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경동]생명을 살라

박종화 목사 ㅣ 2009년 1월 4일

성경본문

열왕기하 23:1-3
왕이 사람을 보내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를 소집하였다. 왕이 주님의 성전에 올라갈 때에, 유다의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과 제사장들과 예언자들과, 어른으로부터 아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백성이 그와 함께 성전으로 올라갔다. 그 때에 왕은, 주님의 성전에서 발견된 언약책에 적힌 모든 말씀을, 크게 읽어서 사람들에게 들려 주도록 하였다. 왕은 기둥 곁에 서서, 주님을 따를 것과, 온 마음과 목숨을 다 바쳐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킬 것과, 이 책에 적힌 언약의 말씀을 지킬 것을 맹세하는 언약을, 주님 앞에서 세웠다. 온 백성도 그 언약에 동참하였다. 아멘.

야고보서 4:13-15
"오늘이나 내일 어느 도시에 가서, 일 년 동안 거기에서 지내며, 장사하여 돈을 벌겠다" 하는 사람들이여,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리는 안개에 지나지 않습니다. 도리어 여러분은 이렇게 말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 것이고, 또 이런 일이나 저런 일을 할 것이다." 아멘.

누가복음서 4:16-19
예수께서는, 자기가 자라나신 나사렛에 오셔서, 늘 하시던 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는 성경을 읽으려고 일어서서 예언자 이사야의 두루마리를 건네 받아서, 그것을 펴시어, 이런 말씀이 있는 데를 찾으셨다.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아멘.


설교문

찬양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오늘 찬양과 말씀을 통해서 영광 받으시고 우리한테 큰 기쁨 주실 것을 믿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사람들 앞에 등장하셨습니다. 아마 예수님으로서는 새해 첫 설교이셨을 겁니다. 설교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주님의 영이 나한테 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셨습니다. 저보고 이렇게 전하랍니다. 가난한 사람 복 받으세요. 갇힌 사람 풀어드리겠습니다. 눈 먼 사람 눈 뜨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소외당한 사람 위로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좌절과 절망에 빠진 사람들 내가 기쁨의 샘물로 인도하겠습니다. 주님의 영이 나한테 임해서 그렇게 말씀하라 하십니다. 누가복음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오늘 이 단 위에 서시면, 예수께서는 “주님의 영이 임하셨습니다. 여러분, 복을 받으세요. 무슨 복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의 원천은 생명의 복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 구세주, 그 분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복의 종합품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생명이니라.” 생명의 복을 금년 화두로 삼으십시다. 생명이 죽어가면 안 됩니다. 생명은 살아야 합니다. 생명은 움직여야 합니다. 생명이 꿈을 꾸고 생명이 역사를 이루지 않습니까? 생명을 살립시다. 생명을 삽시다", 이렇게 설교말씀을 시작하실 것입니다.

사실 누가복음 4:16-19절 이야기는 이사야서(61:1-2)의 말씀을 원용해서 예수께서 하신 첫 번째 설교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준다. 가난하다고 죽을 수 없다. 먹을 것 줄테니 살아라. 눈 멀었다고 죽을 수 없다. 볼 눈을 주겠다. 아프다고 죽지 마라. 건강을 주겠다. 절망스럽다고 죽지 마라. 내가 희망을 주마. 모든 사람이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생일 잘 지키시지요? 생일에 왜 축제 벌이십니까? 태어났다고요? 아니죠. 나는 살아왔다, 살아 있다, 또 살 것이다. 그걸 확인하지요. 그래서 생일을 지키시죠. 생일이란 살아있는 날에 관한 감사와 축제입니다. 주일은 `하나님이 사셨다`, `그리스도와 사셨다`. 그래서 그 분을 모시고 모이는 날이 주일입니다. 주일은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칼렌더 속의 날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표현하여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 새로 산 날 영원히 산 날, 그 날을 주셔서 저희들이 예배하러 와서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듣습니다.

