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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 칼럼] 배려, 참종교인을 구분하는 시금석

▲예수원교회 김성 목사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라는 책의 저자인 오츠 슈이치의 새 책 <1000가지 죽음이 가르쳐준 행복한 인생의 세 가지 조건>이 최근에 출간되었습니다. 오츠 슈이치는 말기암환자들을 돌보는 호스피스 전문의입니다. 그동안 천 명이 넘는 암환자들의 죽음을 지켜보아 온 그는 행복한 삶과 존엄한 죽음의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끔 하는 강연과 저술활동을 해왔습니다. 그의 새 책 <행복한 인생의 세 가지 조건>속엔 흥미 있는 실험이 하나 소개되어 있습니다. 한 연구자가 사람사이의 유대관계가 사람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실험해 보았습니다. 실험의 내용은 이랬습니다. 먼저 서로 모르는 사람들을 엘리베이터에 만원이 될 때까지 타게 한 다음 다시 내리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엘리베이터 안이 만원이 되어 꼼짝할 수 없을 때까지 엘리베이터에 탔다가 내렸습니다. 그 다음 이 사람들에게 일정한 기간을 주어 서로 사귀도록 했습니다. 서로 도무지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얼마간의 기간이 지나자 서로 아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 실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에게 다시 똑같은 엘리베이터를 만원이 될 때까지 탔다가 내리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두 번째 실험에서는 참가자 중 일부가 엘리베이터에 타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첫 번째 실험에서는 엘리베이터를 꽉 채우며 탔던 똑같은 사람들이 두 번째 실험에서는 그들 중에 엘리베이터에 타지 못한 사람이 나온 것입니다. 이유가 뭘까요? 연구자는 그 이유를 사람사이의 유대관계가 낳은 배려의 힘 때문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였을 때는 밀고 부딪쳐가면서까지 엘리베이터에 타려고 애를 썼던 사람들이, 서로를 알고 친한 사이가 되고나자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 때문에 밀고 부딪쳐가면서까지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기를 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츠 슈이치는 위의 실험을 예로 들면서 사람사이의 유대관계가 희박하면 할수록 서로 규칙을 지키고 서로를 존중하려는 생각이 희박해진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오츠 슈이치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하면서 그런 자신의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사실조차 외면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적지 않다. 공공장소에서 지켜야 할 예절이 무너진 지는 이미 오래며, 인터넷상에서의 욕설과 비방 등은 모두 자신의 욕구와 방종만을 우선시한 결과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대감이 희박해지면 이런 부정적인 변화는 멈추지 않고 커져간다> 오츠 슈이치는 자신의 책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에서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살았을 뿐 남에게 도무지 선행이나 친절을 베풀지 못하고 살아 온 것을 뼈아프게 후회하는 한 환자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병원의 의료진에게 누구보다도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고 병원에서 일하는 직원이나 만나는 환자의 이름을 모조리 기억하면서 그들 모두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그 환자는 죽음을 코앞에 둔 말기암환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던 사람입니다. 오직 자기만 알고 자기만 위해서 살았던 지극히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자신의 욕구불만을 해소하기 위해서타인을 무시고 비난을 일삼았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죽음 앞에서 뼈아프게 후회한 것은 “남을 배려하고 친절을 베풀며 살았더라면…”하는 후회였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맞기 전 그에게 남은 마지막 짧은 시간동안,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예의를 갖추고 작은 배려와 친절을 아끼지 않는 삶을 살려고 애를 썼습니다. 