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이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종교평화 실현을 위한 불교인 선언> 초안을 발표했다. 선언은 그동안 불교계가 이웃 종교에 대해 비관용적이었다는 반성과 함께, 앞으로 종교다양성을 존중하겠다는 다짐을 담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본부 화쟁위원회가 <종교평화 실현을 위한 불교인 선언> 초안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23일 인사동 템플스테이기념관에서 열었다. ⓒ대한불교조계종 |
선언문은 “불교인들이 이웃종교를 진정으로 이웃으로 생각하는 데 충분하지 못하고, 이웃종교를 질시하거나 경쟁상대로 여긴 적은 없었는지 반성한다”고 밝혔다.
또 불교가 종교평화를 이야기하는 사상적 바탕에 대해 “부처님의 연기적 세계관과 화엄의 인다라망은 차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조화롭게 공존할 것인가에 대한 불교적 해답”이라며, “나와 상대가 다른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의 ‘인연 차이’일 뿐이다. 바로 이러한 세계관이 불교가 이웃종교와 맺고자 하는 관계의 바탕”이라고 설명했다.
선언문은 종교평화를 위한 불교인들의 입장 및 실천사항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먼저 이들은 “이웃종교에도 진리가 있음을 인정한다”며 열린 진리관을 가질 것을 불교인들에게 당부했다. 이들은 “진리는 특정 종교의 전유물이 아니며, 종교의 다름이란 진리를 표현하는 언어와 문법의 다름일 따름”이라고 말했다.
또 종교다양성을 존중할 것을 권고하며 “이웃종교와 우리는 진리를 향한 동반적 관계”라고 밝혔다.
기독교의 ‘전도’에 해당하는 ‘전법’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이들은 전법이 “다른 사람의 종교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이뤄져야 하고, 자신의 종교를 선전하기 위해 타종교를 비방하는 방법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공적영역에서의 종교활동에 대해서 역시 “자신의 믿음을 전하기 위해 공적 지위를 사용해서는 안 되고, 공적 장소를 신앙 전파의 무대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23일 기자회견에서 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본부 화쟁위원회 위원장 도법 스님은 이번 선언문 작성 배경에 대해 “민족의 종교라 할 만큼 긴 역사를 갖고 있는 불교가 국민이 안락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제 역할을 해왔다면 오늘 굳이 종교평화선언을 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며 “안타깝게도 제 역할을 충실히 하지 못해 종교 때문에 국민이 근심하게 됐고, 이래서는 안 되지 않겠느냐는 성찰과 반성에서 이번 선언을 마련하게 됐다”고 밝혔다.
초안 작업에는 명법 스님,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 성태용 건국대 철학과 교수, 박경준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등이 참여했으며, 화쟁위원회는 종단 안팎의 의견을 수렴해 오는 10월 최종안을 발표, 영문으로도 제작해 세계종교학회 등에서 발표할 방침이다.
조계종 본부가 앞장서서 발표한 이번 선언문은, 향후 타 종교에 대한 조계종의 입장이나 처신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선언에 따른 앞으로의 행보가 더 큰 과젯거리다. 조계종이 앞장서고 있는 불교단체 '헌법파괴·종교편향 종식 범불교대책위원회'는 지난 2009년에 펴낸 책자 <종교차별 바로 알기>에서 종교차별의 예시 대부분을 개신교의 경우로 들며, 종교평화를 해치는 주범으로 개신교를 지목한 바 있다. 책자는 종교차별에 대해 "종교적인 이유로 다른 종교인이나 무종교인에게 불쾌감을 주거나, 유무형의 불이익을 주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이번 종교평화선언이 조계종의 안팎의 입장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