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규태 성공회대 명예교수(본지 편집고문) ⓒ베리타스 DB |
또한 삼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와 특히 그 수장들도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눈치나 보거나 불법을 권력자들과 금권자들을 지원하는 하수인으로 전락했다. 따라서 사법부는 유권무죄(有權無罪), 유전무죄(有錢無罪)의 세상을 만들었다. 따라서 사법부는 법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민주주의의 원리를 망각하고 권력자들과 금력자들의 하수인을 자처하는 헌법기관 중 가장 타락한 집단으로 전락했다.
이러한 헌법질서를 파괴하고 국민을 도탄으로 몰아넣는 집단들로 변질된 입법, 행정, 사법부의 왜곡의 근원은 결국 막강한 권력을 독점한 우리나라의 “제왕적 대통령제도”에 그 뿌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모순은 이러한 제왕적 대통령제도가 낳은 폐해에서 시작된다.
오늘날 다시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등장한 안철수 현상은 이러한 낡고 왜곡된 대통령제도 하에서 새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모순된 현실을 반영한다. 즉 이러한 현존하는 모순된 대통령제도에서 대통령을 뽑는 것에서는 아무런 새로운 희망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헌법질서 즉 철저한 제도변혁이 이루어지고 거기에 따라서 새 지도자가 선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새로운 대통령은 새로운 제도 하에서 선출되어야 한다는 것이 안철수 현상의 본질이다.
따라서 안철수 현상은 지금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쇄신논의는 인적 쇄신을 넘어서 제도적 변혁을 지향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기존의 제도적 틀 안에서 인적 쇄신을 말하는 것은 정치에서 인격적 요소(personal ethos)에 의존하는 발상으로서 같은 제도 안에서 바보 노무현이 영리한 이명박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즉 착한 아버지의 아들 안철수가 독재자 박정희의 딸 박근혜보다 낫다고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성서가 증언하는 것은 인간은 모두 타락한 죄인이므로 잘못을 범할 수 있기 때문에 제도라는 족쇄를 통해 인간의 죄성을 억제해야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정치에서는 인격적 요소보다는 사실적 요소(real ethos) 즉 제도적 요소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안철수 현상에서 정치권이 토론하고 있는 쇄신논의는 주로 인적 쇄신에 더 무게를 두는 둣한데 이것은 앞으로 정치발전을 위해서는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안철수 진영에서도 정치쇄신을 말하고 있지만 새 술을 넣기 위해서 새 부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정치쇄신을 보다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이전부터 논란이 되어온 새로운 정치제도로서 “내각책임제” 같은 것을 상정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대통령제도는 이미 낡은 부대로서 더 이상 새 술을 담을 수 없는 제도라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안철수 현상이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논의를 대통령제도라고 하는 폐기되어야 할 제도의 틀 안에서 정치쇄신을 논할 것이 아니라 내각제와 같은 새로운 정치제도의 도입과 함께 또 대통령 선거에서 등장한 하나의 절제절명의 과제인 경제민주화의 논의를 자유시장경제라는 현존하는 약육강식의 경제논리를 떨쳐버리고 오늘날 유럽의 복지국가들이 실행하고 있는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나 스웨덴의 “민주적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데까지 밀고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정치제도 및 경제제도의 변혁이라는 원대한 목표가 없이 안철수 현상이 단지 인격적 요소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면 성공을 거두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