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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식] 나는 거기 없습니다

역사적 예수(28)

▲박태식 박사.
마가복음 4장 26절에서 29절. 하나님 나라는 이런 경우와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묻고 밤과 낮에 자고 일어나는데, 그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씨가 돋아나고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저절로 땅은 열매를 내는데, 처음에는 줄기, 다음에는 이삭, 다음에는 이삭에 가득한 낱알을 냅니다. 그리고 열매가 익으면 그 사람은 즉시 낫을 댑니다. 추수 때가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에 대해 무한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이며, 미래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가? 나는 지금 그리스도인으로 올바른 삶을 살고 있는가? 이렇게 살다가 혹시 천벌을 받으면 어쩌나?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던지는 이 같은 질문들을, 예수 주변에 모여 있던 이들이나 초대교회 신앙의 선배들 역시 틀림없이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 질문들이 가지는 현실 감각에 있어서는 상당한 차이가 난다.

그렇다면 현대인이 이해하는 종말은 과연 어떠할까? 아무래도 우주적 종말보다는 개인의 종말에 더 큰 관심이 있다고 하겠다. 은하계가 수만 개도 넘는 우주의 종말을 가늠하기엔 인간의 상상력은 부족하기 짝이 없으나 개인의 종말은 죽음이라는 생명 현상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설교에서 “곧 최후심판의 날이 닥치리라.”는 내용을 들을 때보다는 “사람이 죽으면 누구나 하나님 앞에 서서 최후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말에 더욱 현실감을 느끼곤 한다.
  
예수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하나님은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 하나는 자식에게 뱀과 돌을 주지 않는 무한한 사랑의 하나님이고, 다른 하나는 철저히 잘잘못을 따져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던져버리는 무자비한 심판의 하나님이다. 필자는 하나님의 두 가지 모습 중에 아무래도 사랑의 하나님에 마음이 더 끌리곤 한다. 하나님은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간직하신 분이다. 그런데 인간을 그렇게 사랑하던 분이 죽음 후에는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무자비한 심판의 하나님으로 돌변할 수 있을까?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은 죽음에 의해 제약받는 분이라고 해야 옳고, 그리스도인들은 죽음 저편의 하나님에 대해 엄청난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죽음에 의해 제약받는 하나님.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자칫 빛을 잃는 대목이 될 수도 있다.
  
그분의 전능하심과 불변하심을 전제로 할 때, 한번 인간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하나님이라면 죽음 후에도 절대로 그 사랑을 거두시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자면 죽음이란 하나님의 영역으로 넘어감으로써 그 온전한 사랑을 마침내 경험할 수 있는 기회라 하겠다.
  
봄에 뿌려진 씨앗은 결코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햇빛과 비가 있어야 하고 적당한 영양분도 갖추어야 씨 속에 숨은 생명력이 꿈틀거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농부는 비록 겉으로 보이는 다 자란 알곡만 거두어 가는 듯하지만, 기실 계절과 환경을 거쳐 온 알곡 하나하나의 숨은 역사까지 거두어 가는 셈이다. 인생도 이와 같아 이런 저런 일들, 선과 악의 순간들, 참과 거짓의 순간들을 두루 거치면서 성숙해 간다. 그리고 이 같은 역사를 품어 맺히게 된 결정체를 마치 농부가 알곡을 거두어 가듯 하나님도 그렇게 거두어 가시리라. 여기서 개개인의 역사가 더도 덜도 없이 모두 어우러져 모인 결정체를 인격이라는 가치, 혹은 인간의 전존재(全存在)로 불러도 좋을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모든 이에게 열려져 있다고 하겠다. 선한이든 악한이든 모두에게 햇빛과 비를 주시는 분(마태복음 5장 45절)이니 만치 어느 인생 하나 빼놓지 않고 거두어 가실 것이기 때문이다. 절대 무력한 우리가 오직 하나님에게 희망을 걸어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글/박태식 박사(서강대, 가톨릭대, 성공회대 신학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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