 드러난 것이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흔히 역사의 예수를 매우 고상한 분으로 여기고 자신도 그분처럼 고상하게 살아보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를테면,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마디 하나  하나가 장미꽃으로 변해 공중에 사뿐 사뿐 떠다녔으리라는 상상을 하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살펴보았듯이 역사의 예수는 고상한 언어와는 거리가 먼 분이었다. 그분은 갖가지 욕설을 입에 담았으며, 자극적이고 끔찍하기 짝이 없는 표현을 즐겨 사용했고, 사람의 면전에서 저주를 퍼붓는 등 무교양한(!) 행동을 한 분이었다.
   
일반적으로 복음서 작가들은 예수에게 누가 될 법한 보도를 가능한 한 옮겨 적지 않으려 애쓴 사람들로 여겨진다. 그러나 복음서 작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모습이 이 정도였으니, 역사의 예수는 온전한 의미에서 대단한 ‘독설가’였음이 확실하다. 따라서 올바른 정신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역사의 예수에게서 예의에 사로잡혀 할 말도 못하는 고상함을 배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두려움을 이겨내는 그분의 자신 있는 태도와 심장을 뒤흔드는 힘 있는 말씀에서 큰 용기를 얻어야 할 것이다.


박태식 박사(서강대, 가톨릭대, 성공회대 신학 외래교수)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개인 구원만 지나치게 강조해 창조 신앙 무력화돼"

창조 신앙을 고백하는 한국교회가 개인 구원만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신앙이 사사화 되면서 연대 책임을 물어오는 기후 위기라는 시대적 현실 앞에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마가복음 묵상(2): 기독교를 능력 종교로 만들려는 번영복음

"기독교는 도덕 종교, 윤리 종교도 아니지만 능력 종교도 아님을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자의 실존적 현실이 때때로 젖과 꿀이 흐르는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특별기고] 니체의 시각에서 본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

""무신론자", "반기독자"(Antichrist)로 알려진 니체는 "유대인 문제"에 관해 놀라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소개함으로써 "유대인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영적인? 무종교인들의 증가는 기성 종교에 또 다른 도전"

최근에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무종교인의 성격을 규명하는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정재영 박사(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종교와 사회」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신의 섭리 숨어있는 『반지의 제왕』, 현대의 종교적 현실과 닮아"

『반지의 제왕』의 작가 톨킨의 섭리와 『반지의 제왕』을 연구한 논문이 발표돼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숭실대 권연경 교수(성서학)는 「신학과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논문소개] 탈존적 주체, 유목적 주체, 포스트휴먼 주체

이관표 박사의 논문 "미래 시대 새로운 주체 이해의 모색"은 세 명의 현대 및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의 주체 이해를 소개한다. 마르틴 하이데거, 질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교회가 쇠퇴하고 신학생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하다"

한신대 김경재 명예교수의 신학 여정을 다룬 '한신인터뷰'가 15일 공개됐습니다. 한신인터뷰 플러스(Hanshin-In-Terview +)는 한신과 기장 각 분야에서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진과 선에 쏠려 있는 개신교 전통에서 미(美)는 간과돼"

「기독교사상」 최신호의 '이달의 추천글'에 신사빈 박사(이화여대)의 글이 소개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키에르케고어와 리쾨르를 거쳐 찾아가는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사회봉사를 개교회 성장 도구로 삼아온 경우 많았다"

이승열 목사가 「기독교사상」 최근호(3월)에 기고한 '사회복지선교와 디아코니아'란 제목의 글에서 대부분의 교단 총회 직영 신학대학교의 교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