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고문기술자’로 악명을 떨쳤던 이근안씨가 그가 당시 고문했던 민주주의자 고 김근태 전 통합민주당 상임위원의 사망을 전후해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김 전 위원의 영결식에 끝내 불참해 "말로 만의 사죄였다"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이씨는 최근 조선TV와의 인터뷰에서 "영결식이 엄숙하게 진행됐으면 하는 바람에 침묵하고 있었다"며 그간의 심경을 밝혔다.
이씨는 "저도 많이 울고 기도하면서 장관님하고 대화를 했다"라며 "당신은 왜 먼저 가십니까? 차라리 한살이라도 더 많은 내가 먼저 죽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2005년 그가 복역 중일 때 김 전 위원이 보건복지부 장관 신분으로 자신을 찾아왔을 때의 순간을 회고하며 "코가 땅에 닿도록 사죄했지만, 수용해 주는 것이 우연일 수 있느냐. 내가 장관이라면 그럴 수 있겠느냐"고도 했다.
또 자신의 목사의 길을 걷게된 경위도 짧게나마 설명했다. 고문을 했던 자신의 과거가 평생의 짐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괴롭지 않으면 제가 목사가 되겠습니까"라며 "평생 한을 지고 산다"고 말했다.
끝으로 이씨는 "(김 전 의원 묘소에)가봐야죠. 적정한 시기에 갈 겁니다. 이 세상 속에 멍에 같은 건 없을 테니까 영면하시기를 충심으로 기도하겠습니다"라고 했다.
한편, 현재 이씨는 한 아들은 지병으로, 다른 아들은 교통 사고로 먼저 떠나 보낸 뒤 폐지를 줍는 부인과 함께 5평 남짓한 월세방에서 근근히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