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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식] 은전 한 닢의 비밀- 예수의 비유(1)

역사적 예수(20)

▲박태식 박사
누가 15,8-9: 또 어떤 여자에게 은전 열 닢이 있었는데 그 중 한 닢을 잃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 여자는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온통 쓸며 그 돈을 찾기까지 샅샅이 다 뒤져 볼 것이다. 그러다가 돈을 찾게 되면 자기 친구들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자, 같이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할 것이다.

공군에 근무하는 기상전문가 반기성 대령은 “예수께서는 배에 올라 호수에 자리 잡게 되었고, 군중은 모두 호숫가 뭍에 그대로 있었다.”는 마르 4,1의 보도를 알기 쉽게 풀이해 주었다. “소리는 밀도가 다른 매질을 통과할 때 밀도가 낮은 쪽에서 높은 쪽으로 굴절되며 진행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예수가 배 위에서 설교했던 그 날은 기상학적으로 볼 때 아주 날씨가 맑은 날 오후였을 것이다. 기온 상승으로 인해 소리가 높은 쪽으로 전달이 더 잘될 뿐만 아니라 호수에서 산 쪽으로 부는 바람으로 인해 소리가 넓은 지역으로 전달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몇 달 전 신문에서 읽은 글이다. 예수님이 호수에 배에 띄운 상태에서 설교한 까닭을 내내 궁금해 했던 필자에게 한줄기 시원한 바람 같은 해설이었다.     
 
삼 년의 공생활 동안 예수님의 인기는 최고였다. 물론 예수님의 탁월한 하느님 나라 해석과 그분의 인격에 감동을 받아 한 가지 말씀이라도 귀담아 들으려고 나온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그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딘가 몸이 불편해서 온 이들이었다. 예수님은 그들의 병을 다 고쳐주었다. 그랬더니 이제는 배가 고프다며 밥을 내 놓으라고 한다. 그 소원도 예수님은 다 들어주었다. 4천명이 모였든, 5천명이 모였던 그들 모두를 배불리 먹이고 남은 음식을 추려보니 7광주리와 12광주리가 되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그 날 예수님이 한 턱 단단히 쓴 셈이다. 그러면 다음 차례는 무엇일까?
 
아픈 몸이 편해지고 배까지 부르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즐거움을 원하기 마련이다.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당시에 무엇을 가지고 그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었을까? 요즘처럼 TV가 있어 강호동의 쓸데없는 너스레를 들을 것인가, 운동경기 생중계를 볼 것인가, 아니면 예루살렘까지 가서 전차 경기를 즐길 것인가? 사람들의 졸음이 쏙 달아나게 할 방법은 재미있는 이야기 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느 여인이 은전 한 닢을 잃어 버렸다. 그래서 온 집안을 발칵 뒤져서 겨우 은전을 찾아냈다. 기쁨에 겨운 여인은 마을 사람들을 다 불러 모아 잔치를 열었다.
 
그 여인이 과연 정상인가? 그깟 은전 한 닢 찾았다고 동네잔치를 열 게 무어란 말인가? 잔치 비용이 은전 한 닢을 족히 뛰어넘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이치에도 닿지 않는 엉뚱한 말씀을 했을 리 만무이고....... 이제 이야기 속에 있는 의미장치와 재미장치를 찾아보자.
 
이스라엘의 풍습에 따르면 딸이 결혼 할 때 부모는 지참금을 딸려 보낸다. 그러나 그런 공식적인 돈이 아니라 딸에게 아무도 몰래 슬며시 쥐어주는 돈도 있었는데, 급한 일이 생길 경우를 대비한 돈이다. 보통 은전 열 닢 정도를 주었는데, 우리 식으로 보면 ‘급전’으로 돌려쓸 수 있는 패물인 셈이다. 그런데 말이 ‘급전’이지 시집간 딸에게 은전 열 닢은 부모님의 존재를 암시해주는 돈이었다. 딸은 그 돈을 보면서 언제나 생각했을 것이다. ‘어머니의 관절염은 차도가 있는지, 환절기면 더해지는 아버님의 천식은 좀 어떤지...’ 그렇게 귀중한 돈이기에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머리를 땋을 때 항상 그 속에 같이 묶어 보관해 두었다. 그런데 머리를 감다가 그만 그중 한 닢을 잃어버렸다. 여인은 마치 실성한 듯 그 은전을 찾았을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이들 중에 그 여인이 바로 하느님을 암시한다는 사실을 짐작 못할 사람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하느님은 죄인 한사람을 그렇게 열심히 찾는 분이고 만일 그를 찾으면 기쁨에 넘쳐 잔치를 베푸실 것이다. 돌아가신 줄 알았던 부모님을 다시 만났을 때 딸이 느끼는 기쁨으로, 하느님은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섬세한 사랑을 알려주기에 더 없이 좋은 비유이다.
 
이 비유에서 보다 특이한 점은 예수님이 이야기 중에 하느님을 여성에 비긴 것이다. 하느님을 그릴 때 우리는 보통 남성적인 이미지를 떠올린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나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 등장하는 하느님이 그렇다. 그런데 비유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을 다정다감한 여성으로 그려내고 있다. 천편일률적으로 남성중심 사회였던 당시의 정서로 볼 때 이만저만 영혼의 자유를 누리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예수님 덕분에 지긋지긋했던 고통과 굶주림이 사라졌다. 이제 갈릴리 호숫가에 편히 앉아 시원한 바람에 실려 오는 예수님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하느님의 사랑은 얼마나 심오하고, 예수님이 전해주는 영혼의 자유는 얼마나 놀라운가!
 
오늘따라 그 사람들이 몹시도 부러워진다.
 

박태식 박사(서강대, 가톨릭대, 성공회대 신학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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