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참사를 말해주듯 6명이 화재로 숨진 서울 용산의 N빌딩은 이날 흐릿한 날씨처럼 을씨년스러웠다. 22일 오전 11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정의평화위원회 등 15개 기독교단체들이 추모기도회를 드리고 있는 가운데 뒤로 보이는 이 빌딩은 앙상한 뼈대만 남아 있었다. 건물 꼭대기층은 불에 그을린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고, 깨진 창문 사이로 튀어 나온 유리 파편들이 위태로워 보였다. 건물 안은 이틀 전 발생한 사건의 급박함을 보여주듯 건물 파편과 잔해들이 여기저기 널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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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기도회에 참석한 50여 명의 기독교인들은 이번 참사를 막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강제 진압한 경찰들을 향한 분노로 표출하며 참담한 심정을 드러냈다. 통일시대평화누리 박득훈 목사는 “왜 그들의 죽음을 막아내지 못했을까라는 마음에 기독교인으로서 한 없는 죄책감을 가지고 서 있다”며 울분을 토했다. 그는 곧 눈시울이 불거져 잠시 잠깐 말을 잇지 못하다가 “그들의 죽음은 이 세상이 얼마나 불공평한 세상인지 알려준다”고 토로했다.
NCCK 정의평화위원회 정상복 위원장은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면서 이번 사태의 책임을 이명박 정부 등에 추궁했다. 아모스서 8장 4~6절을 본문으로 ‘망하게 하는 사람’이라는 설교를 전한 그는 “하늘나라로 가신 영혼을 추모한다”면서 유가족들에게 애도의 마음을 전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와 경찰청 등에는 “아모스 선지자의 외침을 듣고 회개해야 한다”며 이번 사태의 책임을 요구했다.
이번 참사로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숨지고, 24명이 부상했다. 참사는 20일 새벽 6시경 경찰이 철거민들을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철거민들이 쌓아 놓은 20L 시너통 수십 개에 불이 붙어 삽시간에 휩싸인 화염에 경찰특공대 김남훈 경장과 철거민 이성수, 이상림, 양회성씨 등 5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화재가 발생한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아 기독교계와 철거민, 여당은 정확한 화재 발생 원인을 규명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검찰 수사 결과는 철거민들이 실수로 던진 화염병에 의해 발생한 것이지만, 철거민측에서는 경찰의 강제 진압이 원인을 제공했다고 맞서고 있다.
이날 추모기도회에 참석한 참가자 일동은 성명서를 내고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와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의 사법적 책임, 정확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들꽃향린교회 김경호 목사는 “이번 사태의 진상은 반드시 규명해서 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은 이번 참사에 대해 21일 오전 수석회의에서 “인명 희생이 빚어진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일”이라며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말했다고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