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만우 송창근 목사의 일대기를 연재합니다>

본지는 이번 11일부터 매주 토요일 <만우 송창근 바로보기>라는 제목의 송창근 목사의 일대기를 연재합니다. 이를 통해 그 동안 한국교회에서 과소평가 받아야 했던 송창근 목사의 신앙과 삶을 재조명하고자 합니다. 그는 한국기독교장로회를 창립한 장공 김재준 목사를 전도한 인물이자 신앙적 스승이었습니다. 또 당시 기라성 같은 목사들만 부임한다던 평양 산정현교회를 맡아 시무할 정도의 역량을 갖춘 목회자였습니다. 하지만 1950년 한국전쟁 때 공산당에 의해 납북되어 52세의 이른 나이에 순교를 당하고, 그가 가르쳤던 제자들이 얼마 남지 않아 송 목사의 업적이 제대로 연구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1월 말 송창근 평전 ‘벽도 밀면 문이 된다’(송우혜 저·생각나눔)가 출간됐습니다. 이 책은 그 동안 그늘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한 송 목사의 존경 받을 만한 신앙과 삶, 업적들을 구체적인 자료들을 통해 집대성했습니다. 송창근 목사를 연구한 경건과신학연구소(소장 주재용 교수)와 저자 송우혜 집사로부터 저작권 사용 허락을 받고 이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글을 연재합니다. 그에 앞서 송창근 목사가 누구인지 궁금해하실 독자들을 위해 고 강원용 목사의 회고록 <역사의 언덕에서>에 나오는 송 목사에 대한 이야기를 맛보기로 소개해 올립니다.


송창근은 누구인가 · 고 강원용 목사

지금도 나는 송창근 목사를 생각하면 몽양 여운형이 함께 떠오른다. 해방 이후 기독교계와 정치계 그리고 우리 현대사에 위대하다는 인물들을 거의 다 만나봤지만, 정치계에서는 여운형, 교계에서는 송창근 목사만큼 나를 아쉽게 만드는 인물이 없다. 한창 일하실 나이에 잡혀가고 암살당한 두 분의 삶이 내게는 너무나 아쉽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기막힐 정도의 미남자라는 것도 있지만 두 사람 다 휴머니스트라는 점이다. 그들은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진 인도주의자였다. 또 자유분방한 사람이라는 점도 공통점으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어떤 틀 속에 매여 살 수 없는 사람이 송창근 목사이고 여운형이었다.

송창근 목사는 강의하러 들어와서도 신학 얘기보다는 그저 사는 이야기를 구수하게 들려주었다. 강의가 끝나갈 무렵, 학생들이 선생님의 신학은 무슨 신학이냐고 물으면 흑판에 커다랗게 ‘잡종신학’ 이렇게 네 글자를 적어놓고 나갔다. 조직신학이니 무슨 신학이니 하는 어떤 틀 안에 갇히는 것을 거부했다.

송창근 목사와 여운형은 이 외에도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해방 이후 60여 년이 지나는 오늘까지 우리 역사에서 정말 큰 별과 같이 나타난 두 분이지만 오늘 이 역사 속에서는 거의 잊혀져가고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 1997년 7월 19일은 여운형 선생이 떠난 지 50년째 되는 해였다. 그때 기념사업회의 위원장을 내가 맡아 선생의 산소 앞에서 50주기 추도식을 거행했는데, 그날 그 무덤가에는 노인들만 한 쉰 명 나와 있었다.

1999년 10월 5일에는 송창근 목사 탄신 백주년을 맞아 만우 신학 기념 강연회가 있었다. 나는 그곳에 나가 강연을 했는데, 그 자리에도 많은 사람은 나와 있지 않았다.

송창근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송창근 목사의 연보를 보면 2년 동안 ‘수양동지회’ 사건으로 감옥에 갔다 온 것이 기록되어 있는데, 사실 그는 안도산의 직계로 신간회 등 여러 사건으로 감옥에 갔다 온 전력이 있다. 언젠가 한 번은 나더러 이런 애기를 한 적도 있다.

“야, 너 큰소리 치고 다니는 것은 좋은데, 절대로 감옥엔 붙잡혀 가지 말아라.”

송창근 목사가 감옥에 가서 고생하던 얘기 중에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이, 앞에서도 말한 남산 사건이다. 밤에 남산에 끌려가 온몸을 발가 벗긴 채 큰 소나무에 꽁꽁 묶여 아침까지 모기들에게 뜯긴 것이, 육체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참 고통스러웠다는 얘기였다.

그가 농담 삼아 하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세상엔 무서운 사람이 셋이 있어. 밖에서는 형사, 교회에서는 장로, 집에서는 며느리야.”

어쨌거나 나는 그의 고문 얘기를 듣고 일은 열심히 하되 어떻게든 감옥에 가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우리 교계에는 세 부류의 지도자가 있었다. 하나는 주기철 목사처럼 감옥에서 저항하다가 순교를 당한 사람이다. 그 다음은 진짜 친일을 하는 목사다. 그런 목사들은 신사참배를 하러 떠나면서 “우리 눈에 보이는 천황께 충성 못하는 사람들이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께 어떻게 충성하겠느냐”고 말한 작자들이다.

