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명동 3구역의 ‘혁명을 기도하는 사람들’

성공회 대학생들, 3구역 대책위 카페 ‘마리’에서 매일 기도

▲ 명동 3구역 상가대책위원회 회원들이 농성 중인 카페 '마리' 앞에서는 매일 저녁 '성무일과' 기도가 봉헌된다. 로만칼라를 한 이는 성공회 부제다.(사진/고동주 기자)

서울 중구 명동 3구역 상가대책위의 세입자들과 함께 매일 '혁명'을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혁명기도원’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는 청년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지난 6월 19일 재개발 시행사 측 용역직원이 세입자들이 농성 중인 카페를 침탈했던 날로부터 매일 세입자들과 함께 ‘성무일과’(상자기사 참조)를 바쳐왔다.

‘마리’에서 성무일과를 바치는 이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인 트위터를 통해서 ‘혁명기도원’이란 모임을 만들고 민중신학 세미나를 진행해왔다. 세미나를 하면서 거리에서 ‘성무일과’를 바치자는 제안이 나왔고, 장애인차별철폐의날 집회, 반값등록금 집회 등에서 기도를 해왔다.

원래 ‘혁명기도원’은 명동성당 입구 들머리에서 피켓을 들고 명동성당 일대 재개발에 대한 명동성당의 입장을 묻는 시위를 벌이고자 했다. 그런데 시위를 벌이고자 한 6월 19일 용역이 ‘마리’를 침탈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마리’로 모였고, 밤을 꼬박 새우며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날부터 한 달이 넘도록 이들의 저녁기도는 매일 계속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모임 이름에 왜 ‘혁명’을 집어넣었을까? 구성원 중 한 명인 여정훈 씨(28세)는 “성서 자체가 가난한 사람과 억눌린 사람들의 탄원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한다. 기도할 때마다 일부러 성경 본문을 뽑지 않고 전례력에 맞춰서 보는데, 현장의 상황과 기막히게 일치한다는 것이다. 그는 성모의 노래인 ‘마니피캇’을 부를 때도 ‘혁명’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여정훈 씨는 “성무일과를 하면서 읽었던 내용 중에 스테파노가 순교하면서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예수님을 봤다는 대목이 기억이 남는다”며 “지금 우리가 처한 민중의 삶이 바로 그 하느님 오른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는 지금 여기가 하느님이 계신 곳이고 그곳에서 기도를 통해 혁명을 계속 일으키겠다고 덧붙인다.

▲김영숙 씨는 "젊은 동지들이 옆에서 잠도 못 자고 우리를 지켜주는데, 빨리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드린다.(사진/고동주 기자)

22년 동안 명동 명물거리(먹자골목) 입구에서 ‘오징어식품’이라는 이름의 잡화점을 운영해온 김영숙(62) 씨는 ‘혁명기도원’의 성무일과가 많은 위로를 준다고 고마워했다. 이들의 기도로 불안함이 가시고 마음이 차분해진다는 것이다.

김영숙 씨는 “명동성당을 오가는 신자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으면서 명동성당에서 세례도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레지오 활동과 봉헌 시간 때 ‘헌금 봉사’도 하면서 본당생활을 열심히 했으나 최근에는 삶이 고단해지면서 쉬게 됐다고 말한다. “성탄 고해성사 때 가고 싶어도 줄이 너무 길어서 가게를 오래 비울 수 없기 때문에 고해성사도 빼먹게 된다”고 아쉬워한다.

김 씨는 아들이 두 명 있는데, 아들들도 삶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손을 벌리기는 싫다며 강제철거 문제가 하루빨리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밝혔다. 이어 “제가 천주교 신자니까 이곳에서 미사도 드린다면 정말 큰 위로가 될 것 같다”면서도 “학생들과 성무일과를 통해 기도하는 것도 많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성무일과를 바치는 학생들은 ‘마리’에 있으면서도 다른 투쟁의 현장을 잊지 않고 기도드렸다. 한진, 유성, 재능, 강정, 포이동 등을 이야기하며 이들은 “철야기도를 해도 이 모든 현장을 위한 기도를 올리지는 못할 것”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2011년 7월 13일자 고동주 기자 godongsori@catholicnews.co.kr 

(기사제휴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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