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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천 칼럼] 21세기 교회의 미래와 설교

▲ 기장신학연구소장 이재천 교수
지난 한 세기 동안 지구상에서 가장 큰 변화를 경험한 사회 중의 하나가 한국사회이다. 그런 변화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이렇게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서 미래를 전망한다는 것 자체가 불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21세기, 지구화 시대에, 서구 사회는 ‘탈현대 (post-modernity),’ ‘탈 기독교 사회 (post-Christendom society)’를 논하고 있다. 서구의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한국 사회는 순차적인 단계를 거쳐 ‘탈현대’에 이른 사회는 아니다. 우리가 ‘탈현대’를 논한다면, 그것은 분명 ‘전통, 근대, 현대, 탈현대, 식민시대, 탈 식민시대 (traditional, pre-modern, modern, post-modern, colonial, post-colonial)' 등의 다양한 시대 의식과 가치관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탈현대’적인 사회라고 하겠다. 이런 탈현대 사회의 대표적인 현상이 ‘가치관의 혼돈’이다.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인식론의 관점에서 탈현대 사회의 특징을 잘 드러내주는 말씀이다. 가라지를 뽑으려면 먼저 곡식과 가라지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매일 접하는 정보의 양은 인류가 역사 이래 불과 한 세대 전까지 경험한 모든 정보의 양을 합친 것보다 많다. 엄청난 정보의 물결이 빛의 속도로 넘쳐흐르는 가운데 가라지를 구별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지구적인 차원에서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 문화와 문화, 종교와 종교 사이를 구분 짓던 전통적인 장벽이 점차 무너지고 있다. 지구적 자본의 움직임 앞에서 국경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자본의 이동을 따라 노동력의 이동 앞에서도 국경이 사라지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 세계적으로 이러한 변화를 수용할 만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그래서 변화에 맞서 ‘우리 것’을 지켜야 하겠다는 ‘저항적 대응’의 몸짓이 지구상 곳곳에서 터져나고 있다. 일시적일지 모르겠으나, 세계적으로 보수화로의 회귀가 주요 사회현상이 되고 있다. 종교적으로는 근본주의가 사회적인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고,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갈등이 고조될 것이다.

21세기 지구화 시대를 초래한 신자유주의는 ‘자유의 확장’을 역사적 필연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인류의 역사는 자유의 확장의 역사’라는 신 칸트적 사고방식에 기초해서, ‘경제는 시장의 원리에 맡겨야 하며, 자본의 운용에 국가나 정치권력이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한 주장의 이면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자본 획득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감추어져 있다. 달리 표현하자면, ‘무한 욕망을 실현하려는 인간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자유를 인간의 욕구, 아니 ‘나’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던 정신적 타락의 결과로 인해서, 지금 전 세계가 진통을 겪고 있다.

21세기 초 벽두에 세계적으로 밀어닥친 경제적 진통을 극복하기 위한 처방이 긴박하게 모색되고 있다.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금기시하려던 ‘국가의 개입’을 정당화 한다. 그러나 국가는 문제의 발단을 찾아 책임을 묻는 일을 할 만한 여유를 갖지 못한다. 오히려 문제를 촉발시킨 공룡화 된 거대 자본의 잠정적인 대리인 역할을 하게 된다. 국가가 선택할 수 있는 처방의 내용은 세계적인 파탄을 초래한 ‘삶의 양식’을 극복함에 있지 않다. 오히려 ‘더 많은 자본을 풀어서 자본 유통의 활로를 여는 것’에 주력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다시 굴린다고 한들, 그 바퀴가 어디로 얼마나 굴러 가겠는가?

자본은 무시무시한 중력이 있어서 서로를 끌어당긴다. 끌어당길 자유의 무한한 확장은 결과적으로 조건과 능력을 갖춘 소수의 손에 모든 것을 쥐어 준다. 그리고 사회의 다수는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권리와 기회를 상대적으로 박탈당하게 된다. 사회적 다수는 자신의 욕구 충족을 정치적 행위를 통해서 성취하고자 한다. 그래서 지배체제인 정치권력을 장악하려는 일반 대중의 정치적 의지가 적극적으로 표출되게 된다. 사회적으로 소위 ‘민주적 사회제도로서 국가의 기능을 옹호하는 다수, 정치화된 대중세력’과 ‘민주주의의 이념인 자유를 옹호하는 소수, 경제 주도세력’ 사이의 대립전선이 형성된다. 그렇지만 ‘욕구 충족’의 원리를 근본 토대로 하는 정치적 갈등이 궁극적으로 어떤 해결책을 찾아내겠는가?

우리의 관심은 온 세상을 살림에 있다. 그것을 위해서 현실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사고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과 극복의 가능성을 찾아내고자 한다. 신자유주의적 가치관과 삶의 양식이 토대로 삼는 경험론적, 과학적 인식의 정당성에 대해서 철저하게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세력이 기독교이다. 기독교의 역사 인식, 인간 이해, 당위론적 명령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의 절대성, 십자가를 선택하는 자유, 한 생명의 가치를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사랑, 온 세상을 품어 살리려는 꿈을 구현하는 교회 공동체 등등, 삶의 본질을 붙잡고 어둠이 지나도록 외로운 씨름을 하라고 부름 받은 집단이 기독교이다.

생명파괴 현상은 지구적으로 가속화되고 있다. 과학적 기술력의 발달만으로는 인간이 초래하고 있는 지구적 재앙을 극복할 것 같지 않다. 그러기에는 인간의 본성이 너무 탁하다. 이 세상의 온 생명을 살려내려면 혼이 담긴 정성이 필요하다. 교회는 온 세상을 향해서 혼과 정성을 담아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해야 한다. ‘말씀’을 들으니 아골 골짜기가 생명으로 가득 차게 되었던 것처럼, 오늘의 설교 ‘말씀’을 통해서 죽음으로 치닫던 세상이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 차게 되리라. 이것이 바로 주께서 우리의 가슴에 담아주신 희망이요, 감추어 둘 수 없는 사명이다.

기장신학연구소장 이재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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