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한국칼빈학회가 주최하는 2012년 제1차 정례발표회가 열렸다. 이날 발표자는 총신대 신학대학원 박건택 교수(역사신학)로, ‘칼뱅의 유산에 대한 반성적 고찰’이란 제목으로 발표를 진행했다. ⓒ베리타스 |
총신대 신학대학원 박건택 교수(역사신학)가 한국에서의 칼뱅주의의 현실을 고찰하면서 장로교 분열의 역사에 칼뱅주의가 미친 영향을 분석했다. 16일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열린 한국칼빈학회(회장 박경수 교수)에서 ‘칼뱅의 유산에 대한 반성적 고찰’이란 제목으로 발제를 한 박 교수는 예장과 기장이 그리고 예장과 예장이 쪼개진 데에 칼뱅주의가 영향을 미쳤다며 특히 "수입된 칼뱅주의"에 의해 이러한 교단 분열이 더욱 심화되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칼뱅주의를 신학적이고 윤리적인 노선으로 표방한 장로 교단들은 각 교단의 경향에 따라 서양 칼뱅주의를 수입했다. 합동측의 지도자들은 고려측과 마찬가지로 주로 국제적인 보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칼뱅주의 교육기관들의 정신에 빚을 졌다. 반면, 통합과 기장은 신학적 자유주의와 부분적이나마 종교다원주의를 수용했다. 박 교수는 "전자(통합)는 칼뱅주의 전통과 바르트주의의 공존을 인정했다면, 후자(기장)는 한국의 신학적 독창성을 갖고자 노력했고 그 결과 ‘민중신학’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제10차 WCC 총회를 둘러싼 교단 간 갈등이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그 주된 이유로 거론되고 있는 ‘종교다원주의’에 관해서는 "칼뱅주의 전통의 장로교회는 고백적 그룹과 다원주의적인 그룹으로 분류될 수 있으며 이 두 그룹 사이의 갈등으로 WCC 개최 준비를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고도 분석했다.
이어 한국사회 현실에서 칼뱅주의 각 그룹이 어떠한 모습을 띄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짚어봤다. 박 교수는 "칼뱅주의의 신앙고백적인 그룹은 정부와 더불어 반공 이념을 공유했다"면서 "사실 냉전 시기에 칼뱅주의 세계관은 마르크스주의 세계관과 양립할 수 없었다. 한국 전쟁은 대부분의 교회에 그런 경험을 가져다주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반공 이념을 따랐는바, 심지어 군사 독재가 정치권력의 지배를 위해 이 이념을 이용했을 때에도 그러했다"고 말했다.
자유주의 칼뱅주의자들에 대해서는 "한국에서 민주화와 통일 운동은 이들을 제외하고는 주로 다른 철학적이거나 민족주의적인 배경에 의해 주도되었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에서의 대형교회 사례를 근거로 칼뱅주의가 교회 권력화를 심화하여 교회가 돈, 정치, 권력에 쉽게 집착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박 교수는 "몇몇 대형교회들의 성공은 여러 학자들로 하여금 이미 막스 베버 이래 제기된 칼뱅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문제를 한국 상황에서 제고하게 했다"며 "19세기 미국 퓨리턴 사회에서처럼 한국 칼뱅주의 사회는 돈과 정치적 내지는 종교적 권력과 함께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보수교회 지도자들을 등에 업고 활동하고 있는 기독당 설립에 대해서는 "기독교 정당 설립 추진자들에게 무슨 역사적 신학적 고찰이 있는지 묻고 싶다"면서 "기독교 권력정신은 한국의 기독교 사회 전체에서 드러나는 특성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칼뱅주의자들은 이런 세속주의-즉 정치권력의 탐욕과 돈의 축적-에 맞서 "아니오"라고 말할 용기를 잃었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칼뱅 연구에 있어서는 서양의 연구 결과물들을 모방하는 데 그치지고 있다고 지적하며 "한국 상황에서 요구되는 자신들의 존재이유를 스스로 묻지도 못한 채 학문의 권력화로 전락하는 모습"이라고 일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