혹시 여러분들, 먼저 가신 분들의 기일을 잘 지키시지요? 기일을 왜 지키십니까? 하나님이 불러 가셨다고요? 슬프다고요? 그냥 사람이 죽었다고요? 인간의 도리라고요? 그래서 기일 지키십니까? 추모일로 지키십니까? 그것은 인지상사로 그럴 수 있습니다. 물론 슬프지요. 오늘 말씀이 뭔줄 아십니까? 기일은 죽은 날이 아니고, 죽음을 이기고 산 날의 시작으로 기일을 지켜라, 그런 요구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만찬 예식을 거행합니다. 성만찬 때 고린도전서의 말씀을 봉독해서 여러분이 듣게 됩니다. “너희들이 떡을 먹고,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선포하라.” 죽음을 선포하라니요? 그러려고 떡 먹고 잔 마십니까? 예수님이 죽었다고 성만찬에 동참하십니까? 죽은 자의 날이 아니라 죽음 속에서 부활이라 이름하는 영원한 생명이 태어났습니다. 예수의 죽으심을 선포하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예수께서 우리 대신 죽었고 죄를 사해주셨고 그래서 감사하고 눈물이 나지요. 그런데 죄사함을 주신 예수께서는 죽은 것으로 끝이 아니라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니 감사의 떡과 잔을 먹고 마시랍니다. 그리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 생명을, 하늘이 준 생명을 먹고 마시랍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희들이 부활하신 주님의 몸과 피에 동참합니다. 주님의 기일은, 하나님의 영을 받아서 집행하는 성만찬으로 거행하는 주님의 기일은, 죽은 날이 아니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부활을 기뻐합니다. 여기에 동참하는 사람은 바로 주님과 함께 다시사는 부활의 희망을 먹고 마시는 날입니다. 그 희망을 오늘 맛보십시오.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주의 영이 임하셨습니다. 나보고 그렇게 생명의 메시지를 전하랍니다. 그 영은 언제 계셨습니까? 창조 때부터 계셨지요. 이스라엘의 모든 역사에도 계셨지요. 그 영은 앞으로도 계실 겁니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 계시죠. 저희들의 신앙고백입니다.

오늘 여호수아 말씀을 봤더니 예수께서 인용하신 ‘주님의 영이 임했습니다`라는 그 영이 요시야라 이름하는 옛날 옛적, 예수님 오시기 620여년 전에 계셨던 성왕 요시야라는 사람한테 주님의 영이 임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오늘 구약성경의 열왕기하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시야라는 임금을 통해서 주님의 영은 역사하셨는데, 요시야는 누구였습니까? 우리나라 역사에도 보면 위대한 성왕들이 많았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도 성왕들이 많았습니다. 예수 나시기 전 620년 전, 유대땅은 여전히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있었습니다. 북쪽을 이스라엘이라 이름했고, 남쪽을 유다라 이름했습니다. 요시야라는 왕은 훌륭한 왕 중에 한 분인데 그 분은 남쪽 유다땅의 왕이었습니다.

당시 요시야라는 사람이 집권하던 시절 이스라엘은 물론이고 남쪽 유다는 어떤 상황이었느냐 하면, 북쪽에는 `앗수리아`, 최남단에는 `이집트`. 동북쪽 동남쪽으로 `바빌론`, 그리고 `메데`라는 4대강국이 이스라엘과 유다를 둘러싸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고, 실제로 이스라엘과 유다는 이 네 나라에 순차적으로 점령됩니다. 앗수리아에 북왕국이 점령됐고, 바빌론에 남왕국도 점령되었지요. 그런데 점령되기 이전부터 양쪽 분단 왕국에는 4대 강국으로부터 문화, 종교, 역사 등등의 모든 문물이 들어와서 이스라엘과 남쪽 유대땅을 맘대로 휘젓고 다녔습니다.

그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뭐냐고 하니까 이집트에서 온 문명, 바빌론과 앗수리야에서 미리 들어온 문명, 이 문명들이 들어오더니 각 곳에 신전이 생겼습니다. 신전에 가면 신상이 있습니다. 신상이 있으면 예배를 드릴 겁니다. 예배를 주관하는 사람들을 제사장이라 이름합니다. 예배드리는 성소를 관리하는 사람을 장로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신전이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곳에 있었습니다. 이방 나라에 문물의 유입에 따라서 여러 곳에 신전이 생기고 신전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여러 신들이 존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시야가 왕이 되어 가지고 4대 강국으로부터 오는 위협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하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 백성들의 마음과 정신을 어떻게 통일할 수 있을까? 한 가지 방법 밖에 없었습니다. 백성의 혼을 하나로 합쳐야 한다는 결론이었죠.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야 한다, 마음의 가장 중심에는 여호와 하나님 밖에 안 계신다는 믿음을 중심으로 말입니다. . 곳곳을 둘러봤더니 각양각색의 신전이 있고, 사람들이 모여 숭배하는 소위 우상숭배가 횡횅했었습니다. 우상숭배 무리들이 너무나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요시야가 한 첫 번째 칙령입니다. “모든 신전을 없애라. 신전에 있는 우상을 파괴해라. 우상과 연결된 제사장, 장로, 그리고 그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모든 이익집단, 정파, 파벌, 사회 모든 조직체를 전부 해산시켜라"고 말입니다. 우상이 뭐냐하면요, 신전만이 우상이 아닙니다. 우상 중심으로 생활공동체가 형성됩니다. 조직이, 파벌이 형성되고 사회구조 전체가 각 우상별로 산지사방으로 나누어서 구성됩니다. 그런 사회는 통합이 아니라 갈등구조입니다. 이름하여 우상끼리의 싸움이고, 우상 신들의 전쟁이죠. 사실은 우상을 섬기는 게 아니라 우상을 거울 삼아 자기 기득권과 이윤을 취하는 겁니다. 모두 이 때문에 신과 신전을 중심으로 갈등이 생겼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라는 견딜 수 없습니다. 특별한 민족의 위기가 오면 더더욱 못 견딥니다.

