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박태식] 대자대비하신 하느님

역사적 예수(26)

마태 13,29: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밀까지 뽑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박태식 박사. 

예수님의 비유에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는 역시 농사일이다. 이번 달에 선택한 예수님의 비유도 농사일을 다루고 있다(마태 13,24-30). 어떤 농부에게 밀밭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해인가 이삭이 팰 무렵에 자세히 살펴보니 밭에 밀 말고도 엉뚱한 곡식(가라지)이 자라고 있더란다. 그래서 종들이 와서 ‘밀농사를 크게 망치기 전에 하루빨리 가라지를 솎아내어 피해를 줄이자’는 제안을 한다. 그러나 주인은 행여 다 자란 밀이 뽑힐까 염려되어 ‘기왕 이렇게 된 것, 추수 때까지 기다려 보자’ 하고 관대한 결단을 내렸다는 이야기다.
  
비유의 속 뜻은 접어 두더라도 도대체 농부가 내린 결정은 그리 신통해 보이지 않는다. 우선 씨를 뿌린 후에 수시로 밭을 돌보며 김매기를 진작 좀 해 두었다면 이삭이 팰 무렵에야 낭패를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후에라도 잘못을 깨달으면, 더 이상 늦기 전에 잡초가 영양분을 빼앗아 가지 못하게 막는 게 당연하지 그대로 방치할 일이 아니지 않은가! 우리네 농사 상식으로는 주인의 처사는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농사법이다. 하지만 식물학자 이창복 교수는 농부의 처사가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설명한다.
  
공동번역성서에서는 밀밭에서 곁다리로 자라난 곡식을 두고 ‘가라지’로 번역했지만 실상 가라지는 조밭에서 자라는 잡초이고, 밀밭에서는 ‘독보리’가 자란다고 한다. 그리고 독보리란 겉모양으로는 밀과 구분하기 어렵고 알맹이의 크기도 비슷하기 때문에 종자로서도 선별이 어렵다. 따라서 이삭이 패기 전에는 밀밭에서 독보리를 가려내기 힘든 노릇이다. 게다가 잡초들은 야생 식물인 까닭에 인위적인 농작물들과는 달리 그 뿌리가 강해 좀처럼 뽑히지 않는 특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문득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 부는 언덕에 이름모를 잡초야.’라는 노랫가락이 생각난다.
  
김매기도 불가능하고, 설혹 이삭이 팼더라도 주변의 밀과 같이 뽑혀 나올 가능성이 짙다면, 그저 추수 때까지 독보리를 놓아두는 게 상책이다. 주인 농부 입장에서 보면 독보리가 몹시 얄미웠을 테지만, 행여 그것을 뽑다가 밀 이삭마저 다칠까 몹시 걱정이 되었을 것이다.
  
예수님 역시 혼신의 힘을 기울여 농사를 짓는 농부들의 애틋한 마음을 낱낱이 짐작하셨기에 이런 비유를 드실 수 있었다. 예수님은 대자대비하신 하느님을 그렇게 표현한다. 인간(종)의 기준과 하느님(농부)의 기준은 그렇게 다르다는 말이다. 김형영 시인의 ‘가라지’라는 시를 옮겨본다.
  
   
밀밭에 가라지가 자라고 있네
밀처럼 자라고 있네
함께 살아가자고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냐고
저 혼자 고개 들고 자라고 있네               


글/박태식 박사(서강대, 가톨릭대, 성공회대 신학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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