오츠 슈이치는 그 환자를 통해서 남을 배려하거나 친절을 베풀지 않고 산 인생은 반드시 죽음 앞에서 후회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인생에서 백전백승을 거두며 살았어도 죽음 앞에서는 무릎을 꿇어야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오츠 슈이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얄팍한 처세가 아니라 타인에게 진심으로 너그러웠던 사람은 삶을 마무리하는 순간, 자기 자신에게도 한없이 너그러울 수 있다. 삶에서 진정 베풂을 실천한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신학생시절, 내로라하는 어느 대형교회의 수요예배를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뜨거운 기도와 열광적인 찬양으로 예배시간 내내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찬양하고 통성으로 부르짖어 기도하는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성령 충만해 보였습니다. 예배가 끝나갈 즈음 광고가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기도원에서 특별성회를 열고 있는 중이니 기도원에 갈 교인들은 예배 후에 교회 앞에서 기도원행 교회버스를 타라는 광고였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교회를 나서는데 교회 앞 대로변에 기도원행 교회버스가 보였습니다. 교회현관을 나서기가 무섭게 몇 사람이 버스를 향해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곧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함께 버스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버스를 타려고 한꺼번에 몰려든 사람들이 서로 먼저 버스를 타려고 달려드는 통에 버스 출입문 앞은 마치 출근시간 북새통을 이룬 만원버스 정류장의 모습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조금 전까지 기도원에 따라가서 특별성회에 참석하고 싶었던 마음이 싹 가시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머리가 혼란스러웠습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뭐하는 사람들인가? 이들이 방금 전까지 예배당 안에서 손발을 구르며 찬양하고 울고 불며 회개하고 기도하던 사람들이 맞는가? 기도원 가는 버스에 자리 하나 먼저 차지하겠다고 예배당 나서자마자 냅다 뛰기 바쁘고 먼저 버스에 타겠다고 서로 밀치고 당기는 이들이 입에 달고 사는 성령 충만의 정체는 대체 무어란 말인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 나보다 타인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 하나를 갖지 못한다면 대체 누가 그 마음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저는 그 때 ‘개꼬리 삼년 묻어도 황모(黃毛) 안 된다’는 옛 속담이 생각나 마음이 씁쓸했습니다. 그렇게 오래도록 교회를 다니고 그렇게 교회천장이 떠나가도록 찬양하고 그렇게 눈물콧물 흘리며 울부짖어 기도해도 버스 한 자리 남보다 먼저 차지하려드는 욕심 하나를 내려놓지 못하는 걸 보면서 개꼬리를 삼년 땅에 묻어둔다고 해서 값비싼 족제비꼬리(黃毛)가 되는 게 아니라는 옛 사람들의 말이 하나도 틀림이 없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더구나 목회자가 되기 위해 목회수업을 받던 신학생이었기에 그 씁쓸함은 더했습니다. 그 날, 저는 그들과 함께 그들의 기도원에 가는 걸 포기하고 학교 기숙사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목사로 살아오면서 이십년 전 그 날의 씁쓸하고 착잡한 기분을 맛볼 때가 많습니다. 명색이 교인이라는 사람들이 체면불구하고 제 잇속과 욕심부터 채우려드는 모습을 볼 때, 제 욕구불만을 해소하느라 아무렇지도 않게 남을 비방하고 헐뜯기 바쁜 모습을 볼 때, 제 감정 하나를 추스르지 못하고 홧김이라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막말을 지껄이고 무례하고 몰상식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볼 때, 그저 교회 오랫동안 들락거렸다고 교회 주인행세, 훈장 노릇하는 꼴을 볼 때, 타인을 배려하는 대신 누구든 제 발 아래 두려고 건방떠는 교만한 모습을 볼 때, 과연 이 사람들은 누구인가? 삼년이 아니라 삼십년, 사십년을 교회에 묻어두었어도 황모가 되지 않은 이들은 대체 누구인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그리고 목회자로서 목회에 대한 깊은 회의와 착잡한 자괴감이 듭니다.

어느 기자가 달라이 라마에게 물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는 무엇입니까?” 그러자 달라이 라마가 주저 없이 대답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는 친절한 마음입니다” 세상의 어떤 종교이든 타인에 대해 정중히 예의를 갖출 줄 모르고 타인을 배려하는 친절한 마음을 가지지 못한 종교는 사실상 종교가 아닙니다.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지 못한 종교인도 사실은 종교인이 아닙니다. 배려하는 마음, 그것은 진정한 종교인인지 아닌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시금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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