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원교회 김성 목사 |
거제도의 작은 교회에서 처음 담임목회를 할 때의 일입니다. 교인이라고 해봐야 서른 명 남짓 되는 아주 작은 교회였습니다. 교회 형편이 어렵다보니 모든 것이 열악했습니다. 교회와 사택은 오래되고 낡아서 여러모로 불편했습니다. 특히 사택은 단칸방에 부엌 하나 달랑 달려있었는데 그나마 일어나 손을 위로 뻗으면 천장에 손이 닿을 정도로 천장이 낮았습니다. 때문에 여름엔 덥고 겨울엔 무척 추웠습니다. 하루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뉴스를 보려고 TV를 켰는데 모 건설회사의 아파트광고가 나왔습니다. 제 뇌리에는 그 광고를 처음 보았을 때의 충격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습니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성을 배경으로 이런 광고카피가 흘러 나왔습니다. “당신이 살고 있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줍니다” 그 광고를 처음 보는 순간 제 마음은 마치 전기에 감전된 듯 한순간에 얼어붙었습니다. 그리고 곁에 있던 다섯 살 난 제 딸아이의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이 아이는 지금 저 광고를 보며 이런 집에 살고 있는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할까? 비가 오면 빗물이 벽을 타고 내려와 벽지는 뜨고 장판아래는 흥건히 물이 고이는 집, 바람 불면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들썩거리는 슬레이트 지붕, 그 아래 손바닥만 한 좁은 단칸방, 그 안에 구질구질한 살림살이를 죄다 쑤셔 박아 놓아 방인지 창고인지 도무지 구분이 안가는 방, 그 속에서 인형놀이 할 자기만의 공간을 찾기 위해 신발장 앞에 인형을 모조리 끌어다 놓고 그곳을 자기와 인형의 집이라며 웃으며 노는 다섯 살 난 이 아이에게 이 집은 대체 어떤 집일까? 저 광고를 보며 이런 집에 살고 있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할까?
저는 그 때 우리사회가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폭력적인 사회인지를 뼛속 깊이 느꼈습니다. 고급 아파트를 지어서 파는 건설회사는 그들이 지은 아파트를 구입하는 고객들에게 당신은 남들보다 좋은 집에 사는 우월한 사람이라는 우월감과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해 그 광고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광고에 나온 그 고급 아파트에 살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집이 없어 전세나 월세방을 전전하는 사람들, 단칸방에 몇 식구가 비벼대며 사는 사람들, 지친 몸 하나 간신히 누울 수 있는 쪽방촌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 광고를 보며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 “당신이 살고 있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줍니다” 이 말은 번듯한 집의 주인이 되어 사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남들보다 좋은 집에 산다는 자부심과 우월감을 안겨 줄지는 몰라도 그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심한 모멸감과 박탈감, 그리고 깊은 자괴감을 안겨준 매우 폭력적인 말입니다. 단지 번듯한 집에 살지 못한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많은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모욕하는 매우 오만하고 모욕적인 말입니다. 한 사람의 삶의 가치와 의미가 그가 주거하는 집의 규모와 값에 따라 결정된다는 이 광고만큼 물신숭배에 절은 천박한 말이 어디에 또 있을까요? 붓다는 호화로운 왕궁의 생활을 버리고 떠나와 나무 한 그루 아래 앉아 도를 깨달았고 예수는 인자는 머리 둘 곳조차 없다고 말했습니다. 당신이 살고 있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면 붓다와 예수, 과연 그들은 누구일까요?
세상엔 성공하는 사람보다 실패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아니, 한 개인의 삶을 놓고 보아도 살아가면서 성공할 때보다 실패할 때가 더 많습니다. 때문에 패자에게 가혹하고 폭력적인 사회는 결코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없습니다. 사회구성원 대다수가 성공보다는 실패를, 승리보다는 패배를 더 많이 경험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승자의 쾌감, 여유, 자부심은 언제나 소수의 몫이고 나머지는 패배감과 자기모멸감을 안고 살아야 하는 사회는 이미 병든 사회입니다. ‘나가수’는 우리사회가 얼마나 패자에게 잔혹한 사회인가를 보여주는 슬픈 자화상입니다. 내로라하는 가수들조차 한 순간의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수치심을 맛보며 무대에서 내몰림 당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수재들이 입학한다는 카이스트의 학생들도 학업경쟁의 압박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강요된 죽음입니다. 이제는 게임의 규칙을 바꾸어야 합니다. 무한경쟁, 승자독식, 패자쪽박, 살아남으려면 승리하라, 억울하면 출세해라, 모두가 당연히 여겨온 이 게임의 법칙을 바꾸어야 합니다. 승자보다 패자가 더 많은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면 패자에게 수치와 모욕, 자괴감을 안기는 대신 패자에게 기회를 주고 격려하며, 패자로부터 자존감을 빼앗지 않는 따뜻한 사회가 될 때 진정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