송창근 목사는 이런 두 유형에 속하지 않고 부득이하게 일제의 테두리 속에서 목숨은 이어가면서도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기 위해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낸 인물이다. 그런데 그가 해방 이후 친일을 했다는 말이 여기저기 번져 있어 그는 신경과민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그가 했다고 하는 친일 내용을 자세히 알아보면 그것은 친일이라고 얘기할 수도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일제의 강요로 이곳 저곳에서 강연을 하도록 강요 받았는데, 송 목사는 정치 이야기는 일부러 안하고 신불출 저리 가라고 할 정도로 사람들이 배꼽 잡고 웃을 수 있는 이야기들만 했다. 일본에 협력하는 일을 그런 식으로 교묘하게 피해간 것이다.

그런데 그게 나중에 친일 의혹을 사게 되어 처단할 사람의 명단에 올랐을 때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다른 사람 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텐데 송창근 목사에게는 가슴에 못을 박는 아픔이 된 듯하다. 곁에서 보고 있는 내가 답답해서 “뭐, 그런 걸 가지고 그렇게 마음 상해 하십니까’라고 말하면 그는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도 계속 속상해했다. 일말이라도 거리끼는 일을 견뎌내지 못하는 분이었다.

일제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친일이나 항일을 너무나 쉽게 생각한다. 거물들이야 창씨개명을 거부할 수 있었겠지만 민초들이 무슨 수로 그런 것을 거부할 수 있었겠는가. 저항시인 윤동주가 창씨개명을 했다고 하면 요즘 사람들은 놀라겠지만, 그 시대는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완전히 세상을 등지고 깊이 숨어 살지 않는 바에야 주민등록증 갱신하듯 선택의 여지가 없는 문제였다. 아니 그보다 더했다. 전쟁 중 식량 배급도 받을 수 없었고, 심지어 기차표도 살 수 없었다.

자신의 안일을 위해 일제에 자진하여 협력한 사람과 생존을 위해 마지못해 침묵으로 암흑을 견뎌낸 사람이 똑같이 친일 인사로 올라서는 안 될 일이다. 더구나 친일 경력을 감쪽같이 덮어두고 잘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말이다.

현재 우리 민족의 가장 큰 과제는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기도하는 것이다. 송 목사는 말끝마다 “많은 날을 같은 조선놈끼리 북놈 남놈 붙어서 싸우니 무슨 짓이냐”고 호통을 쳐댔다. 그런 그이기에 함경도와 가장 사이가 좋지 않은 평안도에 가서 목회를 했고, 평안도에서 또 부산으로 내려온 것이다. 이런 지방 사역을 통해 지방색을 초월하고자 한 사람이 송창근 목사였다. 남이면 어떻고 북이면 어떤가 모두 조선사람인데, 하는 송창근 목사의 이 생각은 오늘날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가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21세기의 한국 교회가 지난 역사에서 뚜렷이 부각시켜야 할 인물이 있다면 바로 송창근 목사라고 나는 말하겠다.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정태기 영성치유집단이 가진 독특한 구조와 치유 의미 밝혀

정태기 영성치유집단을 중심으로 집단리더가 구조화된 집단상담 프로그램에서 무엇을 경험하는지를 통해 영성치유집단이 가진 독특한 구조와 치유의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김학철 교수, "기독교 신앙인들이 진화론 부정하는 이유는..."

연새대 김학철 교수(신학과)가 상당수 기독교 신앙인들이 진화론을 부정하고 소위 '창조과학'을 따르는 이유로 "(진화론이)자기 신앙의 이념 혹은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아우구스티누스 사상의 모호성을 극복하는 원효의 체상용의 삼위일체론

아우구스티누스 사상과 원효의 체상용의 불교철학 사상을 비교 연구한 글이 발표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손호현 교수(연세대 신과대학)는 얼마 전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개인 구원만 지나치게 강조해 창조 신앙 무력화돼"

창조 신앙을 고백하는 한국교회가 개인 구원만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신앙이 사사화 되면서 연대 책임을 물어오는 기후 위기라는 시대적 현실 앞에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마가복음 묵상(2): 기독교를 능력 종교로 만들려는 번영복음

"기독교는 도덕 종교, 윤리 종교도 아니지만 능력 종교도 아님을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자의 실존적 현실이 때때로 젖과 꿀이 흐르는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특별기고] 니체의 시각에서 본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

""무신론자", "반기독자"(Antichrist)로 알려진 니체는 "유대인 문제"에 관해 놀라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소개함으로써 "유대인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영적인? 무종교인들의 증가는 기성 종교에 또 다른 도전"

최근에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무종교인의 성격을 규명하는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정재영 박사(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종교와 사회」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신의 섭리 숨어있는 『반지의 제왕』, 현대의 종교적 현실과 닮아"

『반지의 제왕』의 작가 톨킨의 섭리와 『반지의 제왕』을 연구한 논문이 발표돼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숭실대 권연경 교수(성서학)는 「신학과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논문소개] 탈존적 주체, 유목적 주체, 포스트휴먼 주체

이관표 박사의 논문 "미래 시대 새로운 주체 이해의 모색"은 세 명의 현대 및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의 주체 이해를 소개한다. 마르틴 하이데거, 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