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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식] 열 처녀의 비유

역사적 예수(22)

▲박태식 박사.
마태 25,11-13: 나중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는 ‘주님, 주님, 우리에게 열어 주십시오.’ 하고 청했다. 그러나 그는 대답하여 ‘진실히 너희에게 이르거니와, 나는 그대들을 모른다.’ 했다. 그러니 여러분은 깨어 있으시오. 그 날과 그 시간은 모르기 때문이다.
 
‘열 처녀의 비유’(마태 25,1-13)는 결혼잔치 때 벌어진 일을 소재로 삼고 있다. 이는 복음서작가 마태오가 따로 수집한 자료로 이른바 마태오의 특수 자료(SM)이다. 마르코복음과 루가복음에 나와 있지 않은, 마태오만의 고유한 자료라는 뜻이다. 비유에 똑바로 접근하기 위해서 먼저 당시의 결혼 풍습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이쯤에서 독자 여러분은 성서를 열고 비유 전체를 천천히 한번 읽어보시기 바란다.
 
이스라엘에서는 결혼을 다른 어떤 인간사보다 중요한 것으로 여겼다. 결혼의 전체 과정이 이루어지는 데만도 일년씩이나 걸렸으니 능히 그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요즘과는 달리 과거에는 어느 나라에서건 결혼이란 대체로 당사자가 아니라 부모의 문제였다. 고대 이스라엘도 예외는 아니어서, 간혹 돈으로 신부를 사거나 성관계를 빌미로 여자를 얻는 경우가 있기는 했으나(『미슈나』, 나쉼, 7) 일반적인 관행은 신부의 아버지와 신랑 될 사람의 결혼 계약에 의존했다. 신랑이 결혼기탁금을 내고 아버지로부터 딸의 지배권을 넘겨받는 형식이다. 여성의 지배권 이전이라는 관행은 요즘 여성의 시각에서는 매우 당혹스런 느낌을 줄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여성은 보통 12-13세에, 남성은 20세쯤에 결혼을 했다. 여성은 12세까지는 소녀, 12세에서 6개월 동안은 처녀, 그 이후로는 성인으로 취급받았다. 그러니까 처녀 기간인 6개월 동안 우선 정혼을 하고, 그 후로 일년이 지난 후에 비로소 정식 결혼이 이루어졌다. 정혼과 정식 결혼 사이의 일년 동안 정혼한 처녀는 조신하게 집안일을 익혔다.
 
정혼 후 일년이 지나 때가 되면 드디어 신랑 될 사람이 신부 집으로 찾아오고 신부의 친구들이 신랑을 마중 나간다. 보통의 경우 신랑은 낮에 신부 집을 찾는데 이 비유에서는 예외적으로 밤에 찾아오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처녀들이 기름을 준비해야 할 필요성에 맞추어 예외적인 경우를 상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어두운 밤인 까닭에 신랑 될 사람이 혹여 신부 집으로 오는 길을 잃을까봐 열 처녀가 출동한 것으로 볼 이유는 없다. 그보다는 신랑에 대한 예의를 표시하는 의례적인 마중으로 간주하는 게 좋을 듯싶다.
 
신랑이 도착하면 신부 집에서는 그날을 위해 오래 동안 준비해 두었던 결혼 잔치를 연다. 잔치는 보통 1주일 정도 지속되는데 그 때문에 신부 집안 재산이 상당히 축났다고 한다. 여섯 독이나 담아 두었던 술이 다 떨어져 낭패를 볼 뻔했던 가나의 혼인잔치(요한 2,1-12)를 떠올리면 쉽게 상상이 가는 일이다. 또한 딸 셋이면 기둥뿌리가 뽑힌다는 한국 사람들의 너스레를 연상시키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처럼 결혼잔치가 성대하게 벌어졌던 까닭에 예로부터 이스라엘에서는 ‘메시아 잔치’를 흔히 결혼잔치에 비교하곤 했다. 성서에도 그런 흔적이 남아있는데 구체적으로 마태 22,1이 있다.
 
이제 열 처녀의 비유가 갖는 뜻을 살펴보자. 신랑이 장차 오실 메시아라는 점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메시아가 오시면 성대한 잔치가 열릴 텐데 미리 준비를 안 해 두면 큰 낭패를 겪게 될 것이다. 같은 내용을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재림 예수가 와서 치르게 될 종말심판에 대한 예시로 볼 수 있다.
 
흔히 예수가 선포한 하느님의 나라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고 한다. 하느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시작되었지만 그 궁극적인 완성은 종말의 날에 가서나 이루어지리라는 것이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하느님 나라를 지금 여기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당위성과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종말에 거는 희망이라 하겠다. 이를 두고 ‘이미, 그러나 아직’(already, not yet) 이라는 부사형태의 신학적인 용어로 개념화시키는데, 비유의 시점은 후자의 ‘아직’에 해당한다. 이렇게 보나 저렇게 보나 아무튼 하느님의 나라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개념이다.

  비유에서 가장 절묘한 부분은 신랑의 올 시간, 즉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고 한 데 있다. 열 처녀 중의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했고 다른 다섯은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다. 다섯 처녀는 지금 준비하지 못한 기름 덕분에 잔치 집에 들어가지 못할 운명에 놓이게 된다. 말하자면 ‘아직’이라는 차원도 실은 현재 안에 포함된다는 뜻인데, 그런 사고에 따라 지금 깨어 있는 자만이 장차 열릴 메시아 잔치에 참석할 수 있다.
 
오늘이 내일을 결정한다. 그리스도인에게 내일은 없는 것이다.         
 
 

글/박태식 박사(서강대, 가톨릭대, 성공회대 신학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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