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식 박사 |
예수님이 하신 말씀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종종 헷갈릴 때가 있다. 어떤 경우에는 아주 대범하신 면을 보이다가 다른 경우는 철두철미하게 선을 그어버리신다. 이 달에 선택한 본문도 그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스스로를 일컬어 빛이라 하며, 빛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결코 구원받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요한 8,12 이하). 예수님 안 믿으면 국물도 없다는 것이다. 찬 기운이 설설 감도는 말씀이다. 그런데 마르 9,38-41에서는 우리를 반대하지 않으면 다 우리 편이라고 한다. 구태여 예수님을 안 따라도 좋으니 그저 딴죽만 걸지 않으면 된다는 식이다. 상황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겠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원래 이기적인 사람들이었다. 마르코복음의 논지에 따르면 제자들은 예수의 부르심을 받아 길을 나선 사람들이었으나 속셈은 딴 데 있었다고 한다. ‘예수의 제자입네’ 하고 자신들의 기적 능력을 사람들 앞에서 뽐내려는 과시욕과(8,28-29) 제자들 사이에 우열을 가리기 바빴다(9,33-37).
특히,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앞두고 벌였던 ‘자리 청탁’ 사건이 유명하다(10,35-40). 9,38-41은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자를 못하게 막아 자신들의 정통성을 지키려 했던 제자들의 집단 이기주의가 드러난다. 그런 제자들에 대해 예수님이 따끔한 충고를 하신 것이다.
사실 그런 대범함에 예수님의 참모습이 들어 있다. 내 이름으로 기적을 행한 사람이 나를 욕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하신 말씀(39절)에서 그런 암시를 찾을 수 있다. 적어도 필자의 귀에는, 예수님을 따라 나서지는 않았으나 사상적으로 예수님에 동조하는 이들을 두고 하신 말씀으로 들린다. 그리스도인은 아니지만 예수님으로부터 큰 감명을 받아 우리들의 주님을 좋아하게 되었다면 어찌 그리스도인의 적이 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마하트마 간디도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우리가 힌두인이라면 그리스도인이 힌두인이 되도록, 또한 우리가 무슬림이라면 힌두인이나 그리스도인이 무슬림이 되도록 기도할 수 없으며, 또한 어떤 이가 개종하도록 남몰래 기도해서도 안 된다. 힌두인은 더 나은 힌두인이 되도록, 무슬림은 더 나은 무슬림이 되도록, 그리스도인은 더 나은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우리의 가장 깊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해야 한다. 그것이 우정의 기초가 되는 진리이다.”(로버트 엘스버그 <간디, 그리스도교를 말하다>, 생활성서사 2005, 150쪽) 간디는 비록 그리스도인은 아니었지만 우리와 소중한 우정을 나누어 가졌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하여 너희에게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의 상을 받을 것이다."(41절) 우리는 간디에게서 물 한잔 정식으로 얻어먹었다.
글/박태식 박사(서강대, 가톨릭대, 성공회대 신학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