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후 7시 서대문 한백교회 안병무홀에서 <한국사회 보수주의 형성과 그리스도교> 여섯번째 순서가 열렸다. 포럼은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주최하고 우리신학연구소와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가 주관하고 있다. ⓒ베리타스 |
30일 오후 7시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가 주최하고 우리신학연구소와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가 공동 주관하는 <한국사회 보수주의 형성과 그리스도교> 포럼 여섯번째 순서가 열렸다.
한백교회 안병무홀에서 열린 이번 포럼에서는 민주화 후 한국 시민운동 형성기에 복음주의 운동이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가를 분석했다. 특히 이날 강사로 나선 김민아씨(서울대 대학원 종교학과, 한기연 간사)는 복음주의 진영이 교회와 사회를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사회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기존 입장을 철회, 사회 문제에 눈을 돌리게 된 이유에 대해 "1940년대 미국에서 등장한 신복음주의의 영향을 받아 성장했으며 영미로부터 수입된 다양한 신학적 사상이 이들 운동의 토대를 제공해 주는 담론으로서 강력하게 사회참여적 복음주의 운동을 지지했다"고 분석했다.
또 민주화 이후 한국의 사회참여적 복음주의 운동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친 주요한 요소로는 로전언약의 국내 소개 및 영국의 복음주의자 존 스토트의 저서 소개와 함께 로널드 사이더로 대표되는 미국의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에게서 받은 영향을 꼽았다.
복음주의 내에서도 사회 참여 움직임의 강도와 성격에 따라 ‘온건한 사회참여적 복음주의 운동’과 ‘급진적인 사회참여적 복음주의 운동’ 등 크게 두 갈래를 이루어 서로 공존해 왔음을 확인했다. 그에 따르면, 전자는 지식인들과 대형교회의 목회자들, 대학 캠퍼스 선교단체들이 주된 구성원으로 미국의 ‘신복음주의’의 한 분파인 ‘보수적 복음주의’와 같은 맥락 위에 위치해 있고, 후자는 ‘기문연’과 <대학기독신문>에서 활동하던 대학생들과 그들의 사역자들 ‘신복음주의’의 ‘진보적 복음주의’의 흐름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김씨는 "이 두 그룹은 복음주의자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활동 영역과 방식을 두고 빈번하게 대립했으며, 이 대립은 ‘아이덴티이 논쟁’으로 비화된다"면서 "결국 ‘급진적인’ 복음주의자들은 마르크스주의와 민중신학 등 민중운동 진영의 담론으로 눈을 돌리게 되면서 복음주의 운동을 떠나게 되고, 남겨진 ‘온건한 사회참여적 복음주의 운동’은 민주화 이후 형성된 시민사회에서 자신의 복음주의적 신앙관에 입각한 시민운동을 제시하기에 이른다"고 말했다.
앞서 민주화 이후 민중운동 진영과 에큐메니칼 진영의 쇠퇴에 관한 진단도 있었다. 김씨는 "민중운동 진영은 새로운 사회운동의 토대가 될 철학적 담론을 발굴해내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포기하고 말았다"고 했으며, "해외원조의 중단도 민중진영의 무능력함에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