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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규태 신년칼럼] 2012년도 새해를 맞이하며

손규태·성공회대 명예교수

▲손규태 성공회대 명예교수.(본지 편집고문). ⓒ베리타스 DB
2011년도는 한국의 대부분의 평범한 서민들에게 힘들고 괴로운 한 해였다. 그중에도 젊은 세대들은 날로 심해져가는 입시전쟁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힘들고 괴로운 공부에 시달려야 했다. 가난한 집 학부모들은 사교육비 대기에 허리가 휘었다. 가난한 집안 출신의 대학생들은 치솟는 등록금과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면서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어렵게 대학을 마친 다수의 젊은이들이 일자리가 없어서 백수가 되거나 아르바이트와 같은 허드렛일로 아까운 청춘을 탕진해야 했다. 집 없는 서민들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전셋값 마련에 허리가 휘어야 했고 싼 집을 찾아서 변두리 지역으로 몇 번씩 이사를 다녀야 했다. 일용노동자들은 경기가 좋지 못해서 일자리를 찾지 못해 가족을 부양할 수 없었고 그렇지 않아도 궁핍한 삶이 더욱더 힘들어지기만 했다. 젊은 시절 열심히 일하고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노년을 준비하지 못한 노인들은 어느 해보다도 춥고 고통스러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다수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에 절반도 될까말까한 월급과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언제 일자리를 잃을까 항상 심리적 불안 가운데 전전긍긍하며 힘든 삶을 살고 있다. 이들에게 닥친 겨울은 어느 해 겨울보다 매섭고 춥다.

이들 어려운 처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더욱 괴롭히는 것은 그들에게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이 힘들더라도 내일의 희망이 있다면 모든 것을 참고 이기며 극복하고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신약성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바라는 것이 실제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으면 현재의 어려움은 극복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희망을 뒷받침해 줄 믿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희망이 없는 것은 우리가 의지하고 기대야 할 정치가들이 힘든 사람들이 처한 형편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경제를 살리겠다고 공언하고 표를 얻어 당선된 이명박 정부는 들어서자마자 친기업적인 정치를 하겠다고 큰소리쳤다. 경제를 살리기를 바라고 그에게 표를 준 대부분의 서민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는 서둘러 대기업의 법인세를 낮추고 강남 등 부자들이 사는 대형아파트에 부과하던 종합부동산세를 낮추거나 폐지해버렸다. 그는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큰소리치고는 지난 3년 동안 대기업들만 참여할 수 있는 4대강 살리기에 매진했다. 국민들 70% 이상이 반대하는데도 그는 밀어붙인다. 이러한 친기업정책에 기대서 대기업들은 유통업을 완전히 장악하고 서민들이 장사하고 살아가는 골목에까지 밀고 들어와 대형마트를 세워 골목상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서민들이 하는 빵집들도 대기업의 세 딸들이 장악하여 싹쓸이 점령해버렸다. 중소상인들이 데모를 하고 소리높여 외쳐봤지만 대기업과 한패가 된 한나라당 정치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야당도 서민들을 보호하는 법을 만들지 않았다.

지난 해 서민들의 피눈물을 흘리게 한 사건들 중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은 부산저축은행비리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부정과 비리에 얽힌 16개의 저축은행들이 문을 닫았다. 이 은행에 저축하고 있던 수많은 서민들이 돈을 떼이거나 손해를 보게 되었다. 권력 있고 힘 있는 몇몇 사람들은 사전에 예금을 인출하여 손실을 면할 수 있게 되었다. 금융기관들을 감독해야 할 금융감독원과 감사원 직원들은 뇌물을 받고 비리를 눈감아 주었다. 노무현정부에서부터 크게 드러나기 시작한 공무원들의 타락이 이명박정부 들어와서 일상화 된 것이다. 권력의 핵심에 있는 청와대와 총리실 직원들도 타락에 한몫 한 것이다. 이러한 공무원들의 도덕적 타락은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 매우 우려할 만한 일이다.

