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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규태 칼럼] 국가의 기초가 튼튼해야

손규태·성공회대 명예교수

▲손규태 성공회대 명예교수 ⓒ베리타스 DB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유럽의 거대한 성채들을 둘러보면 그 기초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 거대한 돌들을 옮겨다 놓았다. 어떤 것은 몇 톤에서 몇 십 톤씩 되는 커다란 바위 돌들로 초석을 놓았다. 기계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어떻게 그렇게 큰 돌들을 멀리서 옮겨 왔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당시의 지식수준에서 가능한 수단들을 다 동원했을 것이다. 그렇게 큰 돌들로 기초를 삼아 피라미드나 성채들을 건축했기 때문에 수천 년 된 건축물들이 지금까지도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 기초가 튼튼하게 만들어지지 못한 건축물들은 대부분 소실되거나 무너져서 흉물로 남아 있는 것들도 볼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옛 성인들과 지혜를 가진 사람들은 인생이나 사회나 국가도 이런 건축물들과 같아서 그 기초를 튼튼하게 만들 것을 권하고 있다. 예수는 산상설교에서 모래 위에 집을 지으면 홍수가 나면 쉽게 휩쓸려 문어지지만 커다란 반석 위에 지은 집은 문어지지 않는다고 했다.(마태 7:24-27). 동양의 노자도 사람이 집을 지을 때 가장 큰 돌로 기초로 삼아야 그 집이 안전하고 오래 견딘다고 설파했다. 따라서 모든 것에서 기초가 튼튼해야 하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것이어서 아무도 이러한 진리에 대해서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필자도 한국 전쟁 직후에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기초학력이 부실해서 대학교 교육을 받을 때 어려움이 많았고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서 기초학력을 보완하면서 공부를 했었다.

요즘 세계의 현실을 살펴보면 이러한 자명적 진리가 무시되고 오히려 그 반대로 나가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미국 같은 선진강대국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의 나라들 가운데 그리스나 이탈리아 그리고 스페인 같은 나라들이 재정위기에 처해서 나라가 거의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이런 나라들의 재정위기는 과도한 사회복지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은 사회적 약자들, 즉 밑바닥 사람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사회적 기초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아서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독일이나 북유럽 나라들은 남유럽 사람들보다 더 좋은 복지 혜택을 받고 있지만 그 나라들에서는 재정위기를 겪고 있지 않다. 따라서 나라의 기초가 되는 서민들의 삶을 보살피는 공동체적 사회에서는 재정위기가 없고 오히려 1%의 부유한 탐욕적 인간들이 살고 있는 미국이나 남유럽 국가들에서 위기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사회의 기초 즉 밑바탕을 이루고 사는 서민들은 점점 더 빈곤하고 허약해져서 언제 우리 사회가 붕괴될지 알 수 없는 우려를 자아낸다. 한국에서 이러한 추세가 가속회되기 시작한 것은 1986년 12월 26일 성탄절 다음날 김영삼 정부시절 신학국당에 의해서 국회에서 강제로 처리된 비정규직 법안과 노동자 파견법안의 통과로부터 시작된다. 거의 절반에 가까운 노동자들의 임금, 약 50%정도를 삭감해서 얻은 이익은 고스란히 부유한 기업가들의 손에 들어갔다. 수익이 줄어든 노동자들의 가계를 돕는답시고 김대중정부는 길거리에서 신용카드를 나누어주어 그들을 은행의 빚쟁이, 신용불량자들로 만들어버렸다. 노무현 정부 들어와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고용기간을 2년으로 늘렸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이들 정부들은 한국사회의 기초가 되는 서민들을 점점 약자로 만들고 부자들에게 더욱더 부자가 되게 만드는 토대를 놓아주었다.

그 결과 1980년대 중반부터 금융자본주의가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사회적 약자들인 서민들이 걸머진 가계부채만 해도 거의 1천조에 달한다. 그들은 부유한 금융 자본가들에게 매년 70조원 이상을 이자로 바치고 있다. 70조라는 이자는 아파트 10억짜리를 7만 채 살 수 있는 돈이고 5억짜리 아파트로 계산하면 14만 채를 살 수 있는 액수다. 이것은 서민들이 정상적인 금융회사들에게 진 빚에서 나온 계산이다. 그 밖에서도 제2금융권이나 사채 시장에서 진 빚은 통계가 나오지 않아서 알 수 없지만 더 힘없는 서민들은 여기서도 거의 비슷한 액수의 부채에 시달리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회적 약자들인 대다수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중소기업 운영자들, 소상공인들, 심지어는 대학생들까지 빚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은 대한민국에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추세는 문민정부 시절부터 본격화되어서 부자와 법인세 감세를 단행한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 그 절정에 달했다.

현재 한국사회는 사회적으로 가장 약한 서민들 위에 거대기업들이 올라타고 앉아서 이자소득으로는 부족했든지 가난한 자들이 살아가고 있는 뒷골목까지 쳐들어 와서 대형마트를 통해서 서민들의 구멍가게들을 집어사키고, 부잣집 딸들을 통해서 가난한 사람들이 운영하던 빵집과 순댓국집까지 몰아내고 있다.

요즘에 와서는 돈 많은 부자들만 가난한 자들을 등치는 것이 아니다. 조금만 여유 있는 보통사람들까지도 가난한 자들을 등치는 것을 배워서 자기들보다 더 가난한 사회적 약자들을 등치는 일에 동참하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서울 신촌에 있는 대학가 주변의 하숙집을 운영하는 비교적 가난한자들도 자기들의 하숙방세를 지난 2-3년 동안 두 배로 올렸다. 3년 전에 25만원 하던 하숙방이 지금은 45만원으로 폭등했다. 견디다 못한 연세대, 서강대, 홍익대 학생들이 “주거네트워크”를 구성해서 앞으로의 대책을 마련하려고 하고 있다. 70-80년대 유럽 특히 독일에서도 무주택자들 특히 청년들이 비어있는 부자들의 주택을 점령해서 살고 있어서 사회적 문제가 된 적이 있다. 독일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여 젊은이들의 주거문제를 해결한바 있다.

한 사회나 국가의 기초가 되는 서민들을 체계적으로 수탈하는 것을 용인하고 부추기는 법과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현재의 한국의 경제수준에서는 서민들과 중소기업 및 상공인들의 기초생활을 보장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의 마련, 월세나 전세의 물가연동제, 기본재산형성법을 통한 내 집 마련정책의 수립, 초등학교로부터 대학교육의 무상화, 건강보험체제의 개선과 의료체제의 합리화를 통한 무상 의료체제를 수립해 나갈 단계에 와 있다. 그렇지 않고 지금과 같은 서민들과 중산층을 쥐어짜는 계층적 수탈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다가는 서민은 물론 부자들까지도 나락으로 떨어질 때가 올 것이 뻔하다. 주전 8세기 북이스라엘 예언자 아모스가 말한 것처럼 가난한 자의 머리에 티끌을 탐내며 뇌물을 받고 궁핍한 자의 재판을 왜곡되게 하는 부유한 자들에게 저주를 내릴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리고 멸망한 이스라엘과 유다는 2500년 동안 나라 없는 백성으로 천대를 받으며 세계를 떠도는 민족이 되었다(암 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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