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나 신학 연구가 아닌 ‘삶’을 통하여 체득된 부활신앙을 기독교 원로들이 털어놓는 대화문화아카데미(원장 강대인) 콜로키움 ‘내가 믿는 부활’이 아홉 번째를 맞았다. 지난 9일 평창동 다사리마당에서 마이크를 잡은 원로는 81세의 박상증 목사.
▲박상증 목사 ⓒ베리타스 DB |
그에게 있어서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90세를 바라보는 가운데 예수의 부활에 대한 감상은, 젊은이들의 그것보다는 좀더 개인적이지 않을까. 하지만 이 원로에게 있어서 2천 년 전 예수의 부활사건에 대한 신앙은, 자기 자신에게 머물기는커녕 ‘지금 여기’의 민족, 나라에 대한 치열한 고민으로써만 설명되었다.
‘민족의 부활’로서의 통일
부활에 대한 그의 해석은 일제치하 성결교단의 탄압과 재건 경험에 다소 녹아 있다. 당시 성결교단은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일제시대의 종말을 암시하는 듯한 재림교리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탄압받았고 1942년 결국 강제해산 당했다. 이때 성결교 목사였던 박상증의 아버지와 그의 동료들은 “주님이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듯이 성결교단과 신학교도 3년 만에 부활할 것이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 3년 뒤에 광복과 함께 교단도 재건되었다. 해산 중 교단 지도자들이 사택에서 쫓겨나고 대서방을 차리는가 하면 그들의 자식들 역시 남들보다 무겁게 일본천황에 대한 충성을 강요받는 모습은 어린 박상증의 눈에도 ‘악몽’으로 비쳤으며, 광복과 재건은 일종의 ‘부활’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얼마 안 돼 많은 성결교 신학교수들이 납북됐다. 박상증 목사는 이를 “당시의 신학교 교수들 대부분이 6.25 동란을 겪으며 납치되었다. 부활의 기쁨을 짧은 기간 동안 누리다가 출구가 보이지 않는 또 다른 길로 가신 것 같다”고 해석했다.
민족상잔이 가져온 또 한번의 죽음. 그러나 그는 또 한번의 부활, 즉 “두 번째 부활”이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두 번째 부활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그분들은 생각하셨을까. 우리는 그것을 구태여 말하자면 ‘통일’이라고 했던가.”
그는 “차라리 때를 더 늦추어 주님 다시 오실 때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오래 참고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라며 통일에 대한 열망과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그것이 진정 역사의 과정에서 단편적인 ‘micro’ 부활보다는 ‘macro’ 부활을 대기하는 믿음일지 모른다. 재림의 교리를 고집하다 죽음을 맛본 성결교단은 과연 역사의 끝자락에서 일어나게 될 ‘민족의 부활’에 대해서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묻고 싶다”고 덧붙였다.
민족의 부활 위해 필요한 것은 ‘십자가’
이어 그는 십자가와 부활 신앙을 통일운동과 연계시켰다. 존 베넷의 “십자가와 부활 사이에 결코 지름길은 없다”, 한스 큉의 “부활은 일상생활 속에서의 죽음에 대한 투쟁을 의미한다” 등의 말을 곱씹으며, 통일운동 역시 부활을 맛보기 위해서는 십자가상의 고난과 같은 희생이 요청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에게 통일은 민족의 부활”이라며 “이 부활을 위해 온갖 죽음의 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결단과 매일매일의 투쟁과 고통을 우리는 결코 비켜갈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근래의 통일운동에 대한 안타까움도 드러냈다. 그는 “통일을 누구보다 강력하게 주장하고 추진해 온 이념적 집단”이 퇴보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이들이 “소위 역사청산을 통일의 전제조건 같이 주장하고 ‘macro’ 화해라는 막연한 대전제를 앞세우면서 지난 100년 동안의 온갖 역사적 모순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어렵고도 고통스러운 길을 외면해왔다”고 비판했다. 또 이러한 움직임으로 인해 “통일을 원치 않는 입장에서는 더 할 말이 많을 것이고, 걱정스러운 사실은 통일에 대한 무관심이 증폭되고 있다는 것이다”며 우려했다.
“예수 부활, 정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박상증 목사는 예수 부활 사건을 정치적 사건으로 해석하면서, ‘정치적 혁명’이 현 한국사회에도 요청된다고 말했다.
그는 예수 당시 로마의 압제 하에 있던 유대지방의 사람들이 예수를 ‘정치적 메시아’로 생각했으며 예수가 그들의 왕국을 재현할 것으로 기대했을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그러나 “(예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의 경험을 통하여 그들의 왕국 또는 제국의 꿈은 ‘하나님 나라’의 정치적 비전으로 혁명적으로 전환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견해를 한국사회의 상황과 연계시켰다. 그는 “그동안 우리는 ‘Pax Americana’의 제국적 질서 안에서 살아남는 노력을 해왔고,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제3세계 나라들 가운데서는 성공적 개발국가로 성장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는 제국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자주적 주체성을 쟁취하려는 대안운동이 일어나기 마련이다”며 “그 대안을 ‘하나님 나라’의 가능한 실체로서 구상해 본다면, 나는 감히 그 대안을 우리와 제3세계 전체와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데서부터 찾아야 되지 않나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평화와 창조질서의 보전과 지속가능한 정의로운 세계를 위하여 우리가 선택해야 할 대안적 정치혁명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