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원교회 김성 목사 ⓒ베리타스 DB |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백성들이 가나안땅에 정착한 후 혹시 왕을 세우자고 백성들이 요구하면 반드시 다음 네 가지 요건을 갖춘 자를 왕으로 세울 것을 명령하셨다. 첫째, 타국인이 아닌 동족이어야 할 것, 둘째,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 셋째, 아내를 많이 두지 말 것, 넷째,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
기원전 13세기, 모세시대에 왕을 선택하는 기준을 21세기, 대통령을 선출하는 오늘의 현실에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는 물론 없다. 하지만 하나님이 정하신 기준에 담긴 정신은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네 가지 기준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1.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야 한다.
타국인이 아닌 동족 중에서 왕을 세우라는 이유는 왕은 동족의 이익을 보호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부족, 혹은 종족은 확대된 가족이다. 가족이 아닌 사람이 가장이 될 수 없듯이, 타부족출신이 부족장이 될 수는 없다. 부족의 안전과 이익을 믿고 맡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 없다김영삼 전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한 말이다. 이념으로 맺어진 동맹의 이익보다는 혈연으로 맺어진 민족의 이익이 우선이라는 말이다. 비록 실천은 못했어도 말은 바로 했다. 강대국들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의 세계화시대에 최고지도자는 자국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 비록 오랜 동맹국이라 할지라도 불공정거래, 불평등협정을 통해 자국의 이익을 포기하거나 빼앗겨서는 곤란하다. 경제주권을 확실하게 수호할 수 있는 지도자를 대통령으로 뽑아야 한다.
2. 평화주의자를 대통령으로 뽑아야 한다.
하나님은 왕으로 세울 자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말 것이니>(신17:16)라고 말씀했다. 당시 말은 교통의 수단이자 전력(戰力)이다. 마병의 수는 곧 군사력을 의미했다. 그러므로 왕은 말을 많이 두려하지 말라는 뜻은 전쟁을 위해 전력을 증강하려들지 말라는 뜻이다. 왕이 호전적이면 백성은 늘 전시체제의 불안 속에 살아야 한다. 전력증강을 위해 백성들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국가안보를 위해 복지는 포기해야 한다. 국태민안(國泰民安),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하도록 왕은 나라를 이끌어가야지 국민불안(國民不安), 늘 전쟁의 위협 속에서 백성이 불안에 떨도록 나라를 이끌어서는 안 된다. 왕은 말을 많이 두려하지 말라는 말씀 속에 담긴 뜻이다.
우리는 이번 대선에서 한반도에 지속적인 전쟁의 불안이 아니라 항구적인 평화의 정착을 가져올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이것은 우리민족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우리는 아무리 북한이 미워도 함께 사는 공생의 길로 가야 한다. 북한 망하라고 저주하는 기독교인들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걸핏하면 전쟁불사를 외치며 북한과 극한대결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몰지각한 정치인들도 그 무책임한 입을 닫아야 한다. 그렇게 북한을 저주하고 국제사회에서 고립시켜서 대체 어쩌자는 건가? 전쟁이라도 하자는 말인가? 또다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같이 죽는 일만 남을 뿐이다. 북한은 이미 핵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미국은 이라크, 이란, 시리아, 리비아와 함께 북한을 유사시엔 핵무기로 선제공격할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음이 부시대통령 시절 백악관 1급 비밀문서를 통해 밝혀졌다. 1994년, 미국이 북한의 영변원자로 폭격직전까지 갔을 때, 미 국방성은 한반도에서 일어날 핵전쟁 가상 시뮬레이션을 통해 예상되는 피해를 산출해 백악관에 보고했다. 그 보고에 따르면, 전쟁개시 90일 만에 미군사상자 5만 2천명, 전쟁비용 1조 달러, 남한 측 민간인 사망자 100만 명, 한국군 사망자 49만 명 등.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남측 희생자만 석 달 동안 150만 명이다. 그런데 이나마 북한이 핵을 가지기 이전, 18년 전의 상황이다. 북한이 핵을 보유한 지금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남북 모두 석기시대로 돌아가게 된다.
