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스틴 웰비 주교 ⓒ성공회 교무원 |
저스틴 웰비 주교는 복음주의 성향의 인물로 성서에 대한 전통적, 보수적 해석을 선호하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아프리카 및 중동 지역에서 화해중재사역에 헌신한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으며, 금융자본과 투자회사에 대한 기업윤리확립을 위해서도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나치 치하의 유대인 학살을 피해 영국으로 이주한 독일계 유대인 아버지와 성직자 가문의 어머니에게서 1956년에 태어난 저스틴 웰비 주교는 영국 명문 이튼 스쿨에서 공부하고 캠브리지대학교에서 법학과 역사학을 전공했다. 20대 중반부터 석유회사와 유전탐사회사에서 재무담당11년 동안 런던과 파리에서 근무하면서 서아프리카 및 북해 유전사업에 관여했다. 이 기간에 그는 고액연봉을 받는 중역으로 승진했으며, 런던 성 삼위일체 교회에서 평신도지도자로, 파리 성 미카엘 교회에서는 교회위원으로 활동했다.
캠브리지대학교에서 만난 캐롤린과 결혼해 현재 두 아들과 세 딸을 둔 웰비 주교는 1983년에 프랑스에서 생후 7개월 막내딸을 교통사고로 잃고 6년 후에 성소에 응답하여 더럼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이 때 그는 석유회사에서 재무를 담당하던 경험을 바탕으로 기독교 사회윤리학에 집중하면서 기업윤리와 고도금융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세웠다. 만 36~37세에 부제와 사제서품을 받은 후에는 코벤트리교구의 여러 교회에서 10년 동안 사목생활에 헌신했다. 특히 장례위원회와 세례위원회를 활성화해 교회성장에 기여했다.
이 후 코벤트리주교좌성당에 부임해 평화화해연구와 사역으로 유명한 코벤트리의 지원을 기반으로 5년 동안 평화화해사역의 기초를 놓았다. 특별히 서아프리카 유전사업에 관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케냐, 콩고민주주의공화국, 나이지리아의 갈등중재와 화해를 위해 노력했다. 나이지리아 유전개발지역 니제르 델타에서는 무장세력과 교섭하기도 했다. 이 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중재를 위해 노력하면서, 미군의 이라크침공이 끝나자마자 바그다드 성공회교회를 재건했다.
웰비 주교는 2007년 12월에 영국에서 가장 큰 리버풀주교좌성당 주임사제로 부임, 망명신청자를 위한 선교를 펼치고 이웃 교회들과 연대하면서 지역사회와 긴밀히 협조하는 사목활동을 펼쳐나갔다. 그는 주교좌성당에서 영국 최대의 노동조합총연합회의 집회를 열도록 초청하기도 하고, 왕실예배를 봉헌하기도 하면서 교회의 활력을 유지했다. 아울러 국제화해중재사역도 지속했으며, 그의 재임기간 동안에 리버풀주교좌성당은 상당한 성장을 이뤘다.
그는 2011년에 더럼으로 돌아와 저명한 신약성서학자이기도 했던 톰 라이트 주교의 뒤를 이어 6월에 더럼교구 주교로 선출되었으며, 같은 해 11월에 교구장으로 승좌했다. 내년 3월 21일에 캔터베리주교좌에 승좌함에 따라 1년 4개월 만에 더럼교구장직에서 물러나 캔터베리대주교가 된다.
그는 화해중재전문가로서 미국 국무부에서 화해에 대한 강연을 하기도 했으며, 영국 국민건강보험 병원협회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국제금융자본에 대한 윤리적 비판을 인정받아 영국의회 산하 금융윤리위원회와 거대투자회사의 자금에 대한 윤리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편, 세계적 신학자로 명성이 높은 현직 캔터베리대주교 로완 윌리암스는 퇴임 이후에도 케임브리지대학교 모들린컬리지 학장으로 신학교수직을 수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