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박태식] 사랑의 계명

역사적 예수(35)

 마르 12,31: 이 두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습니다.
 
 

▲박태식 박사 ⓒ베리타스 DB

예수님은 삼년간의 공생애 기간 동안 참으로 많은 말씀을 하셨을 것이다. 물론 네 복음서에 그 모든 말씀이 실려 있지는 않은데, 만일 모두 기록했다면 지금 복음서 분량의 수십 배에 달하는 책이 등장했을 법하다(요한 21,25 참조). 따라서 복음서를 유일한 통로 삼아 예수님의 사상을 공부하는 연구자들에게는 언제나 행간을 읽어내야 하는 어려움이 뒤따른다. 복음서 작가 마르코 역시 예수님을 실제로 따라다닌 이가 아니었기에 후대 학자들과 비슷한 고민을 하였을 것이다
   
마르코는 그리스도교 역사상 처음(기원후 70년경)으로 예수님의 일생을 집필하여 ‘복음서’라는 고유한 전기양식을 개발해낸 인물이다. 마르코는 복음서를 집필하기에 앞서 구두로 전해 내려오던 예수 전승들을 집필 자료로 수집한 후 복음서를 써내려갔는데, 그 과정에서 예수가 어느 율사와 나눈 대화를 12,28-34(사랑의 이중계명)에 배치했다.
   
율사 한사람이 예수님에게 찾아와 모든 율법 계명들 중에 어느 것이 첫째인지 물어보았다. 이런 식의 질문은 당시 종교지식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것으로 계명 중의 계명, 다른 계명들을 자동적으로 포함할 수 있는 광범위한 계명이 무엇인지 알아보려는 시도였다. 그에 대한 답을 척척 해낼 수 있는 인물이라면 분명 자타가 공인하는 출중한 학식을 갖춘 종교지식인들이었을 것이다. 예수님에게 주어졌던 것과 똑 같은 질문이 당대의 율사인 힐렐과 샴마이에게도 주어진 바 있다.
  
예수님이 제시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각각 신명 6,5와 레위 19,18에 나오는 널리 알려진 계명들이다. 예수님 가르침의 독특성은 바로 널리 알려진 두 계명을 하나의 논리 안으로 집어넣은 데 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별개의 계명이 아니라 하나이며, 이로써 신중심주의와 인간중심주의의 절묘한 배합을 시도한 것이다. 여기저기 스승들을 찾아다니며 지혜를 구했던 율사는 예수님의 분명한 답을 듣고 아마 무릎을 쳤을 것이다.   
  
그 율사와 마찬가지로 마르코 역시 ‘사랑의 이중 계명’에서 예수가 베푼 가르침의 정수精髓를 발견했음에 틀림없다. 그래서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해 죽음을 목전에 두고 비밀에 묻혀있던 자신의 메시아성性을 환히 드러내는 과정을 그리면서(11-13장) 그 중심에 이 사화를 배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랑의 이중계명’이 유대교에서 막 독립하는 과정에 있었던 그리스도 교회의 좌우명이 되어야 한다는 사상까지 담아냈다. 번제물과 제물로 하느님께 드리던 예배를 ‘사랑’이라는 가치로 대체함으로써 복음의 세계화를 꾀한 셈이다(33절). 이를 두고 형식주의에서 실용주의로의 변환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스도교를 흔히 ‘사랑의 종교’라 부른다. 예수님의 가르침들 중에 ‘사랑의 계명을 으뜸으로 꼽은 마르코에게 공로를 돌려야 할 대목이다. 복음서를 쓰기에 앞서 오랫동안 심사숙고했을 마르코의 모습을 머리 속에 그려본다. 
 

글/박태식 박사(서강대, 가톨릭대, 성공회대 신학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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