한반도에 위기가 감돌 때마다 국제금융계 일각에선 어김없이 한반도의 전쟁은 세계경제에 십 수 년간 절대호황을 안겨줄 것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았다. 한국이 전쟁으로 잿더미가 되면 그 반사이익은 과연 누구에게 돌아갈까? 미국의 자동차회사들은 한국, 일본자동차들에게 시장을 빼앗겨 파산 직전이라며 아우성이고, 소니, 파나소닉 등 한 때 세계전자산업을 주름잡았던 일본 전자업체들은 이미 한국기업에 밀려 몰락의 길에 접어들었는데 이런 마당에 전쟁으로 한국이 또다시 잿더미로 변한다면, 이는 그동안 한국기업과 경쟁관계에 놓여있던 서방기업들에게는 더없는 낭보가 될 것이고 그 날부터 그들 기업의 주가는 폭등하면서 서방경제는 십 수 년간 더없는 호황을 구가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과거 일본은 한국전쟁 때 재미를 톡톡히 봤고 우리 또한 베트남전쟁 때 재미를 톡톡히 보지 않았던가? 북한이 하는 짓이 아무리 괘씸하더라도 결코 ‘전쟁 불사'를 외치며 남북관계를 극한대결로 몰고 가 한반도에 전쟁의 암운이 깃들게 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에겐 북한과 함께 상생하는 길을 찾는 대통령이 필요하다. 북한과 대결하고 남북관계를 긴장, 갈등, 파탄으로 몰고 가는 세력에게 나라를 맡겨서는 안 된다. 북한은 미워도 같이 살아야 한다. 함께 살려면 대화하고 화해하고 교류하고 협력해야 한다. 하나님은 솔로몬이 <자기 원수가 멸망하는 것을 구하지 않는> 마음을(왕상3:11) 크게 칭찬하셨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점을 깊이 새겨야 한다. 대통령후보들 가운데 누가 북한과의 화해협력을 통해 한민족 공생공존의 길로 나아가려 하는지를 잘 보아야 한다. 그래서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정착시킬 한반도 평화의 비전을 가진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야 한다.
3. 도덕적으로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야 한다.
왕은 도덕성을 갖추어야 한다. 왕은 <아내를 많이 두어서 그 마음이 미혹되게 말 것이며>(신17:17)라는 말의 뜻이다. 지도자가 도덕적으로 타락하면 백성들의 기강이 흐려진다. 도덕적으로 국민의 지탄을 받을 과거전력이 있는 사람은 나라의 최고지도자가 되어선 안 된다.
4. 청렴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야 한다.
왕은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아야>한다(신17:17)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富)도 구하지 아니한>(왕상3:11) 솔로몬의 기도를 칭찬한 이유다. 물론 솔로몬도 기도한대로 살지는 못했다. 왕이 권력으로 돈이나 긁어모아 부귀나 누리려 한다면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지고 나라살림은 거덜이 난다. 사마천의 사기에 보면 진시황은 백성 70만 명을 동원해서 누각 한 층에 일만 명이 한꺼번에 앉을 수 있는 크기의 궁궐을 수도 함양에 지었다. 자기 대에 다 건축하지 못해 대를 이어 건축했는데 훗날, 항우에게 나라가 망할 때 궁전이 불타는 데만 꼬박 3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전두환은 집권 7년 동안 9700억을 해먹었다. 1조에 가까운 돈이다. 백담사에 쫓겨 갈 때 7년 간 쓰고 남은 돈이 1,600억이었다. 단군 이래 최대도적놈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그 후계자 노태우는 5,600억을 해먹었다. 이들이 차명으로 숨겨놓은 돈, 부동산으로 숨겨놓은 재산은 지금도 다 찾지 못했다. 저들은 지금도 대궐 같은 집에서 버젓이 잘살고 있다.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조차도 2001년, 우리 돈 1억 원 남짓한 뇌물 받아먹은 관리를 사회주의 국가의 독소라며 사형시켰다. 관리가 부패하면 나라가 망하는 것은 고금의 진리다. 후진타오에 이어 새롭게 국가주석에 오른 시진핑도 부패와의 전쟁을 당의 핵심과제로 선언했다. 왕은 <은금을 자기를 위해 쌓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은 만고의 진리다.
우리는 이번 대선에서 돈과 관련된 부정과 부패의 전력이 없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과거에 무슨 명목으로든 검은돈을 받았거나 특혜를 주는 대가로 부정한 정치자금을 챙겼거나 불법으로 재산을 증식했거나 세금을 탈세했거나 돈과 관련해서 깨끗지 못한 사람은 대통령이 되어선 안 된다. 대통령 후보들의 재산내역과 형성과정을 꼼꼼히 살펴보아야 한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했다. 검은돈 받아 챙기던 버릇이 있는 사람에게 나라의 국고를 맡기는 것은 고양이한테 생선 맡기는 꼴이다.
누가 국가의 경제주권을 지킬 인물인가? 누가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킬 인물인가? 누가 도덕적으로 깨끗한가? 누가 돈 문제에 깨끗한가? 이상의 네 가지 잣대로 대통령후보들이 과연 일국의 최고지도자로서 적합한지 신앙적으로 검증해보아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적 기준을 가지고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우리의 신앙은 우리의 정치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