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허벅을 아시는가? 돌 많고 물 귀한 제주에서 물 긷는 아낙네마다 등에 지고 나르는 물항아리가 물허벅이다. 제주에는 물이 귀하고 구멍 숭숭 난 돌들이 지천이다. 여기 물이 귀한 제주에 물 많은 마을이 있다. 마을 이름이 물강(江) 물정(汀), 하여 강정마을이다.
제주 남쪽 서귀포에 가까운 강정마을은 물이 많아 은어도 올라오고 용천수도 솟아오른다. 마을 남쪽 바다와 만나는 곳은 용암단괴가 하나로 이어진 거대한 바위가 거진 1km 길이에 걸쳐있다. 이곳 사람들은 이 하나의 통짜바위를 구럼비라고 부른다. 이 구럼비 바위틈에서 붉은발말똥게와 맹꽁이가 살고 있고 앞바다엔 돌고래도 찾아와 노닐고 있으며 바다 밑에선 천연기념물 연산호가 주단처럼 군락을 이루면서 수만 년 동안 지내온 생명의 보고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생명의 보고인 이곳에 해군기지 건설이 30% 가량 진행 중에 있고, 생태계와 사람 마음의 파괴는 30% 보다 훨씬 더 크게 진행 중에 있다.
▲우리는 마을 주민의 딸기밭에서 딸기넝쿨을 손질했으며 귤밭에 가서는 감귤나무를 매달아 놓은 끈들을 제거하는 일 등의 대민지원을 하였고, 가로막은 철조망을 넘어 들어가 구럼비 바위를 만져보며 일출에 감격하였다. ⓒ베리타스 DB |
이 강정마을에 지금 온 동네가 깃발로 나부끼고 있고 이미 국제적이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다. 이제 강정은 현대 지구공동체의 온갖 시사점들이 중첩되고 집약되어 있는 곳이 되었고, 한반도 남쪽에서 강정은 한미 FTA와 함께 가장 첨예한 문제들의 상징이 되었다. 해군기지를 짓는다는 것은 단지 군사적인 측면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평화 정의 민주주의 인권 통일의 문제다. 건설은 파괴다. 강정은 싸움터가 되었다.
이곳 싸움터 강정에 한신대 신학대학원 학생들이 왔다. 이번에는 28명이나 왔다. 우리 딴에는 제법 큰 몸집이다. 와서 우리는 강정의 평화를 위해 기도했으며, 무엇이 평화를 위협하는지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귀로 들었다. 다른 세상에서는 평화를 위협하는 요소가 내재되어 있어 잘 보이지 않는 싸움이 이곳 강정에서는 표면에 들끓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눈으로 보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과 고민, 이곳에 오기 위해서 일회적으로 해보는 것만은 아니다. 이런 질문과 고민은 우리 신학공부의 실존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하는 것과 이곳 마을 사람을 만나보고 구럼비를 거닐어보고 만져보는 것이 전부였다. 우리는 마을 주민의 딸기밭에서 딸기넝쿨을 손질했으며 귤밭에 가서는 감귤나무를 매달아 놓은 끈들을 제거하는 일 등의 대민지원을 하였고, 가로막은 철조망을 넘어 들어가 구럼비 바위를 만져보며 일출에 감격하였다.
우리는 정부 주관의 군축회담장에 가서 회담 의제에 강정해군기지 건설에 관한 조항이 빠져 있는 군축회담의 허위를 폭로하고 항의하였으며 정부의 기만책에 저항하는 활동가들이 경찰에 잡혀가면서도 치열하게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눈앞에서 목격하기도 했다. 우리는 강정평화학교에 등록하여 3기 수료생이 되기도 했고, 전국 각처에서 마음을 담아 보내온 현수막을 마을 곳곳에 달았으며, 출동한 경찰관들 앞에서 ‘한판 싸움이 다가올수록’으로 시작하는 “처음처럼”을 노래 불렀고 춤을 추었다. 우리는 이 모든 활동이 우리 기도의 연장이었음을 누가 호명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알고 있었다. 우리는 평화를 위해 추상적인 일을 한 것이 아니라 강정평화에 기여하고자 구체적인 행동들을 하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하는 고민은 머리로서는 찾아낼 수 없는 것이다. 그 고민은 우리의 행동 자체를 통해서, 행동함으로써 극복되었다.
우리는 강정기행을 강정순례라고 고쳐 부르고 싶다. 강정에 와서 코사마트 사거리와 중덕 삼거리 주위를 거닐어 보고 마을 사람을 만나고 문화제 행사에 참여하여 함께 춤추며 노래하는 행위는 방문이나 기행이 아니라 순례였다고 믿는다. 강정은 이제 평화성지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구럼비 파괴를 멈추고 크레인을 무너뜨릴 날이 올 것을 믿는다. 하나님은 우리의 강정의 신원을 듣고 계실 것이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다. 지금까지 구럼비 바위를 깨고 건설된 콘크리트 도로는 영구히 복구불가능하지만 그것은 공사가 중단되는 그 날에는 통곡의 벽이 되어 파괴의 아픔을 회상케하는 상징물이 될 것이다. 그 날에는 붉은발말똥게와 돌고래가 함께 뛰놀고 마을 아이들과 어른들이 구럼비 위에서 춤을 추게 될 것이다. 그 날에 우리는 물허벅을 지고 강정천에 가서 물을 길어 보고 싶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