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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美 대통령 선거 판세가 한국교회에 던지는 함의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흥미로운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재선을 노리는 오바마 대통령과 롬니의 행보 때문이다.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선 오바마는 지난 9일 동성 결혼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한편 공화당의 미트 롬니는 수차례에 걸친 경선을 통해 당당히 대통령 후보자리를 거머쥐었다. 부시 전 대통령은 롬니 후보를 지지한다고 공식 선언했다. 부시家는 2대에 걸쳐 대통령을 배출한 정치 명문가다. 따라서 부시의 지지선언은 롬니 후보의 입지를 탄탄하게 해준 셈이다.

오바마의 동성애 지지, 롬니의 공화당 대통령 후보 부상, 그리고 부시의 롬니 지지선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동성애는 낙태와 더불어 미국 정치에서 금기시 되는 의제였다. 미국의 정치지도는 90년대 이후 보수와 진보가 팽팽히 맞서는 양상이 두드러졌다. 양 진영은 사회적 쟁점, 특히 동성애와 낙태를 놓고 한 치의 양보 없는 대립각을 세워왔다. 이러다 보니 정치인들의 행보는 신중해질 수밖엔 없었다. 민감한 이슈에 대해 드러내놓고 지지를 선언하면 즉각 반대 진영의 결집을 가져와 정치적 입지가 좁아지기 때문이었다. 이런 점을 감안해 볼 때, 오바마의 동성 결혼 지지는 무척 파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롬니의 경우는 더더욱 파격적이다. 미국 사회를 움직이는 지배 엘리트 계층은 이른바 앵글로 색슨계 백인-개신교도(WASP) 그룹이었다. 특히 공화당의 경우는 개신교, 그 가운데서도 가장 보수적인 근본주의 기독교를 지지기반으로 해왔다. 근본주의 기독교가 많이 분포돼 있는 이른바 바이블 벨트(Bible Belt), 즉 텍사스에서 시작해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알라바마, 플로리다, 조지아주 등은 공화당의 오랜 텃밭이었다.

하지만 롬니는 개신교에서 이단으로 치부되는 몰몬교도다. 몰몬교도가 전통적으로 보수적이고, 근본주의 기독교 색채가 강한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선 일은 이례적이기 그지없다. 그런데 부시는 롬니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부시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다. 그의 당선과 재선은 앞서 적은 바이블 벨트 지역 유권자들의 지지에 힘입은 바 크다. 이런 기독교 근본주의자가 이교도인 롬니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한국 교회, 반미로 돌아서나?

이제 한국 교회를 언급할 차례다. 한국 교회는 친미적인 성향이 아주 강하다. 베를린 장벽 붕괴 이전 한국 교회는 미국의 냉전전략, 즉 공산주의의 팽창 저지 전략을 앞장서 설파해 왔다. 냉전 이후엔 미국 주도의 패권주의에 첨병 역할을 자처했다.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는 아예 드러내놓고 "미국에 반감을 가지는 이들은 사탄과 다름없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하지만 한국 교회가 신봉하는 미국은 실체적인 모습이 아니라 관념으로 포장된 미국이었다. 즉 종교박해를 피해 메이 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으로 떠난 청교도가 세웠고, 대통령 취임식 때 성서에 손에 얹고 선서를 하며, 최강의 군사력으로 세계 도처에 널린 사악한 악당들을 소탕하는 정의의 사도로서의 이미지가 미국과 동일시 됐다는 말이다. 슈퍼히어로 만화 속 주인공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한국 교회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대통령은 바로 부시다. 사실 부시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한 침략자다. 그러나 한국 교회 목회자들은 공공연히 그에 대해 존경심을 표하는 한편, 그를 모시고(?) 구국 기도회까지 열었다. 부시는 한국 교회에 각인된 미국의 이미지와 잘 맞아 떨어지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바마의 동성애 지지와 이교도인 롬니의 대통령 후보 부상은 현실의 미국을 잘 보여준다. 물론 미국 사회엔 청교도 정신은 여전히 면면히 흐르고 있으며, 보수적인 정서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이런 탓에 동성애는 주류 사회의 변두리에서 머무를 수밖엔 없었다. 몰몬교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동성애로 상징되는 성 소수자의 권익은 꾸준히 신장했다. 이러자 사회는 동성애 자체에 대해서는 금기시하면서도 권익보호의 차원에서 성 소수자의 존재를 용인하기 시작했다. 몰몬교 역시 WASP로 상징되는 기득권층을 비집고 들어가 대통령 후보를 배출하기에 이르렀다.
 
한국 교회는 그간 보수-반공-친미 일변도의 노선을 견지해왔다. 무엇보다 이념 편향성은 교회를 시대의 흐름에 뒤쳐지게 만든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한국교회의 신념체계를 뒤흔들만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 교회는 이 같은 흐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시청광장에 대규모 집회를 열어서 동성애를 지지하는 오바마를 규탄할 것인가? 몰몬교도인 롬니를 사탄이라고 매도할 것인가? 만약 롬니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한국을 방문하면 사탄 대통령의 입국을 거부할 것인가?

한국 교회는 이 같은 문제의식에 타당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만약 적절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구태의연한 이념편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한국 교회는 시대에 또 한 번 뒤쳐질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되면 그토록 동경해 마지않는 미국에게마저 외면당하는 수모를 겪을지도 모른다.


글쓴이/ 시사매거진 기자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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