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마가복음 11:7-10
요한복음 11:47-53
설교문
세 사람이 서 있습니다.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가운데 사람을 향하여 “너는 왼편에 있다.” 하자, 왼쪽에 있는 사람은 가운데 사람에게 “아니야, 너는 오른편에 있어.”라 했습니다. 가운데 있는 사람은 “그래? 난 가운데 있어. 너희들이 오른편 왼편에 있어.”라 했습니다. 누구의 말이 옳습니까? 모두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말한 사람의 자리에서는 틀리지 않지만, 판단하는 자리를 바꾸면 틀린 것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평가를 할 때에는 조심해야 합니다. 먼저 평가하는 자리가 어떤 것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한 사건을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다는 눈으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보았습니다. 예수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십니다. 호위하는 사람은 갈릴리 출신 제자들입니다. 예루살렘 사람들 눈에 이들은 촌뜨기들입니다. 성경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겉옷을 벗어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호한 것 같이 보도했지만, 실제로는 조금은 기이한 입성을 구경한 구경꾼이 더 많았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군지도 몰랐습니다.(마21:10) 분위기도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이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서는 영광이로다.”했을 때,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와서 “제자들을 책망하소서.”(눅 19:39) 할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따르는 제자이므로 예루살렘 입성을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로서, 평화의 왕으로서의 입성이라고, 큰 사건으로 평가하지만, 시대 상황으로 판단해 보면 어쩌면 예수님과 제자들만의 잔치로만 볼 수도 있습니다. 온 나라를 들썩이는 입성도 아니고, 로마군이 입성할 때와 같은 구경꺼리도 있는 행진도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의 입성을 환영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메시아의 출현을 기대하는 사람들입니다. 새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권력과 금력과 사회적 구조에 억눌려 큰 소리 쳐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예수께 어떤 기대를 가지고 “호산나” 외쳤습니다. 성경은 전체적으로 예수님의 입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복음서 기자들의 기록이므로 “많은 사람”이라 했지만, 실제로는 일회성의 작은 축제나 행사의 하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입성을 기뻐하지 않은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본문에 자세히 나타납니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입니다. 이들은 공회에 모여 예수님의 행적에 대하여 공적인 입장을 정리합니다. 이들은 예수 시대를 대표하는 집단입니다.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으로 힘을 가진 집단입니다. 지배계층에 속합니다. 이들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신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고, 입성 전에 입장을 정리하여 대응했습니다. “예수가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예수에 대하여 입장을 정리하자는 말입니다. “만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예수를 메시아로 믿을 것이고, 그러면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혜택을 잃을까 걱정합니다. 대제사장 가야바가 이심전심이 된 집단을 향하여 제안합니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유익하다.” 명분을 만든 것입니다. 예수를 죽여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것을 지키자는 계획입니다. 자신들이 이익, 입장, 자리, 행할 권세, 영향력, 주장관철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입성을 판단하였고, 그 결과가 십자가(十字架)였습니다.
왜 이런 엇갈린 평가가 있게 됩니까? 중심에 “내가”가 있었습니다. 입성을 환영했던 제자들에게도 “내가”가 있었습니다. “한 자리”를 탐하였던 제자들이나(마 20:21), 예수님을 죽여야 한다고 모의한 집단이나, “호산나”한 무리들이나 모두 예수님을 바라보는 눈길 속에 “나”를 두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들의 한계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대전환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입성에 대한 성경의 평가를 우리 것으로 삼는 것입니다. 성경은 입성은 “하나님의 뜻”이라 했습니다. 예수님의 걸음 중심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모든 일의 평가의 잣대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한 사람의 일생에 대한 평가도 “하나님의 뜻”의 잣대로 보아야 합니다. 이룬 업적이나 성취가 많아 자기 이름을 높이고 공적을 쌓았어도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드러내는 것이라면 파도에 무너지는 모래성일 뿐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작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따른 열매라면, 그것은 땅에 떨어진 자기를 죽이는 밀알이 되어 귀하디귀한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삶, 추구하는 목적, 우리의 교회, 교회의 추구하는 목적이 주님의 뜻에 부합한가를 늘 물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입성에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었기에 역사를 변화시키는 큰 일이 되었습니다. 종려주일을 지키면서 엇갈린 평가를 내리는 “내 생각, 욕망, 이상”의 한계를 넘어서서,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 신앙과 교회를 세워가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