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식 박사 |
전직 대통령 한 분은 ‘마음을 비웠다’라는 말을 종종 했다. 하도 그 말을 자주 하니까 기자들이 ‘어떻게 증명할 수 있냐?’고 묻자, 그 분은 ‘아이고, 마음을 열어 보일 수도 없고...’로 답했다. 사실 증명 방법이 딱 한 가지 있기는 있었는데, 대통령 후보 등록을 하지 않는 길이었다. 하지만 그 분은 기어이 등록을 했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 분 다음에는 ‘절대로 다시는 대통령 선거에 나오지 않겠다.’고 공언했던 분이 “나는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라는 명언을 남기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오늘의 성서 본문을 보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말씀이 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습니다.”(마가 10,25) 어느 부자가 찾아와 자신이 율법을 깡그리 지키고 있다고 하자, 예수님은 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를 도우라는 요구를 했고, 슬퍼 근심하며 떠나는 부자 청년의 뒤 꼭지에 대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에게 말 한번 잘 못 붙였다가 호되게 당한 꼴이었다. 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이 이야기를 물욕을 버리라는 뜻으로 해석해 왔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예수님의 진짜 의도가 더 깊이 숨어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이가 예수님의 뒤를 따르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아비가 죽었기에 장례부터 치르고 오겠다고 했다. 그에 대해 예수님은 “죽은 자들이 자기네 죽은 자들의 장례를 지내도록 내버려두시오.”(누가 9,60)라고 했다. 비슷한 시기에 어떤 이는 집에 가서 가족과 인사를 나눈 후 따르겠다고 했다. 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 역시 간결하다. "누구든지 쟁기에 손을 얹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습니다."(누가 9,62) 예루살렘 입성을 코앞에 두고 야고보와 요한이 은밀히 찾아와 거사 후의 자리 부탁을 하자 예수님은 그들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내가 받는 잔을 마실 수 있습니까?" 여기서 '잔을 마신다'는 '목숨을 내놓는다'는 말의 우회적인 표현이니까(마가 14,36), 결국 예수님이 제자들의 목숨을 요구한 셈이다.
거론한 본문들을 읽어보면 천편일률적으로 예수님이 무엇인가의 포기를 요구하고 있다. 어떤 이에게는 재산의 포기를, 어떤 이에게는 자식 도리의 포기를, 어떤 이에게는 가족 관계의 포기를, 어떤 이에게는 목숨의 포기를 요구한다. 사람에 따라 포기해야 하는 대상에 차이가 나는 것이다.
예수님은 추종자들에게 ‘마음을 비워라’고 한다. 구체적으로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기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합니다.”(마가 9,34)는 말씀이다. 그러나 ‘마음을 비워라’나 ‘십자가를 지라’ 등의 애매한 표현으로는 감이 잘 오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보다 정확히 다짐해두기 위해, 마음 둔 곳에 자신이 있으니 마음 둔 곳을 떠나고 한다. 이를테면, 죽으나 사나 건강만 신경 쓰는 사십 대 아빠에게는 ‘건강을 포기하라’는 것일 테고, ‘자식 좋은 학교 보내기’에 노심초사하는 삼십대 엄마에게는 ‘자식 교육 포기하라’고 말하는 것이며, 레고에만 정신이 팔린 11살 남자아이에게는 '레고 쪼가리들 다 갖다 버려라'는 식이다. 아마 고문도 그런 고문이 없을 것이다.
예수님은 추종자들의 됨됨이를 잘 관찰해서, 그 사람이 가장 마음을 두고 있는 대상을 효과적으로 알려주었다. 부자는 돈에, 효자는 부모에, 가장은 가족에, 정치인은 자리에, 소인배는 떡고물에 관심이 있다. 자신을 버리고 오직 하느님 일만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과연 예수님이 무엇을 포기하라고 말씀할까? 예수 공부에 온통 맘이 뺏겨 있으니, 혹시 ‘예수 공부’를 포기하라지는 않을까? 그러면 나는 당연히 항변할 것이다. '예수 공부 20년 만에 겨우 재미를 붙였는데, 이제 겨우 책장이나 넘기게 되었는데 공부를 포기하라니요? 절대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망연히 발길을 돌리는 내 뒤 꼭지에 대고 예수님은 꾸짖을 것이다. “성서학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습니다.”
일본 진종 불교의 거장인 기요자와 만시의 말을 들어보자. “신심을 얻고자 하면 종교 그 자체말고는 다른 무엇에도 의존해서는 안 된다. 재물, 친구, 부모, 형제, 자매, 경력, 능력, 교육, 지식, 국가 따위를 문제삼아서는 안 된다. 이것들에 대한 관심에서 완전히 벗어나기까지는 신심을 얻으리라고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겨울부채』, 하네다 노부오 엮음, 이현주 옮김, 생활성서사 2002, 32쪽)
글/박태식 박사(서강대, 가톨릭대, 성공회대 신학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