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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천 칼럼] 힘과 사랑

이재천·기장신학연구소 소장

▲이재천 기장신학연구소 소장 ⓒ베리타스 DB
존재하는 것에는 무게가 있다. 무게를 지닌 물체 사이에는 서로 끌어당기는 중력이 작용한다. ‘중력의 크기는 두 물체의 질량의 곱에 비례한다.’는 중력의 법칙을 이론적으로 이해하면, 무게를 지닌 두 물체가 서로 끌어당기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이론은 실제 현상에 비추어 해석되어야 한다. 자연계에서 두 물체 사이에 중력이 발생할 때, 무거운 물체가 자기보다 가벼운 물체를 끌어당기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더 큰 물체가 힘을 행사해서 그보다 작은 상대를 끌어당기는 것이다. 자연계의 중력 현상은 인간 사회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사회적으로 무게는 숫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더 많은 수는 더 큰 무게와 비례하는 힘을 형성한다. 더 많은 수를 확보한 집단이 더 큰 힘을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소위 민주주의의 근본 원리이기도 하다. 힘을 획득한 집단은 주변 세력을 자기 방향으로 끌어당기려는 속성을 갖기 마련이다.

21세기에 접어들어 사회적으로 기독교계에 대한 상반된 평가가 동시에 내려지고 있다. 종교계의 ‘도덕성’에 관한 평가에서 기독교는 가장 낮은 점수를 얻은 반면에, ‘사회적 영향력’의 부분에서는 가장 높은 점수를 얻고 있다. 한국 사회가 기독교를 바라다보는 시각은 한국 교회가 이루어 놓은 결과이다. 뒤 늦게 이 땅에 발을 디딘 종교였건만,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는 말처럼, 어느새 기독교는 이 땅의 역사에 뿌리내리고 사회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이 되었다.

그런데 기독교가 행사하게 된 ‘사회적 영향력’의 실체는 무엇인가? 이제 세상 사람들의 눈에 비친 한국 기독교는 더 이상 소수의 종교, 연약한 십자가의 종교가 아니다. 사회적 불의에 맞서서 복음의 의를 실천하려는 도덕성을 지닌 집단도 아니다. 한국 교회의 삼분지 이 이상이 아직 자립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 있다고 강변한다 하더라도,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는 자신의 주장을 힘으로 관철시킬 수 있는 다수의 세력을 확보한 기득권 집단의 일부로 보일 뿐이다.

지난 세월동안 그토록 열정을 다해 추구해온 성장의 결과에 대한 사회적 평가서를 받아든 지금, 우리는 참담한 심정으로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 본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더 많은 숫자를 확보하려고 그토록 노력했는가? 확보한 더 많은 숫자로 인해서 생겨난 힘을 무엇을 위해 어떻게 행사해 왔는가? 아니, 우리가 복음의 이름으로 추구한 힘은 과연 어떤 것이었는가? 우리는 사회적 힘을 행사하기 위한 복음의 정신, 신학적 원리를 제대로 갖추고 있는가? 과연 우리는 누구인가?

일반적으로 인간 사회에서 작용하는 사회적 힘에 관한 상반된 견해가 있다. 먼저 힘은 인간 사회에 편만한 자연적인 현상으로써, 인간 사회를 이루는데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힘은 개인에게는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발휘하는 능력이며, 집단에게는 연대행동을 통해서 효과적인 결과를 얻어내는 물리력으로 파악된다. 이들은 적극적으로 힘의 제도적인 육성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아가 사회적으로 ‘변혁시키는 힘’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반면에 사회적으로 주도 세력이 힘을 행사하는 현상을 분석함으로써, 힘의 부정적 결과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사회적인 힘이란 본래 소수 지배자들이 대중의 삶을 조작하기 위해서 행사하는 도구일 뿐이라고 본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결정과 행동을 통제하는 지배력으로써 힘의 강제성에 주목한다. 이들은 힘을 사회적인 필요악으로 규정하고, 다수가 참여하는 사회질서에 의해서 제한되고 통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떠한 관점을 택하든지, 힘에 관한 사회학적 해석은 사회적 힘의 역학관계를 분석하는데 유용한 도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은 거기에 머물지 않고, 힘을 행사하는 주체인 인간 이해의 영역으로 나아갈 것을 요청한다.

