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6일. 평소 존경하는 은사 혜암 이장식 박사님의 출판 축연 감사예배가 있었다. 필자가 20대 후반인 1963년 봄에 한국신학대학 수유리 캠퍼스에서 이장식 목사님을 처음 만난 이후 지금까지 48여년의 긴 세월 지나는 동안 결혼 주례를 포함하여 많은 가르침과 지도 편달을 받았으니 사제지간의 정의(情誼)는 깊고 두텁다. 목사님은 유명하신 학자이나 필자는 아직도 무명의 학도에 불과하다. 필자가 목사님을 대면할때마다 웬지 베드로 사도님 생각이 떠오르곤 했다. 목사님의 성품은 돈후하시고 경건하시다. 호가 혜암 곧 ‘은혜의 바위’이시니 베드로 사도님과 통하는 호인것 같다. 그러니 목사님을 대할 때 베드로 사도님의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 우연한 연상만은 아닌 것 같다.
예수님은 친히 사람을 찾으시고 부르시고 제자를 삼으셨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우연한 기연으로 또 제자될 사람이 스승으로 모실 사람을 대개는 찾아가서 사제지간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소크라테스를 찾아간 플라톤, 플라톤을 만나러 간 아리스토텔레스, 공자를 찾아간 수많은 제자들, 퇴계와 율곡의 문하생들, 폰라드를 찾아간 한국의 김정준, 김철현 두 목사님.
요즘은 학교에 입학하면 자연스럽게 제자가 된다. 어떤 분이 말하기를 선생은 많으나 은사는 드물고, 학생은 많으나 제자는 귀하다 했던가? 이 목사님과 필자는 자타가 사제지간으로 알고 있는 터이다. 참으로 주님께 감사드릴 뿐이다.
이제 칼바르트 박사님(Karl Barth, 1886년생)과 이장식 박사님의 학문과 삶을 아주 간략하게 비교 하면서 축하의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비교한다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고 힘든 일이다. 바르트 박사님은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목회자로 교의학 교수(바젤대학)로서 그 수 많은 역저와 명성으로 20세기 최고의 신학자였으며, 이장식 박사님도 목사와 교회사학자로서 또 수 많은 저술과 선교 활동으로 국내 최고의 원로 신학자임을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바르트 박사님께서는 1886년생이시고, 이장식 박사님은 1921년 생이시니, 바르트 박사님이 35년 앞선다. 바르트 박사님의 첫 출판물은 33살때 쓴 그 유명한 『로마서 소강해』(1919)이고, 마지막 책은 82살 때의 『화해의 교리』(1968)이다. 이장식 박사님의 첫 간행물은 『기독교 사상 1권』(1963)이며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책은 금번 탄신 90회 기념 출판 『세계 교회사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바르트 박사님은 전문적인 성주 주석가는 아니지만 교의학자로서 성서학자였다. 그의 신학은 흔히 '말씀의 신학' '계시의 신학' '변증법적 신학' '신정통주의 신학' 등으로 불리운다. 또 당시 신학적 입장에 있어서 자유(Liberalism) 곧 진보라는 진영과 보수(Fundmentalism) 진영간의 극단적 대립속에서 변증법적 화해를 도모 할 수 있었던 열린 복음주의(Liberal evangelicalism)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이장식 박사님도 열린 기장(한국기독교장로회)의 생리적 자유 사고로 신학하면서도 또 경건한 복음주의적 신앙의 학자로 평가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르트 박사님이 예언자적 기질 속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신학하고, 항상 영원한 현재에 살았다면 이장식 박사님은 교회사학자의 눈으로 헤겔의 추사고처럼 현실을 뒤따라 해석하고 기술하면서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끊임없이 투시하는 삶이었기에 현재의 인간적 문제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지평의 문제에 관심하며 눈길을 떼지 않았다. 이 점이 바르트 박사님과 조금 다른 차원의 문제라 사료된다.