요시야 왕의 다시 칙령입니다. 전국에 있는 장로와 제사장과 중심 신도들을 다 예루살렘의 여호아 하나님이 있는 성전에 모이게 하라. 전원 불러들였습니다. 불러들이고 수많은 제사장들이 목숨을 잃게 됐습니다. 우상을 섬기며 밥 먹고 사는 자들아, 이스라엘의 혼을 갉아먹는 자들아,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누구도 숭배의 대상이 될 수없다. 다시 원천으로 돌아가자고 했죠. 이 때 이후로 모든 신전이 파괴되었습니다. 각자 나뉘었던 이해 집단들이 전부 해산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 중심으로, 그 분이 하신 말씀의 책인 율법의 책, 언약의 책 중심으로 모든 나라 구성을 다 바꾸자"고 결의를 다졌죠.

교육만도 아니고 정치만도 아니고 종교만도 아니고 몽땅 개혁입니다. 그러면서 요시야 왕이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가자. 모든 개혁의 원천은 신명기 4:6-9절이니 그 곳으로 돌아가자. 여호와 하나님만이 우리 하나님, 그 분만 섬기기로 결단하자. 이 결단을 이마에도 바르고 말로도 하고 팔찌도 받고 어릴 때부터 유아기 때부터 어른까지 전부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기로 하자. 거기서 하나님 숭배로 바꾸자. 신전을 회복하자. 종교를 회복하자. 마음을 회복하자. 정신을 회복하자”고 선포했죠. 이것이 개혁의 초점입니다. 그것을 종교개혁이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몽땅 개혁입니다. 우상 숭배 척결이란 바로 그런 뜻입니다.

오늘 예수께서도 똑같은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가 숭배의 대상입니까? 권력이 숭배의 대상입니까? 복되게 살아가라는 수단입니까? 우리한테 주신 물질의 축복이 우리가 숭배해야 할 신입니까, 살아갈 도구입니까?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모든 축복이, 은총이 우리한테 숭배의 대상니까, 살아갈 생활 수단입니까? 오늘부터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우상들을 파기 하지 않으면 생명이 살지 못합니다. 우상이 죽을 때 우리의 생명도 함께 죽습니다. 세계 각 곳에서 전쟁의 소식이 있지요. 우상 때문입니다. 자기끼리만 우리끼리만 믿고 싶어하는 자기들 혼자의 집단 이기주의에 자신의 개인 이기주의가 증폭하면 우상이 되어서 우리끼리 속고 속이는속임수의 갈등이 시작됩니다.

요시야의 말대로 우상은 파괴합시다. 신은 섬김의 대상으러서의 신일뿐이지, 그 외의 모든 우상화된 것들은 생활에 필요한 도구일 뿐입니다. 가치 전도가 되어 있습니다. 이러면 안 됩니다. 우리 금년에 생명의 축복을 받읍시다. 우상을 파기합시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우상들이 있습니다. 그걸 치우고 하나님만 섬기기로 합시다. 그러면 그동안 우상처럼 섬겼던 "우상"은 삶의수단이지 섬김의 대상이 아닌 것을 깨닫게 될 겁니다.

요시야가 봤더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한 게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 숭배가 넘치더니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즐겨야 할 아름다운 축제가 없어졌습니다. 그 축제가 뭐냐 하니까 예컨데 유월절 축제입니다. 이집트에서 해방될 때 양의 피를 발랐지요. 바른 집은 이스라엘 집이니까 다 구원받았고 바르지 않은 이집트 백성들은 애들도 죽었고 피해를 많이 봤습니다. 그날은, 유월절 양의 피를 통해서 구원받은 날, 유월절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수난절과 같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해방의 날이고, 축복의 날이고, 구원의 날입니다. 모든 축제는, 그 자체가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 축제에 담긴 내용에 의미가 있습니다. 유월절은 하나님이 우리 백성을 도탄에서 구원해 주셨고, 백성 전체를 구원해 주셨죠. 그래서 유월절은 해방의 날이고 축복의 날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훌륭한 유월절 사건을 광야 생활에서는 철저히기억하고 지키다가, 여호수아를 통해서 가나안 땅에 입성하고 나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집도 잡았습니다. 자리도 잡았습니다. 평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유월절 축제가 사회에서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요시야 왕이 집권하던 이 시기까지도 700여년 동안 축제가 없었습니다. 축제 없는 신앙, 상상이 가시나요? 찬양이 없는 기도, 하늘을 향해서 이웃을 향해서 마음을 털어놓고 하늘을 향해서 외치고 노래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소위 하늘을 향한 섬김의 축제, 숭배의 축제, 예배의 축제 없이 인생은 메마릅니다.