라인홀드 니버는 사회적인 힘의 문제를 가지고 평생토록 씨름한 신학자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니버는 갈등과 긴장으로 점철된 인간 사회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힘의 문제에 접근한다. 그러나 니버의 분석의 진면목은 그의 신학적 안목에 기초한 인간 이해에서 드러난다. 니버는 인간의 자기실현 의지의 관점에서 힘의 실체를 파악하면서, 힘의 바탕에는 집단적인 삶에서 표출되는 인간의 죄성이 놓여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간의 죄를 자아중심적인 교만에서 비롯되는 의지의 타락으로 본다. 그리고 이러한 죄에 사로잡힌 존재인 인간이 형성하는 사회에서 지배하려는 힘의 행사는 필연적인 현상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니버에 의하면, 인간의 이기심에 물든 죄가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자리가 집단적인 권력의지로 표현되는 집단 이기주의이다. 인간 사회를 관찰해보면 개인의 영역에서 집단의 영역으로 넘어가면서 불의를 행하게 될 가능성이 현저하게 증대하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근거에서, 니버는 인간이 지닌 하나님의 형상에 자기와 공동체의 한계를 넘어서게 하는 자기 초월성이 새겨져 있지만, 인간 집단은 이와 같은 자기 초월성의 능력을 결정적으로 결여하고 있다고 한다. 더 나아가 니버는 인간 집단의 비극적 속성을 폭로한다. 사회적 집단은 종종 타인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려는 개인적인 의지를 집단적인 이기심을 위해 복무하도록 변질시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죄성에서 비롯하는 인간 집단의 비도덕성에 대한 분석에 기초해서, 니버는 정치의 불가피성을 논하면서도, 정치적인 영역은 죄의 영역이라고 갈파하는 것이다.

니버의 분석을 참고하자면, 사회적으로 우세한 힘을 갖춘 집단이 자기의 주장을 힘으로 관철시키려는 행태는 집단 이기주의의 대표적인 유형이다. 문제는 이기주의적 속성을 극복할 만큼의 자기 초월의 역량을 갖춘 인간 집단이 쉽지 않다는데 있다. 일반적으로 집단의 무게가 더해가면서 자기중심적인 속성 또한 더욱 강화되기 마련이다. 종교 집단도 예외는 아니다.

종교가 사회적인 세력화의 유혹에 빠지면, 힘의 근본인 숫자 논리를 추종하게 되고,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세속 정치의 유용성을 강조하게 된다. 만일 한국 교회의 사회적 행태가 그러하다면, 우리 스스로 자기 부정의 복음 정신이 아니라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 세력으로 전락해 버리고 만 것이다. ‘오호라, 이 세상을 누가 구원하겠는가?’ 한국 교회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사회적 영향력’은 어떤 것이겠는가?

신학자 폴 틸리히는 사회적인 힘의 존재론적 근거를 깊이 있게 분석해 주었다. 지난 세기, 막대한 힘을 지닌 서구 기독교 문명사회가 빚어놓은 비극적인 역사 경험을 토대로, 틸리히는 사랑과 동떨어진 힘이 복음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은 결단코 정당화될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힘에 대한 존재론적 분석에 기초해서, 틸리히는 원래 존재의 근거에서 힘은 사랑과 하나로 결합되어 있으며, 앞으로 다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틸리히에 의하면, 사회적으로 힘(power)은 물리적인 힘(force)이나 강제력(compulsion)을 통해서 실현되지만, 그렇다고 물리적인 힘이나 강제력인 것은 아니다. 힘의 속성은 집단을 이루고, 유지시키고, 결합시키는 사랑의 질적 능력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래서 틸리히는 사회적으로 존재의 힘은 집단의 정신에 좌우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복음이 증거하는 힘과 사랑의 존재론적 관계성에 기초해서, 틸리히는 세상적으로 다른 집단과의 관계에서 기독교의 우월성은 차별적인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만 입증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질적으로 다른 사랑을 실현하지 못하는 한, 기독교의 복음은 제대로 전파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적 영향력’을 지녔다고 평가 받는 한국 교회가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은 힘을 사랑하는 열심보다 사랑의 힘을 바르게 사용하는 지혜와 절제이다. 힘을 사랑하게 된 종교는 타락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실제 한국 교회의 대다수는 사회적인 힘을 행사할 만한 무게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렇다면 한국 교회의 ‘사회적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소수에 의해서 행해지는 힘이라 하겠다. 힘 있는 자가 있다면, ‘책임적 존재’가 되기 바란다. 말씀의 토대위에서 사랑의 힘, 생명을 살리는 힘을 회복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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