이러한 국가의 법적 제도적 모순과 정부와 공무원들의 도덕적 타락으로 인해서 힘없는 서민들의 삶은 점점 더 도탄으로 빠져들고 있다. 1986년 정치적 민주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나서 문민정부시절부터 경제적 민주화는 오히려 뒷걸음을 치기 시작했다. 1996년 김영삼 정부시절에 만들어진 비정규직 법과 근로자 파견법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노동자 착취는 노무현정부에 들어와 약간의 시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오늘날 전체 노동자들의 절반 이상이 임금의 절반정도를 받으면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이렇게 싼 노임으로 얻은 이익은 전적으로 부유한 자들, 특히 대기업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그들은 일자리를 늘리고 얻은 부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말했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그들은 지난 15년 동안 얼마나 많은 돈을 가난한 자들로부터 빼앗아갔는가? 나는 경제학자가 아니어서 계산해 낼 수 없으나 적어도 몇백 조는 될 것이다. 서울시내에 들어선 대기업들의 빌딩들 가운데 비정규직 노동자들로부터 빼앗아서 지은 것들이 절반 정도는 될 것이라고 말한다면 거짓말일까? 또 이명박정부가 들어와서 감해준 법인세는 얼마나 되는가? 그리고 폐지된 종합부동산 세금이 지난 3년 동안 100조가 넘는다지 않는가? 골목상권을 장악하고 서민들에게서 빼앗아간 돈은 얼마나 될까? 한나라당 비대위원으로 있는 김종인씨는 국민건강보험법이나 근로자 저축법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법들을 만든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러나 그가 만든 것으로 알려진 부가가치세법은 서민들의 등골을 빼어먹는 법이다. 굶주리는 가난한 사람들이 빵을 한개 사먹는 데도 세금을 붙이는 기만적 법은 폐지해야 한다.

국민들 즉 서민들보다는 대기업들, 부자들을 위한 정부 밑에서 사회적 약자들은 끔찍하게 힘든 경험들을 했다. 그들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가난한 자들이 주워 먹는 것을(누가복음 16:21) 원리로 하는 미국식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체제를 굳게 믿고 있는 한국인들 특히 보수적 그리스도인들은 그 원리가 오늘날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자본주의는 1980년대부터 돈놀이로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돈을 버는 금융자본주의로 전환된 이래 그 악마적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몇 년 전에 터진 신용불량자들에게 주택자금대출로 돈을 벌려던 사건으로 다수의 은행들이 파산했고, 지금도 미국은 그 파산한 은행들을 돕다가 금융위기로 나라가 휘청거리고 있다. 미국은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받아들인 세금으로 망해가는 부자들을 돕다가 나라가 위기에 처한 것이다. 우리도 기업들은 제조업에 투신하지 않고 금융업으로 쉽게 돈을 벌려고 한다. 그래서 가계대출이 900조를 넘어 1천조에 육박하고 있다. 은행이자를 5%로만 계산해도 서민들은 금융자본 즉 부자들에게 1년에 50조의 이자를 제공한다. 전체 국민들이 다 채무자가 되고 말았다. 기업을 해도 채무자, 집을 사도 채무자, 대학엘 가도 채무자가 된다. 이렇게 제도적으로 국민들을 채무자로 만드는 나라, 우리는 이른바 미국식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체제 속에 살고 있다. 거기서 오는 고통을 99%의 사회적 약자들이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다.

단지 1%의 부자들만이 그 체제를 만들고 유지하려고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는데 그것을 국가라고 하는 체제가 서민들의 세금을 가지고 뒷받침하고 있다. 은행이 부실하거나 아니면 대기업이 망하려고 하면 정부는 국민의 세금을 공적 자금이라는 이름으로 쏟아 부어서 지원해주고 살려낸다. 이렇게 가난한 자를 등쳐서 부자들을 돕는 것이 국가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시 한번 국가(정부)란 무엇인가? 국가는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가? 물어야 한다.

금년은 선거의 해다. 국가와 정부를 운영할 우리의 대표자들을 새로 뽑는 해이다.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대표자들을 뽑아야 한다. 타락하지 않은 정직한 사람, 자기보다는 국가와 국민들의 미래를 위해서 일할 사람들, 특히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 정치를 할 사람들을 뽑아야 한다. 특히 도덕적 기초가 되어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2012년을 축복의 해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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