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아나뱁티스트다 ㅣ 스튜어트 머레이 저, 강현아 역 ㅣ 대장간 ㅣ 272쪽 ㅣ 1만 1천원
오랫동안 이단적 종파로 인식되어 온 아나뱁티스트(Anabaptist, 재침례파) 교회가 최근 국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반전운동과 집단 간 갈등 중재 부문에서 아나뱁티스트들의 이름이 자주 거론되고 있고, 타 교파 크리스천들과 연대해서 활동하는 경우도 종종 눈에 띈다. 이들에 대한 ‘오해’가 상당히 불식되고 있음을 방증하고 있다.
신간 『이것이 아나뱁티스트다』(The naked Anabaptist)는 런던아나뱁티스트네트워크 대표로 있는 스튜어트 머레이(Murray)의 신작으로, 아나뱁티스트 교회에 대한 변화하는 인식을 소개하고 있다. 또 아나뱁티스트가 이단이라는 생각은 과거 가톨릭, 개신교 교회가 크리스텐둠(기독교국가)을 건설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하고, ‘포스트-크리스텐둠’ 시대에 아나뱁티스트 교회는 하나의 이머징 교회로서 주목받고 있다고 평가한다.
정교분리, 평화주의, 공동체성, 제자도 등으로 그 성격을 규정할 수 있는 아나뱁티스트 교회. 종교개혁 시대 유럽이 가톨릭과 개신교 진영으로 양분되어 시민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통치자가 택한 종교를 따라야만 했을 때, 국가가 지지하는 교회의 요구에 순응하기를 거부한 아나뱁티스트들은 그들의 믿음을 방해받지 않고 실천할 지역적 영역이 없었다.
이들의 사상도 이단 치부됐다.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고 재침례를 주장하거나 폭력의 정당성 문제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 등은 기존체제에 반하는 것이었고, 일부 극단적인 아나뱁티스트들의 활동은 이들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고착시켰다.
하지만 상황은 변화하고 있다. 머레이는 “최근까지도 대개 역사학자들은 아나뱁티스트를 반대했던 자들의 주장을 지지”했지만, 한편으로 “지난 반 세기 동안 역사학자들은 아나뱁티즘을 현 시대를 위한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하나의 ‘급진적인 갱신운동’으로 진지하게 다루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 이러한 변화는 아나뱁티스트 관련 종파들이 비교적 오랫동안 종교영역의 한 부분으로 존재해 온 미국은 물론이고, 최근까지만 해도 아나뱁티스트의 존재와 영향력이 미미했던 세계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아나뱁티스트 교회에 매력을 느낀 사람들의 소감을 소개하기도 한다. “어떤 이유로든 그리스도인의 관점에서 전쟁을 옹호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단순한 펠로우십 이상의 교회공동체를 꿈꿨다. 아나뱁티즘을 알게 됐을 때, 나는 나 자신이 아나뱁티스트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도 이미 아나뱁티스트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나뱁티스트가 기존의 기독교전통에 대해 품은 진지하면서도 급진적인 의문과 행동양식은 예전에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교회전통을 더이상 수용하지 않도록 하는 용기를 주었다” 등등.
이런 현상의 근본원인을 머레이는 정리하며 “크리스텐둠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크리스텐둠’은 비단 기독교가 국교인 나라라는 의미를 넘어, 교회와 국가가 하나가 되어 사회를 다스리고 그 사회 속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고 가정되는 사회이고, 더욱 포괄적으로는 기독교적 문화가 지배적이어서 종교적 갈등을 가져오는 사회를 뜻한다. 대부분의 서구 국가에서 크리스텐둠의 성격이 발견되는 것이다.
머레이는 크리스텐둠에서 기독교의 문제에 대해 “기독교가 복음의 능력으로 제국을 변화시키기보다, 오히려 제국주의적 가치와 행위들에 의해 전복된다”고 지적했다. 또 크리스텐둠에서 교회는 “세상 권력, 부와 결탁함에 따라 사람들은 복음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며 크리스텐둠이 점점 붕괴되고 ‘포스트-크리스텐둠’의 시대가 찾아오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러한 시대에 아나뱁티스트 교회의 미래는 밝다고 전망한다. “거의 5세기 동안 아나뱁티스트들은 크리스텐둠의 전제에 예속되지 않은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세우는 방법을 탐구하고 실천해왔다. 지금까지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사회와 문화의 중심역할을 해온 기독교전통들은 크리스텐둠의 끝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고통스럽게 받아들이지만, 아나뱁티스트들은 오히려 기뻐한다.”
또 현 시대의 끊임없는 사회분열 속에서 아나뱁티즘은 “평화를 추구하면서 증인된 삶을 사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예수중심성을 강조함으로써 포스트-크리스텐둠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유익을 줄 것”이라며 아나뱁티즘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낸다.
이런 점에서 그는 아나뱁티스트 교회를 하나의 이머징교회로 보며, “아나뱁티스트 정신이 재발견되고 새롭게 대두되고 있다. 다른 교단에서 예수의 가르침과 산상수훈, 비폭력 삶의 모범을 진지하게 따르는 사람을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는 이머징교회 운동의 대표주자 브라이언 맥클라렌의 말을 인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