요시야 때, 요시야 왕이 명령을 내립니다. "백성들아, 우상숭배를 거부하고 우상을 다 파기한 다음, 우리는 하나님이 주셨던 유월절 해방의 축제로 백성들아, 모이자". 성당, 신당, 신전을 유월절 축제의 장으로 바꿨습니다. 그 속에서 기쁨이 새어났습니다. 4대 강국의 압제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기뻤습니다. 뭉칠 수 있었습니다. 생명의 힘이 솟아났습니다. 그리고 요시야 왕 자신이 이 축제 주관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그러나 물론 백성들은 제대로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이 축제가 잠시 지속되다가 결국 이스라엘은 망하고 말았고, 지금도 이스라엘의 역사가들은 요시야 왕의 마음의 결단과 칙령에 나타난 하나님 신앙을 모든 백성이 지성과 진정으로 함께 나누었던들 이스라엘은 속국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기들의 역사적 분석입니다. 예수께서 그 후에 오셔서 요시야에게 임했던 주님의 영을 다시 회복하자고 말씀하십니다. 요시야 왕을 통해서 쓰셨던 생명의 영,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을 중심으로 뭉치면 우리는 새로운 신을, 바로 생명의 주이신 하나님을 주님으로 믿고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 분이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오늘 우리보고 이렇게 말씀하고 싶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만 섬기고, 그 외의 모든 것은 우상입니다. 우상은 섬기지 말고 갖고 노십시오. 수단이요, 방법입니다. 신은, 숭배의 대상은 한 사람뿐입니다". 이제 오늘 우리가 신앙의 입장에서 살기로 하고 금년 한해를 보내십시다. 누구를 믿고 보내실 겁니까?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만 믿고 보내십시다. 어떻게 그렇게 믿어야 됩니까? 왜 그렇습니까?

저는 우리 인간의 역사 속에 등장하는 모든 신화 이야기들 속에서 예수님이 자신의 말씀으로 전하는 신화적 표현이 유일한 특징있는 "신화"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신"의 이야기 중에서 인류를 위해서 타자를 위해서 스스로 죽음을 끌어 안고 죽었다는 신은 못 봤습니다. 신은 지배자고 위대해서 숭배자로 존경 받는 대상이긴 하지만, 신들 중에서 누가 가장 가난하고 눈 멀고, 포로로 잡히고 어두운 사람들을 위해서 대신 죽은 일이 있으며 대신 죽을 뿐만 아니라 죽은 자를 부활의 생명으로 인도하는 구원의 신이 어디 있습니까?

저는 왜 예수를 믿느냐고 하면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써 저 대신해서 죽었기 때문에 예수를 믿습니다. 저를 대신해서 죽음을 끌어안았기 때문에 고마워서 믿습니다. 대신 죽어줄 수 있는 사랑의 신, 그 신은 한 분밖에 없다고 제가 믿고 그 신을 제가 구세주로 믿습니다. 하지만. 대신 죽어준 것만 가지고 완벽한 숭배의 대상인 신은 아닙니다. 대신 죽어준 사람은 동시에 제 죽음을 죽음으로 끝나게 하지 않고, 죽음을 이기고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시면서 저를 생명의 나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대신 죽어줘서 고맙고 생명의 나라로 이끌어줘서 기쁨이 충만하고, 그래서 저는 예수를 구세주로 믿습니다.

이분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나를 믿으면 하나님을 믿고, 그 분의 백성인 서로서로를 섬기고 사랑하자. 그리고 함께 부활의 영광에 동참하자. 생명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 그 선물은 우상의 선물이 아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선물이다라고. 고통당하는 사람 계십니까? 대신 죽어주고 대신 고통을 짊어질 신이 있답니다. 그분의 이름은 하나님, 그 분의 아들은 예수, 그리고 그 분의 영이, 하나님의 영이, 예수의 영이 천지 창조 때부터 세상이 다 끝날 때까지 계시고, 또 지금도 그 영이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함께 죽어주마, 함께 아파해 주마. 그리고 아픔과 죽음을 누르고 이겨서 부활의 영원한 생명을 함께 주마. 이 길에 동참하자.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뜻을 우리가 성만찬 생명 축제에서 확인하려고 합니다. 금년 한해 생명을 삽시다. 생명을 누립시다. 생명에 감사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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