논어 옹야편에 지자요수(智者樂水), 인자낙산(仁者樂山), 지자동(知者動), 인자정(仁者靜), 지자낙(知者樂), 인자수(仁者壽)-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나니, 지혜로운 사람은 활동적이고 어진 사람은 고요히 지낸다. 지혜로운 사람은 즐겁게 살고 어진 사람은 오래산다- 라는 말이 있다. 또 구약 시편 43편 12절에는 "생명을 사모하고 연수를 사랑하며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거짓말에서 금할지어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 지어다." 사람이 혀와 입을 악과 거짓에서 멀리하면 화평을 찾아 따르게 되는 것이니 이런 사람을 의인이라 인자라 부르는 것이 동서고금의 이치가 매 한가지다.
그런데 두분은 항상 활동적인 삶을 살으셨다. 논어의 지자(知者)처럼 바르트 박사님은 나치에 항거하였으며 고백교회를 중심으로 바젤에 망명하기까지는 위난의 삶이었고, 이장식 박사님도 교회를 지나서 아프리카 케냐로 가서 10여년 간 살인적 더위 속에서 선교활동을 투신하셨다. 그러고 보면 지자(知者)로도 인자(仁者)로도 살으신 셈이다. 바르트 박사님은 너그럽고 늘 웃는 모습, 인자 바로 그것이었다. 이장식 박사님도 표정과 언어가 항상 유순하고 너그러우시다.
끝으로 이 책 『세계 교회사 이야기』의 특색은 첫째, 그 방대한 동서를 아우르는 교회 역사를 이야기 식으로 쓰셨다는 점이다. 둘째는 서론이 ‘예수 그리스도의 때’라는 제목으로 시작된다는 점이다. 박사님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고 행동할 적기였다"고 서술한다. 이 ‘때’라는 단어는 매우 의미 심장한 말이다. 이 때를 희랍어로 카이로스(Kairos)라 하는데 이 박사님은 ‘적기’라 하였다. ‘적기’라 함은 여인의 해산으로 그 예를 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여인이 해산할 날이 가까워지면, 양수가 터지고 아이는 해산한다. 이른 때에 양수가 터지면 조산하여 아이가 물러서 약체로 자란다. 좀 늦게 양수가 터져도 출산이 어려우면 난산이 되어 아이와 산모의 생명이 위태롭다. 조산도 난산도 아닌 그 ‘적기’를 바울 사도님은 갈라디아서 4장 4절에 "때가 차매 하나님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라고 했고, 또 사도 마가는 1장 15절에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라 하고 있다.
폴 틸리히는 그의 책 『기독교 사상사』에서 이 때(Kairos)르 설명하기를 "the right time get the coming of the Christ"라 쓰고 있다. "때가 찬 때. 적기. 바로 그 때". 『세계 교회사 이야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때’라는 제목으로 서막을 열고 있음은 아무나 쓸 수 있는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제목 하나만 봐도 이 책의 내용과 용어의 퇴고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셋째 감신대 총장 김홍기 박사의 서평에는 "이슬람과 기독교의 관계가 상세히 서술된 점이 문화선교적 안목이 넓고 깊다. 열린 사고로 신학적인 문제를 취급하면서도 복음주의적 입장을 갖고 있다. 열린 복음주의적 사관을 갖고 이 책을 서술한 점이 아주 돋보인다. 흔히 교회사는 서양 중심으로 지금까지 서술되어 왔는데 서양과 동양을 아우르는 사관을 가지고 교회사를 서술한 것이 큰 교회사적 공헌이라고 볼 수 있다. 2천년 교회사 속에서 동양의 위치가 많이 고양되고 있다."고 했다.
금후 한국교계가 2013년 제10차 WCC 부산총회를 앞두고 보수와 진보, 소교단과 대교단의 대표들간의 이견과 불협화음을 아름다운 화음으로 승화시키는데 있어서 이념적으로 심정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본서 8장 에큐메니칼 운동평(P.541-549)은 많은 교시가 될 것으로 믿는다. 본서가 한국의 평신도와 신학도 목회자의 필독의 필휴서가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영어로 번역이 되어 WCC에 참석하는 세계교회 대표들에 기증할 수 있는 일도 성취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
글/백종철 목사(기장 대구노회 원로 목사, 계명문화대학 명예교수(Ph.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