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왜 한글 사도신경에만 "음부에 내리시사"가 빠졌나?

최주훈 목사,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밝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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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유튜브 영상화면 갈무리)
▲중앙루터교회 최주훈 목사

중앙루터교회 최주훈 목사가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한국교회 사도신경에서 편집되어 삭제된 "음부에 내리시사"가 갖는 신학적 함의에 대해 소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현재 한국 찬송가 앞 표지에 실린 한글 사도신경에는 "장사된 지 사흘 만에"라는 구절만 있지만 한글 사도신경 옆에 인쇄된 영문 사도신경(The Apostles' Creed)에는 한글에 없는 "He descended into hell"이 적혀있다.

이에 최 목사는 "우선 가장 큰 오해부터 풀어보자. 여기서 말하는 '음부'(라틴어 inferos, 그리스어 hades)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유황불 타오르는 지옥(Gehenna)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라며 "게헨나가 최후의 심판 후 악인이 가는 영원한 형벌의 장소라면, 음부는 죽은 자들이 머무는 곳, 죽음 그 자체의 상태, 하나님과 단절된 죽음의 영역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음부에 내리시사"는 예수님이 지옥불에 떨어져 고통받으셨다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님이 죽음을 완전히 경험하셨고, 죽음의 세력이 지배하는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가셨다는 엄숙한 선언이자 고백"이라며 "이는 그리스도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곳은 없으며, 심지어 죽음의 세계조차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강력한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인간이 볼 수도 없고, 경험하거나 상상할 수 없는 곳, 이성이 도달할 수 없는 모든 영역까지 하나님의 통치가 미친다는 것-이것이 이 한 문장에 담긴 교회의 신앙고백이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이러한 신학적 함의를 지닌 "음부에 내리시사"는 왜 한글 사도신경에서는 삭제된 것일까? 최 목사는 감리교와 장로교 간 교파 연합과 일치 운동에서의 실용주의 입장이 초래한 결과였다고 소개했다.

그는 "결정적 순간은 1908년에 찾아왔다. 장로교와 감리교가 교파 연합을 위해 최초의 통합 찬송가 『찬숑가』를 만들 때였다"며 "서로 다른 사도신경 문구를 통일해야 했고, "분쟁의 소지가 있는 문구는 뺀다"는 원칙이 적용되었다. 감리교가 반대하고 장로교 내에서도 의견이 갈렸던 이 구절은 그렇게 최종 삭제되었다. 아쉽게도 교파 간 화합이라는 실용주의가 신학적 풍성함을 희생시킨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고 전했다.

이 같은 결과는 치열한 신학적 논쟁이 아닌 현실적 타협이었다는 점도 재차 강조했다. 최 목사는 "한국 최초의 장로교 찬송가인 언더우드의 『찬양가』(1894)를 펼쳐보면, 사도신경에 "지옥에 나려가셨더니"라는 구절이 분명히 나온다. 당시 장로교 선교사들은 본국 교회의 전통을 충실히 따랐고, 이 구절을 번역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하지만 불과 3년 후인 1897년, 감리교 선교사들이 펴낸 『찬미가』에는 이 구절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여기에는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데, 웨슬리는 미국 감리교인들을 위한 '25개 신앙조항'를 제정하면서, 성공회가 사용하고 있던 신앙의 39개 조항 중 제3조 '그리스도의 지옥 강하' 부분을 성경적 해석이 모호하다는 이유로 과감하게 생략했던 바가 있다"며 "18세기 웨슬리의 이 판단이, 19세기 말 미국 감리교 선교사들(아펜젤러 등)을 통해, 20세기 초 한국 땅에 그대로 이식된 것"이라고 전했다. 

이후 사도신경 재번역을 논의하며 해당 구절의 복원을 진지하게 논의하던 시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최 목사에 따르면 지난 2002년, 한국 교계에서도 사도신경 재번역을 논의했다. 실제로 예장 통합 제87회 총회에서 재번역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신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기도 했다.

최 목사는 "그러나 결론은 유감스럽게도 "성도들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로 복원 포기였다. 다른 교단들은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최 목사는 끝으로 "우리는 언제까지 '혼란'을 핑계로 풍성한 신앙의 유산을 덮어두어야 할 것인가? 120년 전 선교 초기 상황에서 내려진 타협의 결정을, 21세기에도 계속 따라야 하는가?"라고 반문한 뒤 ""음부에 내리시사"는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아니라, 가장 낮은 곳까지 임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절정의 문장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교회는 함께 고백한다. "음부에 내리시사(죽음의 세계로 내려가사)" 한국 교회만 침묵한다. 이제 그 침묵을 깨야 할 때가 아닌가"라며 글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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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한 편집인 jhkim@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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