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성 칼럼] 당신이 보지 못한 고릴라가 있다

강동교회 김성 목사

▲예수원교회 김성 목사.
1999년 하버드대 심리학과 대학원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6명의 학생이 두 팀으로 나뉘어 한 팀은 흰색 상의를 입고, 다른 한 팀은 검정색 상의를 입은 채 각기 같은 팀에게 공을 패스하는 게임이었습니다. 양 팀의 학생들이 서로 자기편끼리 부지런히 공을 주고받는 사이, 고릴라의상을 입은 학생 한 명이 그들 사이를 유유히 걸어서 지나갑니다. 고릴라는 도중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정면을 바라보며 두 손으로 가슴을 두드리고 포효하는 흉내를 내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조용히 한쪽으로 사라집니다.

이 게임하는 장면을 영상에 담았습니다. 채 1분도 되지 않는 짧은 영상입니다. 그리고 이 영상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며 영상 속에서 흰옷을 입은 팀이 주고받은 패스의 횟수를 세어보라고 했습니다. 편집되지 않은 본영상의 경우, 패스횟수는 34회였습니다. 그러나 패스횟수를 맞추느냐 아니냐는 여기서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실험의 진짜 관심은 다른 데 있기 때문입니다. 실험팀은 영상을 본 학생들에게 패스를 주고받는 학생들 사이로 고릴라가 지나간 것을 보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영상을 본 학생의 절반이 화면 속에서 고릴라를 전혀 보지 못했다고 답한 것입니다. 영상에서 고릴라는 9초에 걸쳐 화면 중앙으로 걸어 나와 정면의 카메라를 향해 가슴을 친 후 걸어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영상을 본 학생들의 절반이 고릴라를 전혀 보지 못한 것입니다.

대체 이들이 고릴라를 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명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연구를 같이 한 크리스토퍼 차브리스와 대니얼 사이먼스에 의하면 실험참가자중 절반의 사람들이 고릴라를 보지 못한 이유는 기대하지 못한 사물에 대한 ‘주의력 부족’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를 심리학에선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라고 부릅니다. 이들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의 눈은 어떤 특정 사물이나 움직임에 주의를 집중하고 있을 경우 그곳에 전혀 예상치 못한 사물이나 움직임이 나타나면 그것이 아무리 두드러지고 중요하더라도 전혀 이를 알아채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고릴라를 보지 못한 사람들은 패스 횟수를 세느라 패스하는 모습만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그들 옆을 버젓이 지나가는 고릴라를 보지 못하고 만 것입니다. 시선은 두었지만 보지는 못한 셈입니다.

이 실험결과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진실 하나를 알려줍니다. 누구나 자기가 본 것에 대해선 ‘보았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자기가 관심을 두고 주의 깊게 보는 것 말고는 눈뜨고 보아도 보지 못하는 것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실상은 눈 뜬 장님으로 못 본 것이 있음에도 자기는 다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주의력 착각’이라고 합니다. 바로 이 착각 때문에 우리는 너무나 경솔하게 판단하고 때론 ‘내가 다 봐서 안다’는 잘못된 과신에 빠지기도 합니다.

요한복음 9장엔 예수가 한 맹인의 눈을 뜨게 해 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맹인은 눈을 뜬 다음 뜻밖의 시비에 휘말렸습니다. 유대인과 바리새인들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해준 예수의 정체를 놓고 맹인과 언쟁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네 눈을 뜨게 해준 사람이 누구냐’고 다그치자 맹인은 그 분은 ‘선지자’라고 답합니다. 그리고 창세 이후로 누가 맹인의 눈을 뜨게 해주었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으니 이런 일을 행한 분은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온 분’임에 틀림없다고 말합니다.(요9:32~33) 그런데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이들은 예수가 결코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일 수 없다고 단정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그러자 또 다른 사람이 거들었습니다.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그러자 곁에 있던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이들은 예수가 결코 하나님으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고, 그는 죄인일 뿐이라고  확신에 가득차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나면서부터 맹인이었던 자가 도대체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는지 거듭해서 맹인과 그 부모에게 캐묻고 있습니다. 그들은 눈앞에 벌어진 현실을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들의 거듭된 추궁에 맹인이 얼마나 답답했는지 나중엔 이렇게 탄식합니다.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맹인은 단번에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분이라는 걸 알아보았는데 왜 유대인과 바리새인들은 맹인의 거듭된 설명에도 예수를 하나님으로부터 온 분으로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그 이유를 바로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이 답해줍니다. 유대인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볼 때마다 딱 한 가지를 주의 깊게 바라보았습니다. 이들은 예수가 유대교의 율법을 준수하느냐 아니냐 그 여부를 주목했습니다. 특별히 그들이 문제 삼은 것은 안식일법의 위반 여부였습니다. ‘어디 안식일법을 지키나 안 지키나 보자.’ 마치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 영상을 본 학생들이 오로지 공을 패스한 횟수를 헤아리는 데 모든 주의를 집중하고 바라본 것처럼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안식일법을 지키는지 어기는지 그것만 주목해 본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안식일법을 위반하는 횟수를 헤아리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은 예수가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한 번은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쳐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이번엔 안식일에 보란 듯이 맹인도 고쳤습니다. 안식일에 제자들과 밀밭을 지나가며 아랑곳하지 않고 밀이삭을 훑어먹는 것도 목격했습니다. 이들의 눈에 예수는 안식일에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서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들에게 예수는 유대교 율법을 위반하는 명백한 죄인으로 틀림없어 보였습니다. 예수가 아무리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가르쳐도 이들의 귀에는 그 말씀이 더 이상 진리의 말씀으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눈앞에서 예수를 통해 병자가 낫고, 맹인이 눈을 떠도 그 모든 것이 예수를 통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사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유대인과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는 <보이지 않는 고릴라>였습니다. 자기들 눈앞에서 뻔히 능력을 행하며 지나가는데도 눈을 뜨고도 예수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분이라는 걸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확신을 가지고 주장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잘 안다’ ‘그의 행위를 다 보아서 알고 있다’ ‘예수는 율법을 파괴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자다’ ‘유대교의 율법에 따라 예수는 죽여야 마땅한 자다’.

이 모두가 과연 남의 이야기일까요? 우리도 고릴라를 보지 못하지는 않았습니까? 우리 또한 어떤 일에 대해서나 혹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 ‘내가 다 안다.’ ‘겪어봐서 잘 안다’고 자신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판단하고 확신하고 거침없이 행동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과 성서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과연 다 보았을까?’ ‘나는 과연 다 알고 있을까?’ ‘내가 아는 것이 진실의 전부일까?’ ‘나는 내가 보고자 하는 것만 본 것은 아닐까?’ 만약 내가 본 것이 전부가 아니라면, 내가 눈을 뜨고도 못 본 진실이 있다면, 내 판단과 확신은 과연 옳을까요? 나는 나의 ‘착각’을 ‘진실’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예수를 죽인 유대인과 바리새인들의 판단과 확신은 과연 옳은 것이었을까요? 그들의 잘못된 판단과 확신이 오늘도 우리 가운데서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지는 않을까요?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당신의 확신을 조심하라!’ ‘나는 보았다고? 아니! 바라보긴 했지만 못 보았을 수도 있다’ ‘당신 눈앞엔 당신이 보지 못한 채 걸어가고 있는 고릴라가 있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를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의 진실에, 영원한 진리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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