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묵 목사(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소장, 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가 "세계적으로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자 시도한 친위쿠데타의 성공률은 무려 98%에 이른다고 한다"며 "거의 실패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2024년에서 2025년으로 이어지는 겨울 한국 민중은 그 친위쿠데타를 막아냈다. 이로써 삶이 더 나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25일 '윤석열 폭정종식 그리스도인 모임 제22차 시국논평'에서 이 같이 밝힌 최 목사는 "삶이 더 나아지는 세계, 다시 만난 세계는 지금 연대의 대열에 함께 하고 있는 이들 가운데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며 "그 삶을 스스로 구현하는 이들이 명실상부하게 정치적 주권자로서 몫을 다하게 될 때 새로운 사회의 모습은 공적인 형태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아래는 시국논평 전문.
다시 만난 세계, 시민의 이름으로 귀환한 민중
2024년에서 2025년으로 이어지는 겨울에 일어난 저항운동은 매우 특기할 만한 양상을 띠고 있다. 다양한 세대와 계층이 어우러진 가운데 정치적 직접 행동에서 사회적 직접 행동으로 이어지는 양상이 그 단적인 특성이다.
과거 끔찍했던 계엄의 기억 탓에 또다시 야만의 시대로 회귀해서는 안 된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참여한 구세대들에서부터, 마치 공기처럼 당연한 조건으로 여겨졌던 민주주의가 순식간에 파탄 나 저마다의 일상적 삶이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으로 참여한 신세대들에 이르기까지 그 세대의 폭이 넓다. 계급과 계층의 측면에서도 다양한 구성을 이루고 있다. 노동자와 농민, 지식인과 종교인, 또는 특정 시민단체 회원들로 구성된 그간 시위 행렬의 전형성과는 다르다. 평소 살기에 바쁜 여러 생활인들이 함께하고 있다. 그 가운데 특별히 2030여성들의 참여가 두드러진다. 하지만 그것만이 두드러진 특성은 아니다.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다양한 소수자들의 참여다. 이른바 시민권을 갖지 못한 다양한 소수자들이 어우러지고 있다. 형형색색의 다양한 깃발들에는 그 다양한 주체와 요구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다른 국적의 거주민과 이주민들이 함께하고 팔레스타인인들도 함께한다. 장애인들이 위화감 없이 동참하고, 성소수자들도 참여하여 당당하게 단상에서 발언을 맡기도 한다. 평소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들이다. 언제나 시위 현장은 모두가 어우러지는 축제의 한마당이다. 부당한 정치권력에 저항하는 정치적 직접 행동이 타자들과의 연대를 지향하는 사회적 직접 행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사연은 바로 그 시위 현장의 경험에서부터 비롯되었다 할 것이다.
시민의 이름으로 귀환한 민중이라고 해야 할까? 줄곧 그 저항의 주체가 '시민'으로 호명되고 있지만, 실상은 '민중'적 전형에 가깝다. 정치적 권리의 주체로서 시민은 통치의 근본이 되는 주권자로서 민(民)을 의미하기에, 그 뜻을 거스른 통치행위를 바로잡고자 하는 주권자를 주목한다는 점에서 비상계엄 이후 저항의 국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저항의 주체는 전형적인 시민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아예 정치적 시민권이 없거나 정치적 시민권이 보장되어 있음에도 사회적으로 전형적인 시민으로서보다는 소수자로 불리는 이들이 함께하고 있다. 그 비율이 얼마만큼 되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 저항의 대열이 이들에게도 열려 있고 함께 주체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는 한국 현대사에서 보여 왔던 전형적인 민중적 현상에 해당한다. 한국 민중운동의 두드러진 특징은 그 주체로 다양한 계급과 계층이 결합하면서 정치적 권리 요구에 더하여 생존권의 요구가 결합하는 양상을 보여 온 점이다. 민중은 "생활가치를 생산하고 세계를 변혁시키며 역사를 추진해 온 실질적 주체이면서도 지배권력으로부터 소외·억압되어 천민·죄인으로 전락했"지만 "역사의 발전에 따라서 자기의 외화물인 권력을 원자리로 되돌리고 하나님의 공의의 회복을 주체적으로서 이끌어서 그로써 구원을 성취"한다. 민중신학자 서남동 선생의 통찰은 바로 그 민중의 운동을 직시한 결과이다. 민중신학을 형성하는 데 실천적 기반을 다진 박형규(朴炯圭) 목사는 "자유가 없는 곳에서는 이웃사랑도 할 수 없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이는 민중의 생존권적 요구와 정치적 권리의 요구가 결합할 수밖에 없는 한국 민중운동의 성격을 잘 집약해 주고 있다.
한국 근대 역사에서 1894년 동학민중운동이 폭발한 이후 다양한 계급과 계층이 결합하고 정치적 권리 요구와 더불어 생존권의 요구가 결합하는 민중운동의 양상은 일관되게 지속되었다. 1898년 만민공동회, 1919년 3.1운동, 그리고 1945년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분단 이후 1960년 4.19 혁명,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 1987년 민주화항쟁, 2016~2017년 촛불항쟁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양상이었다. 그리고 지금 12.3 비상계엄 이후 권력자에 의한 친위쿠데타로서 내란을 진압하고자 하는 항쟁 역시 같은 양상을 띠고 있다. 안병무 선생이 누누이 말하는 민중운동의 화산맥이 다시 한번 크게 분출한 양상이다. 물론 주체를 형성하는 대열과 분출하는 요구는 더욱 확대되었다. 비장함보다는 발랄함이 넘치는 축제로서의 성격 또한 확연히 다른 풍경이다. 일상이 무너지는 공포에 휩싸였던 이들이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대열에 동참하면서 다시 만난 세계에서 맛보는 자기 초월의 경험이다. 그것은 민중이 고정된 실체로 머물지 않고 역사적 국면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는 역동적 주체로 드러나는 양상이다.
세계적으로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자 시도한 친위쿠데타의 성공률은 무려 98%에 이른다고 한다. 거의 실패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2024년에서 2025년으로 이어지는 겨울 한국 민중은 그 친위쿠데타를 막아냈다. 이로써 삶이 더 나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진실은 삶이 더 나아지는 세계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삶이 더 나아지는 세계, 다시 만난 세계는 지금 연대의 대열에 함께 하고 있는 이들 가운데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 삶을 스스로 구현하는 이들이 명실상부하게 정치적 주권자로서 몫을 다하게 될 때 새로운 사회의 모습은 공적인 형태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것은 1987년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어야 할 뿐 아니라 2016~2017년 촛불항쟁 이후 퇴행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대안이어야 할 것이다. 공적인 것이 현저하게 소멸하고 더불어 권위주의와 극우의 혐오 정치가 만연한 세계 현실 가운데서 지금 한국 민중이 결정지을 미래는 중대한 시금석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