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식 한신대 명예교수 ⓒ베리타스 DB |
아무튼 기독교가 정당을 만들어 정치세력(political force)을 형성하여 교회를 대변하겠다는 것은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다. 지금 한국의 기독교는 그 교세가 작은 것이 아니어서 일종의 사회적 세력(social force)을 형성하고 있고, 그 힘을 정부 등 어떤 세력도 부인하거나 탄압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예루살렘의 초대교회가 신속하게 커간 교세로써 박해에 대항할 만큼 된 것은 그 교회의 정치세력 때문이 아니고 그 교세가 만든 사회적 세력 때문이었다. 유대교의 권력자들이 세례 요한의 하늘나라 운동을 저지하기 위하여 그를 섣불리 해칠 수 없었던 까닭은 그를 따른 무리들이 무서워서였다. 또 산헤드린의 유대인 최고권력자가 베드로와 요한을 해치지 못하고 타일러서 내보낸 것도 그들을 따르는 무리들이 예루살렘에서 이미 수천수만으로 일종의 부정할 수 없는 사회적 세력을 형성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AD 313년 선교의 자유를 획득했을 때까지 교회는 어떤 종류의 정치세력도 만든 일이 없었으나 기독교인들이 로마제국 안 각계각층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을 로마정권이 부인할 수 없게 되었었다.
기독교의 정교관계는 교회와 국가의 본질론과 관계된다. 사도 바울의 육(혈육)과 영의 본질 이론은 교회와 국가의 본질의 대비론으로 볼 수 있다. 또 문자와 영의 구별 이론은 문자가 의미하는 국가의 법률과 영이 대변하는 하나님나라의 새 언약의 대비 이론이 된다(고린도후서 3:6, 고린도전서 15:30).
바울의 혈육과 영, 그리고 율법과 언약의 대비 이론은 국가와 교회의 엄격분리 또는 완전독립을 의미하는 듯하나, 그는 로마국가의 통치권과 법률은 기독교인들이 존중하고 복종하라고 가르친다(로마서 13장). 이것은 그가 당시의 국가권력의 신적 기원을 말하는 신수권을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민권정치 국가에서는 권력의 기원과 권위의 소재가 국민에게로 이전되어 있다.
4세기의 성 어거스틴은 교회가 자유를 누리고 있던 시대에 그의 명저 『하나님의 도성』에서 국가와 교회를 대비시켜서 말하기를, 전자는 땅 위의 나라이고 후자는 천상의 나라이며, 전자는 혈육을 좇아 살고 후자는 영을 좇아 살며, 전자는 가인의 후손이고 후자는 아벨의 후손이라고 하였다. 또 전자는 이기적이나 후자는 사랑과 공생이고, 전자는 반신적이나 후자는 정신적이고, 전자는 그 자체 정의가 없어서 후자의 정의에 의존하여야만 존립할 수 있다고 하였다.
12세기의 교황 이노센트 3세는 천체의 해와 달을 비교하면서 달은 그 자체 빛이 없고 해의 빛을 빌려서 빛을 낸다고 말하고, 해를 교회에 달을 국가에 비하였다. 또 14세기의 교황 보니페이스 8세는 예수님이 칼 두 자루를 허용하셨는데 그 두 자루가 모두 베드로의 칼집에 들어있으니 국가의 정치권력과 교회의 교황의 권세가 다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청에 속한다고 주장하여, 두 교황이 모두 교권우위론을 내세운 바가 되었다.
바울과 어거스틴이 다 같이 교회와 국가의 본질적 차이를 말하였으나 교회 또는 기독교인이 국가권력에 복종하고 협력할 것을 시인하였다. 16세기의 종교개혁자 루터는 이 두 사람의 신학사상을 체 받고 하나님이 국가와 교회라는 두 팔을 가지고 세상을 다스린다고 말하면서도 그 두 팔, 또는 왕국의 주권자들의 권위와 권세는 각각 별도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므로 양자가 동등하며 어느 한 권위가 다른 권위의 지배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정교의 분리론을 가지고 중세교회의 신정(神政)체제를 붕괴시키게 한 것이었다.
스위스의 존 칼빈은 세계 통치의 절대주권자는 하나님이신데 국가와 교회를 그의 두 시녀로 삼아서 세상을 통치하신다고 말함으로써 국가와 교회가 두 가지 다른 성격의 시녀(정부)와 같은 것으로 말한다(『기독교강요』 서론). 동시에 그는 국가가 권력을 남용하여 폭군화되면 교회는 국가에 저항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또 국가 정권이 교회 일에 개입할 수 없는 것을 특히 강조하면서 정치권력과 협력하였다.
16, 17세기에는 서양 대부분의 나라에서 루터교나 개혁파 교회가 각국 국가교회 제도를 갖게 되었는데 이것은 당시의 각국 정권들이 가톨릭 아니면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어느 편이든 간에 정권과 교회가 유착 또는 합일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정치적 및 종교적 내셔널리즘 국가를 형성하였던 것이다.
루터의 정교분리원칙이 국가정권을 교회로부터 독립시킨 것이 되어서 현대 서양의 국가들이 극도로 세속화되고 교회와 완전 분리되었다는 비평을 받고 있는데, 그것을 독일 나치정권 아래서 박해받던 신학자 본 훼퍼는 말하기를, 세속국가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의 만남이 없어도 자기들의 봉사사업을 수행할 수 있다고 하였다(『Ethics』, p. 295).
신대륙 미국의 유럽국가들 이민 초기에는 유럽모국의 정교일체적인 국교제도를 이식시켜서 주마다 식민과 선교를 진행시켰었는데, 미합중국이 형성되면서 만들어진 헌법의 종교조항을 1790년대에 수정하면서 정부는 종교에 대한 어떤 법도 만들 수 없다고 못 박고(국교제도의 입법을 금한 것), 정부는 종교의 집회나 언론이나 출판 등등의 자유를 저지하지 말 것이며(정교분리), 교회가 어떤 불만을 제기하기 위하여 정부에 진정할 권리(교회의 정치 참여와 협력)를 인정하게 하였다.
미국의 교회들은 미국의 정교분리 원칙 때문에 과거와 같은 교회의 특권이나 자유의 축소 또는 제한으로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의 교회들은 미국에서 국가가 교회로부터 아주 독립되거나 완전 분리된 것이 아니어서 기독교 정당이 없어도 협력과 합의의 길이 언제나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본 훼퍼의 말은 미국이나 유럽의 비공산주의 국가들에서는 이해가 되는 말일 것이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기독교 정당을 만들어 기독교를 정치적 세력의 하나로 만들 필요는 없어 보인다. 한국의 기독교세는 상당히 강력한 사회적 세력을 형성하고 있고, NCCK를 비롯한 기독교의 각종 NGO 단체들과 시민운동 단체들이 있어서 필요할 때마다 정치적 및 사회적 발언을 힘있게 하고 있다.
목사가 개인적으로 국회의원이 될 수는 있지만 목사들과 장로들이 기독교 이름을 달고 정당을 만들어 정치 속에 뛰어들면 기독교의 태양빛이 달에 가로막혀서 그 빛의 일부를 상실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평생 심혈을 기울여서 영적인 씨를 뿌린 목사들이 만년에 육의 열매를 거두려는 시도는 어리석기도 하다. 더 열심히 전도하고 설교해서 한국의 기독교의 사회적 세력을 더 키우는 것이 그들이 받은 본래의 신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