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학교폭력이 심각하다. 지난 5년 동안 학교폭력을 견디다 못해 자살한 학생 수만 750명이 넘는다. 학교당국과 교사들도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학생들과 교사들 사이에도 폭력이 자주 일어난다. 폭력을 당한 학생은 너무 괴로워 스스로 목숨을 끊는데, 폭력을 행한 학생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가해학생들은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흔히 하는 일을 자기도 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폭력이 몸과 맘에 밴 것이다.
▲박재순 씨알사상연구소장 · 목사 ⓒ베리타스 DB |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진 현대사와 폭력이 난무하는 영화, 드라마, 게임이 젊은 학생들의 생각과 삶을 폭력으로 오염시킨 것 같다. 그러나 오늘 어린 학생들이 이처럼 폭력의 늪에 깊이 빠진 진정한 까닭은 한국현대사나 폭력적인 영화와 게임에 있는 것 같지 않다. 우리 사회 자체가 폭력을 숭배하고 폭력에 의지한다. 영혼을 가진 인간이 돈에 집착하고 숭배하는 것 자체가 인간에 대한 학대고 폭력이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부당하고 불의하게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폭력이다. 그러나 부당하게 남을 괴롭히고 남을 갈취하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다. 돈과 권력을 써야 할 곳에 쓰지 않고 엉뚱한 곳에 쓰는 것도 폭력이다. 돈과 권력을 꼭 필요한 곳에 쓰지 않아서, 사람이 고통을 겪고 목숨을 잃는다면 돈과 권력을 쓰지 않은 것도 폭력이다. 그렇게 보면 학생들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이미 폭력적인 삶에 깊이 빠져 있다. 우리사회는 폭력숭배에 빠져 폭력을 휘두르는 사회다.
이 폭력사회 폭력학교에서 어떻게 벗어날까? 이미 기축시대의 스승들, 예수, 석가, 공자, 노자, 소크라테스가 폭력에서 벗어나는 길을 가르쳤다. 기축시대 정신의 핵심은 자연만물이나 국가권력이 아니라 사람의 내면에서 신적 생명과 영원한 가치를 발견한 것이다. 한 마디로 물질이나 권력이 아니라 정신이 고귀하고 영원하다는 것이다. 기축시대의 정신이 내놓은 윤리는 단순하다. “내가 싫은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이 인류를 평화의 지름길로 이끄는 황금률이다. 서로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가르침과 윤리는 누구나 실행할 수 있는 쉬운 것이다.
사람은 평화를 위해 준비된 동물이다. 사람은 이빨도 뭉툭해지고 손톱발톱도 부드러워지고 눈도 맑아졌다. 신체의 변화 자체가 평화의 길로 들어선 것을 말해 준다. 이성과 감정이 발달하고 말을 하게 된 것도 사람이 평화롭게 사는 길로 진화한 것을 나타낸다. 다만 사람의 정신과 생각이 한없이 깊어지고 무한대로 확장되어서 제멋대로 전체를 휘두르고 싶은 충동도 커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에게 다른 길은 없다. 사람이 살 길은 오직 하나 평화의 길뿐이다. 마음, 생각, 삶, 행동으로 평화의 길을 익히고 배우는 것이 사람이 할 일이다.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사납고 거친 맘을 삭힐 철학과 사상을 익히는 것이다. 교사부터 학생까지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철학, 맘을 닦고 씻으며 깊이 파서 서로 돌보고 보살피는 철학과 사상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일찍이 유영모는 “큰 나라 아메리카가 벌이를 잘 하고 작은 나라 덴마크가 실속을 차려도 맘 삭힐 철학(맘 삭힐 줄)이 없으면 제대로 된 나라를 이룰 수 없다”고 했다. 아무리 경제가 발달하고 아무리 훌륭한 복지제도를 만들어도 사납고 거친 맘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자기를 학대하거나 남을 괴롭히는 폭력에 빠지고 만다. 거칠고 사나운 맘을 삭혀서 맑고 깊은 맘에 이르러야 한다. 맘이 맑고 깊지 못하면 바른 나라를 세우지 못하고 건전한 문명사회를 이룰 수 없다.
둘째,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사람은 평화를 위해 준비된 존재요 평화의 가능성을 가진 존재다. 서로 입장을 바꾸어서 조금만 생각을 고치고 조금만 서로 이해하면 폭력에서 벗어나 평화로 갈 수 있다. 교육방법을 바꾸고 새 교육방법을 찾으면 평화의 길은 있다.
최근에 청주 동주초등학교 5학년 담임교사 김미자 선생님은 학교폭력을 극복하기 위해 공부모임을 하면서 노르웨이 교육에서 ‘멈춰’ 교육법을 배우고 이 방법을 자신의 학급에 적용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폭력을 행하거나 남을 괴롭히는 말이나 행동이 있을 때 학생이 ‘멈춰!’라고 소리치게 했다. 처음에는 소리를 치지 못했으나 자꾸 격려하고 노력하여 피해학생이 큰 소리로 ‘멈춰!’라고 말하게 되었다. 이 소리가 나면 당장 전체 학급회의를 열고 토론하게 했다. 그리고 연극을 통해서 상황을 재현하게 하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역할을 바꾸어서 상황을 재연하게 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이 학급은 폭력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10개의 다른 학급들도 이 방법을 받아들여서 학교폭력을 극복하는 데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한다.
서로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면 많은 문제가 풀린다. 이것이 기축시대의 성현들이 깨닫고 가르쳐준 길이 아닌가? 나를 벗어나서 남의 자리에 서 보는 것이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길이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사람다운 사람을 만드는 교육철학을 정립하고 평화를 실현하는 구체적인 교육방법들을 개발하면 폭력학교가 평화학교로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